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없는 세상’ 위해 시민들이 나섰다.

2012.01.31 | 탈핵

‘핵 없는 세상’ 위해 시민들이 나섰다.
28일 연세대에서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시민회의’ 개최


핵 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가 지난 28일 연세대학교 빌링슬리관에서 열렸다. 후쿠시마 인근에서 활동 중인 이도현 선교사가 일본 현지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


지난 1월 28일 연세대학교 빌링슬링관 210호 강의실에 ‘핵 없는 세상’을 염원하는 시민들이 모여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시민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 모인 시민 40여 명은 일본 후쿠시마 현지 상황을 들으며 분노하고 아픔에 공감했으며 시민으로서 잘못된 국가 에너지정책에 저항할 의지를 다졌다.


핵 사고로 인해 후쿠시마현 주민들은 방사능에 피폭되는 위험 속에 살고 있으며, 방사능 물질에 대한 공포와 이에 따른 편견과 선입견으로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피해까지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후쿠시마 주민들 방사능 위협에 사회적 차별까지 겪어


일본 현지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이도현 예람교회 선교사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투하됐을 때 방사능 피폭자들에 대해 ‘방사능을 옮기는 존재’로 여기는 편견과 선입견이 심각한 차별과 사회적 문제로 이어졌던 사회적 분위기가 후쿠시마 핵 사고 이후 현재의 일본에서도 재현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 예로 약혼한 두 남녀 중 한 명이 후쿠시마 사람이라는 이유로 파혼을 당하는 일도 생겼다고 한다.


지난해 9월 후쿠시마현 ‘현민건강관리조사’에서도 이와 관련된 주요 문제점들에 대해 논의가 이뤄졌다. 방사능 내부 피폭에 관한 과장된 표현과 왜곡된 정보가 시민들에게 혼란을 불러 일으켜 방사선의 생물학적 영향보다 정신적·감정적·사회적 문제가 현민들의 건강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저는 3월 11일 당시 후쿠시마에 있었습니다”


시민발언 자리에서 한제선 씨는 “아이가 자라는 세상에 핵이 함께 할 수는 없다”며 도미스까 유지라는 초등학생의 블로그 첫 문장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3월 11일 당시 후쿠시마에 있었습니다.’ 그는 “이 문장을 신문에서 읽는 순간 그날 소년이 느꼈을 공포와 슬픔, 혼란스러움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전에는 후쿠시마에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날 그곳에 어린이가 있었다는 것을 어리석게도 느끼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도미스까는 후쿠시마 핵 사고 이후 요코하마로 이주해야만 했고, 후쿠시마에 남아있는 친구들과 피난생활을 하는 친구들과 함께 지난 해 10월 ‘후쿠시마 어린이 지원 간토’라는 블로그를 만들었다. 지난 1월 14일 요코하마에서 열린 ‘탈원전 세계 회의’에서 도미스까는 강연자로 초청돼 “이 나라의 높은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가


장 중요한 것은 우리 아이들의 목숨인가요, 아니면 돈인가요?”라고 물었다. 또한 그는 “장래의 꿈은 과학자가 되는 것이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건강하고 싶습니다”라고 밝혔다.


체르노빌과 스웨덴, 후쿠시마와 한국


유선희 씨는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였던 친구의 아버지와 스웨덴에 거주하다 체르노빌 핵사고로 인해 피폭당해 정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된 동네 여인을 떠올리며 그들을 외면했던 지난 날을 회고했다. 그는 “이제야 체르노빌과 그녀가 살던 스웨덴, 후쿠시마와 내가 사는 한국간의 거리가 같다는 것을 알고 실제로 겁을 먹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원전사고를 인터넷에서 검색하기만 해도 피해자들의 절규를 쉽게 들을 수 있다”며 “우리를 대신해 아파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원전이 얼마나 안전하고 꼭 필요한 자원인지를 광고하기 바쁘다”고 지적했다.


박영신 전 녹색연합 상임대표가 시민의 '저항 의무'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국가의 횡포에 저항하는 것은 시민의 의무


박영신 전 녹색연합 상임대표는 ‘시민의 저항 의무에 대하여’라는 강연을 통해 “원자력 산업 계획과 시행, 평가 단계에 피해를 받은 후쿠시마 시민들은 참여할 수 없었고, 국내 원전 주민들도 참여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라며 “과학기술 전문가들과 국가의 일방적인 횡포에 대해 저항하는 것은 시민의 의무이다”라고 강조했다.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시민회의’는 지난해 3월 후쿠시마 핵 사고를 접하고 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느낀 한 교회에서 시작됐다. 예람교회는 여러 대화 모임에서 핵발전소 문제에 대해 토론한 후 지난해 4월 부활주일에 ‘원전 숭배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2011년 부활주일 예람교회 고백’을 발표했다.


