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당신은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2015.11.02 | 탈핵

“11월 11일을 듣고 무엇이 떠오르세요?”라고 물으면, 아마 대다수 사람들이 빼빼로데이를 말할 것이다. 그리고 간혹 가래떡데이라고 말하며, 농업인의 날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2016년부터는 11월 11일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11월 11일은 영덕에서 영덕원전유치찬반주민투표를 진행한 날로 한국 핵발전소 반대운동의 한 획을 그은 날이야 라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으면 한다.

11월 11일 영덕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를 성사시키기 위해 지역의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열심히 뛰고 있다. 그러나 영덕군수는 삼척시와 달리 ‘원전은 국가의 일이기 때문에 주민투표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정부의 논리에 밀려 어떤 도움도 주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렇기에 투표인 명부 작성부터 투표소 운영과 개표까지 모든 과정을 지역주민들의 손으로 직접 해야 한다. 일의 양이 너무나 많아, 일손이 많이 필요한 실정이다. 그래서 11일, 12일 이틀에 걸쳐 진행될 유치 찬반 주민투표의 투표소 관리위원, 개표위원 등 자원활동가를 모집 중이다(투개표위원 신청 홈페이지 : http://goo.gl/forms/RqqCfUc5nD). 그런데 이런 활동에 대해 핵발전소 건설을 찬성하는 측과 일부언론에서는 외부세력이 개입해서 불법적으로 찬반투표를 강행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핵발전소를 지역에 건설할 것인지에 대한 주민의사 반영은 법으로 정해진 절차이다. 핵발전소 부지선정을 할 때, 지역주민의 의사를 반영해 지방자치단체가 유치신청을 해야 한다. 그런데, 지난 2010년 영덕군이 핵발전소 부지 유치신청을 할 때, 4만 영덕군민 중 불과 399명의 주민동의서만이 제출되었다. 이를 지역주민의 의사 반영이라 볼 수 없기에 영덕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를 실시하자는 것이 불법일 수 있을까?

핵발전소 유치에 대해 지역주민의 찬반의사를 묻는 것을 찬핵과 탈핵의 진영논리로 보며, 어깃장을 놓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지방자치와 민주주의 제도 아래서 국가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가라는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 국익을 추구한다는 미명으로 희생되어야 했던 가치들이 OECD 자살률 1위로 드러나는 사회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맨얼굴이다. 이 악순환을 끊어내려면 개개인의 행복이, 지역주민의 행복이 어떻게 국민 전체의 행복과 국익, 나아가 전 세계의 시민과 자연과 조화를 이뤄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는 그 질문에 맞서기 위한 당당한 첫 걸음이다. 더 이상 국익을 내세워 개인과 지역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최근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와 관련되어 박근혜대통령이 옛날에 발언했던 내용이 언론에 실렸었다. 그 발언들 중 눈에 들어왔던 것은 “나라가 없어지는 판인데 나라가 없어지는 판에 민주화를 할 수 있나요?”라는 발언이었다. 국가의 존재 이유가 국민의 희생을 강요한다면, 그것을 국가라 말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 원칙은 상황에 따라 지키지 않을 수도 있는 나라라면, 그것이 독재국가와 무엇이 다른가라고 물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아직도 우리 사회는 국가의 존재 이유를, 국가의 운영 원리를 제대로 세워내지 못하고 있다. 삼척에 이어 영덕의 주민투표가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해, 국가의 운영 원리에 대해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길 기대한다. 그 길에 우리 모두가 기꺼이 함께 하길 기대한다.

※ 이 글은 천주교 사제단 소식지에 실은 글입니다.

윤기돈 녹색연합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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