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후기] 경주, 30km, 사명감

2015.09.08 | 탈핵

“형, 경주 갈래?”

어느날 술자리에서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국내 여행이 취미인 나는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형 근데 신청서를 작성해야 되고 다큐 촬영에 출연도 해야한데” 라는 그의 말과 함께 30km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그런데 30km? 이건 뭐지? ‘

신청서에 있던 경주여행의 주제부터 물음표였다. 30km? 검색을 통해 알아낸 것은, 핵발전으로 인한 방사능 피해에 대비한 주민보호구역, 즉 방사능 비상경계구역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럼 경주에 핵발전소가 있단 말이야?’ 부끄럽게도 나는 이때 경주에 월성1호기라는 원전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30년의 수명이 끝났지만 현재는 재가동 되고 있다는 것도. ‘아, 경주를 보호하기 위한 환경 프로젝트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1박2일의 여정에 올랐다.

첫째날, 첨성대, 방독면, 사명감

버스는 곧장 경주 첨성대로 향하고 있었다. 나에게 경주는 중학교때 수학여행을 마지막으로, 불국사만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었다. 거의 20년만에 가보는 곳이라 두근두근 떨리기도 했다. 드디어 첨성대에 도착, 조별로 나누어져 촬영을 시작했다. 새로웠다. 내가 첨성대를 보긴 봤었나? 마치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첨성대 주위 고분들과 왕릉들도 내 동공을 확장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주변에 왕릉을 더 구경해 보고 싶었다. 나를 비롯한 참가자들은 방독면과 보호복을 입고 촬영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지나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메르스 캠페인 하나?” 라고 하기도 했다. 나는 이제 광관객이 아니였다. 그 방독면과 보호복 속 나에게는, 경주의 유적들을 보호해야한다는 사명감이 자연스럽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녁을 먹으니 벌써 해는 저편으로 사라지고 그림처럼 둥그런 달이 우리를 마주하고 있었다. ‘밤중에 첨성대’. 첨성대는 별을 관측하는 건축물이다. 그래서 꼭 밤중에 가보고 싶어 특별히 촬영팀과 밤 중 촬영을 진행했다. 둥근 달, 첨성대, 그리고 방독면. 토요일 밤이여서인가? 생각보다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내가 상상한 고요하고 어둡고 별이 잘보이는 첨성대는 아니였다. 방독면과 보호복을 입고 좁은 인도에서 약 10분 가량을 가만히 서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내 옆을 스쳐지나갔다. “사람이가?”, “엄마 나 저거 사진 찍을래”, “이건 뭐지?”하는 사람들의 말들. 순간 나는 방독면을 벗고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설명해주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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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의미, 이유, 그리고 아이러니

다음날 아침에는 간단한 토론을 했다. 우리가 왜 여기와서 이런 촬영을 하는지에 대한. 처음에 녹색연합 활동가분들 중 한분이 원전에 대한 위험성과 월성1호기의 재가동 배경들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셨다. 결국 월성1호기가 재가동 되기까지에는 여러가지 문제들이 얽히고 설켜 있었다. 에너지 부족, 지역발전, 나라 경제 발전, 후세의 환경 문제 등등. 나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우리는 월성1호 원전이 있는 나아해변으로 향했다. 자갈이 어우러진 꽤 아름다운 해변이였다. 그리고 해변을 따라 세월의 흔적을 먹은 장엄한 드럼통 원전들이 눈에 보였다. 해변 주변으로는 정말 아이러니 하게도 위험을 알리는 경고 표지판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캠핑과 낚시, 수영등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복잡미묘한 나의 감정이 섞인 이곳에서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우리는 서울로 향했다.

아무렇지 않게 전기를 사용하는 나, 이기적인 나를 발견하다.

단순히 국내여행을 할 목적으로 시작된 30km 프로젝트는 나에게 많은 숙제를 안겨주었다. 월성1호기가 재가동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우리가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에너지를 절약 할 것인가? 그리고 나는 어떻게 일조할 것인가? 갑자기 외국인이 바라보는 한국의 이미지가 생각났다. ‘엄청나게 바쁜나라’ 나름 바쁘게 앞날만 보며 살아왔더니 어느덧 30대 중반이다. 그리고 그 평범한 한국의 직장인이 녹색연합 30km 프로젝트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지극히 이기적인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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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가봤던 경주, 당신이 경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추억은 어떤 것인가요? 30km는 당신의 추억을 각색해드립니다.

수학여행 때 친구와 웃었던 곳, 연인과의 여행, 소중한 우리 역사와 문화가 있는 도시 경주는 월성1호기라는 수명끝난 핵발전소가 아직도 숨쉬는 곳입니다. 그 나쁜 숨을 방독면으로 막아봅니다. 자, 이제 무엇을 느끼나요?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30km 프로젝트는 계속됩니다.

 

후기_이완희 30km 프로젝트 참가자

정리_배선영 탈핵T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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