12월부터는 달마다 ‘핵 없는 세상을 향한 기도회’와 같은 공개모임을 열기로 결정하고, 이달 31일 대한성서공회 강당에서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첫 번째 기도회’를 열었다. 향후 종교와 상관없이 시민 누구나 참여하는 모임인 ‘핵 없는 세상’을 조직해 활동할 계획이다.


권승문(녹색연합 녹색에너지디자인)


* 오마이뉴스에 동시게재됩니다.(관련기사)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시민회의> 시민발언 1


아이가 자라는 세상에 핵이 함께 할 수는 없습니다.


한제선


“안녕하세요. 저는 3월 11일 당시 후쿠시마에 있었습니다.”
이 글은 도미스까 유지라는 초등학생의 블로그 첫 문장입니다. 저는 이 문장을 신문에서 읽는 순간, 그날 소년이 느꼈을 공포와 슬픔, 혼란스러움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 하였습니다. 3월 11일, 후쿠시마에는 사람들이 있다고 저는 당연히 생각했지만 그날 그곳에 어린이가 있었다는 것을 이 글을 읽기 전에는 어리석게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아기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면 그들 부모도 있었을 것이고, 할머니도 있었을 것이고, 강아지도, 고양이도, 새들도, 그렇게 지금 내 곁에 존재하는 것들이 후쿠시마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3월 11일 단 하루에 바뀌었습니다.


도미스까는 4월부터 후쿠시마에 아버지를 남겨두고 어머니, 동생과 함께 외가가 있는 요코하마로 와서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후쿠시마 사고가 은폐되는 과정을 목격하며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러던 중 후쿠시마에 남아있는 친구들과 자신처럼 피난 생활을 하는 친구들 사이의 연결을 위해 지난해 10월 ‘후쿠시마 어린이 지원 간토(關東)’라는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아직 어린 소년이지만, 이웃과 친구들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어른들보다 넓고 깊습니다. 


이런 활동으로 도미스까는 지난 1월 14일 요코하마에서 열린 “탈원전 세계 회의”장에서 강연자로 초청받아 발언했습니다. 소년은 “이 나라의 높으신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중요한 것이 우리 아이들의 목숨인가요, 아니면 돈인가요. 장래의 꿈은 과학자가 되는 것이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건강하고 싶습니다.” 라고 당당히 질문하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방사성 물질 기준치를 초과하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사고가 발생했는데 왜 아직 원전을 수출하려고 하는지 등 원전 사고 피해자이자 어린이로서 가지고 있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탈핵 운동이 한때의 유행으로 끝날 것 같아 걱정합니다.


저는 핵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빈약한 정보에 기댄채 핵 발전을 멈추고 줄이겠다는 다른 나라의 소식을 부러워 합니다. 한국이 핵발전소를 더 짓는데는 반대하지만 전기제품이 가득한 집안에 살면서 전기료가 오르는 것에는 민감한 마음이 듭니다. 그렇게 핵에 대해서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미스까의 목소리를 들으니 제 마음은 달라집니다.


저는 후쿠시마 어린이들처럼 어린 아이들을 둔 엄마입니다. 아이들은 세상에 태어난 이상 건강하고 친구들과 더불어 행복할 수 있어야 하며 자라는 동안 위험이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핵이 있는 나라를 선택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사실 앞에서 겸손히 겸허히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생각하여야만 합니다.


후쿠시마의 어린이 도미스까는 저에게 이런 마음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시인 워즈워드는 말했습니다. 그 말이 꼭 맞습니다.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시민회의> 시민발언 2


