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어려울 것인가, 핵발전의 끝맺음

2020.09.07 | 탈핵

지난 7월10일 핵폐기물 공론화가 진행되던 날 온라인 화상송출 장소 앞에서의 항의시위

“내가 만약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일을 예견했다면 1905년에 쓴 공식(E=mc2)은 찢어버렸을 것이다.” 독일 나치 정권에 앞서 미국이 핵무기 기술을 선점하고자 추진한 핵무기 개발계획(맨해튼 계획)에 서명했던 아인슈타인의 고백이다. 핵폭탄 투하로 인한 살상력은 파괴력 이상이었다. 폭발의 지옥에서 살아남았다 해도 방사능 피폭으로 인한 고통은 죽을 때까지 따라다녔다. 한국인 희생자도 적지 않았다. 전장의 현장에서 핵의 직접적인 사용은 3일 간격으로 투하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로 맺어진 듯했다.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선한 문구에 내재된 위협

여러 국가들은 앞 다투어 핵무기를 개발했고, 핵실험도 계속했다. 핵에 평화라는 상응할 수 없는 언어를 씌우며 핵발전을 시작했고, 원자력발전이란 이름으로 이미지 쇄신에 나섰다. 현재 세계적으로 운영 중인 핵발전소는 440기이고, 189기가 영구정지 되어 있다. 그렇게 ‘평화적’으로 이용되는 듯했던 핵발전소는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켜 왔다. 미국의 쓰리마일, 소련의 체르노빌,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기술 최강국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수만 명의 사망자와 수십만 명의 이재민을 낳았고 방사능 유출로 인한 피해 규모는 산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증가하기만 한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대형 참사 이후 핵발전을 포기하는 국가들은 늘어났다. 우리나라에서도 탈핵의 목소리가 공감을 얻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2기의 영구정지된 핵발전소 외에 24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고, 2기가 건설 중이다. 가동 연한대로라면 2080년이 지나야 탈핵이 가능하다. 환경단체들은 2080년에도 핵발전을 하는 것은 탈핵이 아니라는 의미로 빠른 탈핵을 요구했다.

탈핵을 해도 끝나지 않은 문제, 핵폐기물

모든 핵발전을 중단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10만 년 이상을 모든 생명체로부터 영구 격리해야 하는 핵폐기물. 이를 보관할 수 있는 최종 처분장을 확보한 나라는 아직 없다. 핵발전을 시작한 순간부터 핵폐기물을 처분하기 위한 장소를 물색해왔지만, 1미터 앞에 몇 초만 서 있어도 생명을 잃게 되는 고위험 물질을 수용할 수 있는 지역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핀란드만이 겨우 처분 부지를 결정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750톤의 핵폐기물이 발생한다. 물론 핵폐기물 처분을 주제로 공론화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름만 공론화였을 뿐 박근혜 정부 당시 진행된 핵폐기물 공론화는 핵산업계의 의도대로 진행되었다.

실패의 반복, 핵폐기물 공론화는 무효

문재인 정부는 시민사회의 요구대로 핵폐기물 문제의 재공론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 역시 다르지 않았다. 재공론화를 끌어갈 위원회에 지역과 시민사회 등 이해당사자를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위원회를 구성해버렸다. 핵폐기물 처분 문제는 핵발전을 통해 생산된 전기를 사용해 온 국민이 책임의 당사자로서 숙고하고 토론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소리 소문 없이 공론화를 위한 시민참여단이 모집되었고, 공론화의 필수 과정인 숙의성, 대표성, 공정성, 수용성은 이 과정에서 찾아볼 수가 없었다. 또한 경주 월성핵폐기장 증설을 위한 지역 공론화는 8km 거리에 있는 울산 북구 주민들이 배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민참여단 구성에 한국수력원자력이 개입하여 공론을 조작한 정황까지 드러났다. 정부는 2022년 포화될 경주 월성 핵발전소의 임시저장시설 증축을 결정하기 위한 절차로 ‘공론화’란 절차만을 차용했다는 결론을 지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지역과 시민사회, 종교계와 전문가들은 졸속으로 밀실에서 처리한 공론화는 무효라고 선언했다. 핵산업을 주관하는 산자부가 아닌 대통령 직속의 독립기구에서 제대로 된 공론화를 다시 해야 한다.

핵산업계는 핵발전을 ‘꺼지지 않은 불’로 홍보해왔지만 꺼진 후에도 고위험 방사능, 핵폐기물은 꺼지지 않는 폭발력을 갖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무심한 사이, 지금도 방사능을 내뿜고 있는 핵폐기물을 우리는 2080년까지 만들어낼 것인가. 방사능을 뿜어내는 핵발전과 핵폐기물 문제는 매듭짓기가 가능한가.

글 임성희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 에너지전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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