‘절전대란’으로 면한 ‘전력대란’, 주범인 산업용 전기요금부터 잡아라!

2013.08.20 | 탈핵

▲ 지난 13일 공공기관냉방금지라는 강력한 절전조치로 인해 36도가 넘는 더위에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으며 근무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13일 공공기관냉방금지라는 강력한 절전조치로 인해 36도가 넘는 더위에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으며 근무하고 있다. ⓒ 연합뉴스

 

36.3도를 가리키는 온도계 너머로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일하는 아저씨. 불이 꺼진 어두컴컴한 사무실에서 열을 뿜는 모니터와 마주하는 생기 없는 얼굴들. 최근 SNS와 인터넷 기사 이미지를 통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풍경이다. 부채질 하랴 키보드 두드리랴 손이 부족하다는 말에 결코 웃을 수 없는 요즘이다. 말 그대로 장난이 아니다. 이 정도면 ‘전력대란’이 아니라 ‘절전대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의 ‘이번 여름 전력위기를 무사히 넘기면 내년 여름부터는 전력수급 때문에 국민들께 불편을 끼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은 채 매년 반복되고 있다. 전력위기는 왜 매년 반복될까? 정부가 약속하는 ‘내년 여름’의 대책은 무엇일까? 사실 정부는 전력대란의 원인을 항상 ‘각종비리와 고장, 점검 등으로 인한 다수의 원전 정지’로 돌리고, 같은 이유로 더 많은 발전소를 짓고, 수명이 다한 원전 수명연장의 필요성을 이야기 한다. 당초 한국 사회의 전력 수요 급증을 유도한 것은 과잉공급이었다. 이후, 전력수요가 높아질 때마다 해결방안은 공급을 증대시키는 것이었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인 ‘전기요금’은 그대로 두고 말이다. 초등학생도 안다.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이 높아진다는 것을.

전력 전환수요의 증가, 왜곡된 전기요금의 필연적인 결과

현재 정부는 2035년까지 적용될 우리나라 에너지 생산과 사용의 방향을 정하는 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미 포화 상태인 전력망을 확충하는 문제, 핵발전소 비중 문제 등 다양한 쟁점들 가운데 정부측과 시민사회측이 한목소리로 대책에 고심하고 있는 핵심 쟁점 중 하나가 난방, 가열, 건조 등을 위한 에너지원으로써 가스나 등유를 사용하던 곳이 전기로 전환되는 전환수요 발생을 억제하는 것이다. 전력망이 확보되고 친환경재생에너지 시스템으로 전환한다 하더라도 수요가 줄지 않으면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 세제개편과 전기요금 정상화가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값싼 전기요금 정책이 불합리한 소비를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 국내 제조업 에너지소비변화   ⓒ 에너지통계연보 2011

▲ 국내 제조업 에너지소비변화
ⓒ 에너지통계연보 2011

국내 제조업의 전기화 속도는 가파르게 일어나고 있다. 1991년 전체 제조업의 에너지소비 중 30%를 차지했던 전력은 2010년에는 55.4%로 늘어났다. 그 중 가열, 건조를 위한 전력 수요가 2001년 15.3%에서 60.2%로 늘어났는데, 이는 가열, 건조를 담당하던 연료인 유류가격이 크게 폭등하면서 상당수가 전력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철강업에서 쇳물을 만드는 용광로 중 전기로가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달한다. 잘못된 가격신호로 인해 신규 전기로 설비투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제철소 1곳이 사용하는 전력사용량은 무려 원전 1기가 생산하는 전력량에 해당한다. 취수한 바닷물의 수분을 증발시키는데 전기를 사용하는 한주소금은 우리나라 기업 전력사용량 7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외에도 싼 전기요금은 대형 신축 건물에 전기로 냉난방을 하는 EHP(시스템에어컨)를 보급하게 했고, 난방용 전열기 없는 집이 더 드문 현실을 낳았다. 2000년 이후로 전력피크의 주인공은 더 이상 여름철이 아니다.

이렇게 타 에너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전기요금 정책은 결과적으로 전기에너지 수요의 급증과 만성 전력난을 불러왔으며, 그 중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산업용 전력 수요 증가이다.

영웅적인 절전참여? 산업계에겐 손해 없는 장사일 뿐.

“국민과 기업들의 영웅적인 절전 참여로 전력난을 한고비 넘겼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이 11일, 앞으로 3일간이 최대 전력위기라며 전력수급대국민호소 기자회견을 한지 이틀 뒤인 13일 오후, 전력위기의 한 고비를 넘기고 한 말이다.

산업계는 우리나라 전체 전력 소비량의 55%를 차지하고, 상위 20위 기업이 우리나라 전체 산업용 전력의 약 30%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산업용 전기요금은 2012년 12월 기준 1kW당 92.8원으로 주택용보다 30.9원, 교육용보다 16원 싸다. 그런데, 산업용 전기요금은 2012년 12월 기준 1kW당 92.8원으로 주택용보다 30.9원, 교육용보다 16원 싸다. 이러한 할인 혜택으로 2011년 기준 지난 3년간 삼성전자 3,140억, 현대제철 2,196억, 포스코 1,681억, LG디스플레이 1,281억, SK하이닉스 968억, 한주 766억 등의 비용 절감을 얻었다. 누진제 적용으로 요금폭탄이 두려워 허리띠 졸라매는 시민들이 지불한 전기요금이 결과적으로 교차보조의 형태로 기업 호주머니로 들어간 것이다. 또한 전력수급 대책으로 국가가 민간에 보조금을 지급하는데, 지난 12일 하루에만 18억이 지급됐다. 근본적인 문제인 전기요금은 그대로 두고, 수요관리 대책을 명분으로 지급하는 보조금이 결국 전력피크의 주범인 산업계에게 ‘전력대란’을 틈탄 손해 없는 장사를 하게 하는 꼴이다.

산업용 싼 전기요금과 보조금, 이중혜택을 유지하면서 전력 수요를 줄이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전환수요를 억제하고 지속가능한 전력시스템을 위해서라도 현재 논의 중인 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통해 에너지 세제와 전기요금의 합리적 조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얼마 전 경향신문에 실린 강신주의 ‘냉장고’에 대한 글이 논쟁 중이다. 여러 쟁점들은 차치하고, 그 글에 등장하는 ‘냉장고’가 비판 없이 편리함만을 앞세워,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전기 사용을 부추기는 지금의 전력 정책을 상징한다면 비약일까? 오해하지 마시라. ‘사용하지 말자’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잘못된 사용을 부추기는 정책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값싼 전기요금이라는 ‘진범’이 활개 치면서 속속 피해가 드러나는데, 애먼 시민들을 가해자로 지목하고, 절전에 동참해달라는 진정성 없는 호소가 부디 내년에는 반복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김세영(에너지기후국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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