유선희




고등학교 때 친구 영희는 알러지성 피부염으로 늘 힘들어했습니다. 자신의 동생들도 그러하다고 했습니다. 영희의 아버지는 베트남전 고엽제 피해자라 했습니다. 그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자신들도 고엽제로 인한 병을 고스란히 유전 받았다고 했습니다. 영희의 아버지가 두문분출하며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이유도 전쟁의 후유증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몹쓸 병이 아버지를 더 그렇게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고엽제가 가까이 있는 친구에게까지 피해를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도, 다른 세상 사람을 만난 것처럼 멍하니 낯설어 뭐라 할 말이 없었습니다. 잔병 없이 건강한 나의 유전자에 감사했던 것 같습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하지 않은 아버지를 둬서 다행이라 생각했던 것도 같습니다. 안도의 마음을 숨기고 가식으로 위로하려던, 더는 친구의 아픔을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내 마음의 빗장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로부터 20년 후 동네 계동길에서 이상한 여성을 한 명 만났습니다. 한 여름 햇빛 아래서 온몸을 검은 옷과 모자, 목도리, 썬그라스 등으로 칭칭 감고 덮은 중년의 여인이었습니다. 남편이 운영하는 커피샵에서 그녀를 몇 번 더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독한 향수 냄새를 풍기며, 지독한 담배를 피우며, 지독하리만큼 독한 커피를 연신 마시고 있었습니다. 기이한 그녀를 두고 정신병자라며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은 당연히 많았습니다. 후에 그녀와 안면을 트고 길게 이야기 나누고서야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젊은 날 한국에서 만나 결혼한 스웨덴 남편을 따라 스웨덴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자상한 요리사 남편과 행복하던 어느 날부터인가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호흡이 곤란해지고 기운이 빠지는, 스스로도 상상할 수 없는 온갖 질병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 징후를 가지고도 병원에서는 원인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숨 쉬는 공기 한 모금, 몸에 닿는 햇빛 한 줌, 지나는 바람 한 자락, 그 모두에 그녀는 괴롭고 고통스럽다 했습니다. 그녀는 체르노빌 원전폭파 사고 후부터 자신의 몸이 달라졌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어서 어떠한 보상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자극적인 향수와 담배와 커피 정도가 몸의 피곤함을 잠깐씩 덜어준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한국과 스웨덴을 오가며 자신의 몸이 그나마 버틸만한 환경을 찾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여러 곳을 헤매며 정상생활을 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정상생활을 누리는 나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녀를 만날 때마다 멀쩡한 나는 미안했지만 한편 안도가 되었습니다. ‘당신은 참 운도 없다.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아 멀쩡한 내가 할 말이 무엇이 있겠나. 내가 할 일은 없다.’ 나는 또 그렇게 마음의 빗장을 걸고 그녀의 아픔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제야 체르노빌과 그녀가 살던 스웨덴, 후쿠시마와 내가 사는 한국간의 거리가 같다는 것을 알고 나는 실제로 겁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고엽제는 미군이 베트남군을 ‘효율’적으로 진압하려 밀림을 고사시키고 식량을 없애려 살포한 약이었습니다. 공산당을 무찔러야하는 대상으로만 알고 자란 무지한 나는, 평화라는 명목으로 강대국이 저지른 만행을 오래도록 몰랐습니다. 원전은 우리 스스로 빠른 편리와 욕심을 위해 그 위험성은 알리지 않은 채 만든 시한폭탄입니다. 편리하고 경제적인 것이 최고라고 알고 자란 무지한 나는, 또 그 ‘효율’이라는 명목으로 우리 스스로 저지른 만행을 오래도록 몰랐습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고, 잃어가고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했으며, 남은 이들 모두 그 공포를 계속 떠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받은 이들을 만났는데도 나는 그것의 해악이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직접 겪지 않았으니까요.


인터넷 검색으로 원전사고를 검색하기만 해도 피해자들의 절규를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부서지고 망가진 몸으로 자신들이 당한 피해를 알리고 싶어합니다. 우리를 대신해 아파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원전이 얼마나 안전하고 꼭 필요한 자원인지를 광고하기 바쁩니다. ‘나는 아는 것이 없어서,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나 역시도 그간 그렇게 비겁하게 살아왔습니다.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내가 겪지 않아 모른다는 생각은 얼마나 많은 중요한 것들을 외면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무기인가요. 원전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그렇게 내 마음에 있었습니다.


넘치도록 쓸 전기를 위해 우리는 언제까지 편안함을 이야기하며 신께 부여받은 힘을 무시무시한 것들을 만드는 데 쓰며 살아야할까요.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분명히 살아서 증거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진실이 무엇인지 공부해야하고 그것을 더 알리기 위한 힘을 모아야 합니다. 함께 잘살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앞으로 열어가고 싶습니다. 이는 원전 한 문제에만 멈추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생명체를 아우러 살릴 길을 모색하고, 그를 위한 우리의 마음까지 변화할 수 있는 뜻 깊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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