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과 엉겨 붙은 MB, 이대로 두실 건가요?

2011.03.24 | 탈핵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에게] “원자력 반대!”가 답입니다

저는 녹색연합에서 에너지 기후 정책을 다루고 있는 이유진이라고 합니다. 일면식도 없는 후보님들께 편지를 쓰게 된 것은 도무지 이명박 정부에서는 답이 안 나오는 한 가지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바로 다음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이 꼭 해결책을 제시해야할 사안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렇게 공개 편지를 씁니다. 외면하지 마시고 국민들에게 여러분들의 의견을 들려주십시오. 그것이 정치인의 책임이 아닐까 싶습니다.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열흘간 전 세계인의 시선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쏠려있었습니다. 제1원자력 발전소 1호기부터 6호기까지 시시각각 전해오는 ‘노심 용해’ 가능성과 ‘수소 폭발’ 소식을 들으면서 한 번 더 인간의 통제력을 벗어난 원자력 에너지를 제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했습니다.

일본의 시민과학자 다카기 진자부로 박사는 1992년 도쿄 강연에서 “인간이 만든 불이라면 끄고 싶을 때 끌 수 있어야죠. 원자력의 불은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지만 끄고 싶을 때 끌 수 없다는 점에서 빵점짜리 기술입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20년 뒤 이 경고는 후쿠시마에서 현실이 되었습니다. 정비를 위해 가동을 멈춘 발전소에서도, 역할을 다한 사용후 핵연료에서도 ‘불씨’가 살아났습니다.

핵연료가 대기 중에 노출되면서 막대한 양의 방사능이 외부에 누출되었습니다. 상당수의 피폭자가 발생했고, 원자력 발전소 근처에서 생산된 우유와 시금치, 쑥갓에서도 기준치 이상의 방사능 물질이 발견되었습니다. 바다 오염도 심각한 상황입니다.

일본발 충격으로 전 세계가 원자력 발전소 정책을 재검토 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가동 중인 원자력 발전소 7개를 중지시켰고, 스위스도 새로운 원자력 발전소 3기를 도입하는 프로젝트를 중단했습니다. 중국도 신규 원자력 발전소 건설 승인을 당분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 다시 부흥한다던 ‘원자력 르네상스’가 꽃피기도 전에 저물어 버렸습니다.

우리 시민들도 불안감에 “한국은 문제없나?”, “우리가 꼭 원자력을 해야만 해?”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는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지혜로운 대안 찾기를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합니다. 바로 지난 수십 년 동안 정부와 원자력 산업계, 전문가들이 언론과 각종 홍보 수단을 동원해 쳐놓은 ‘원자력’과 관련한 왜곡된 사고의 프레임입니다.

원자력 신화를 유지하는 세 가지 프레임

첫 번째 프레임은 “원자력 발전소 반대=원자력 발전소 즉각 중지=정전=원시 시대”로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원자력 발전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지금 당장 원자력 발전소를 올 스톱하자는 거냐? 그건 불가능하다”라는 식으로 생각이 전개됩니다. 그러면서 원자력 발전소를 어쩔 수 없는 ‘필요악’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환경단체들이 실제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당장 올 스톱을 이야기하는 현실성 없는 집단”으로 낙인을 찍습니다. 이러한 프레임은 독일처럼 신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중지하고, 다른 에너지원으로의 대체를 통한 원자력 폐기라는 단계적 접근법에 대한 사고 자체를 가로 막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여전히 “원자력 발전소는 무조건 안전하다”라는 프레임입니다. 소위 원자력 전문가들의 맹신에 가까운 믿음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이 언론을 통해 대중을 만난다는 사실입니다. 후쿠시마 사고를 보도하는 언론들은 원자력의 안전성에 대한 답을 원자력 전문가와 원자력 전공 교수들에게서 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원자력 발전소와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스스로도 원자력 관련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하고, 제자들을 한명이라도 더 원자력 산업계에 취업시켜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원자력 발전소 정책의 유지 확대 자체가 목표인 사람들입니다. 언론에서 전문가들이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는 안전하니 안심하라’는 말이 더 무섭습니다.

그 말은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 원자력 전문가들이 그대로 해왔던 말이기 때문입니다. 문제없다던 전문가들 중에 지금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현장을 지키는 이는 없습니다. 최악의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막기 위해 생명을 바치는 이들은 181명의 현장 노동자들입니다.

세 번째는 정보 차단의 프레임입니다. 일본의 도쿄전력은 이번 사고 이전에도 수차례 일어난 사고들을 은폐해왔습니다. 이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1999년 원자력안전기술원 책임연구원의 울진 1호기 불법 용접 증언, 1993년과 1994년에 걸친 영광 원자력 발전소 3, 4호기 불법 용접 배관 등. 원자력발전소 사고에 대한 중요한 정보는 공개되지 않고 있으며, 정부는 원자력문화재단을 통해 “원자력=청정 에너지”라는 거의 세뇌에 가까운 홍보작업을 펼쳐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태를 계기로 시민들이 정부와 원자력 전문가, 언론이 합심해서 만들어 놓은 프레임을 깨뜨리고 나오면서, 더 이상 원자력 발전소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충격은 오래 갈 것입니다. 우리는 가장 가까이에서 때로는 두려워하며 걱정하면서, 원자력 발전소로 인해 일본 사회가 얼마나 큰 고통을 겪는지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로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지켜보게 될 것입니다.

통제할 수 없는 위험,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오싹하면서도 실감나는 학습의 기회를 갖게 되는 셈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시민들이 스스로 일어서서 국가와 전문가들이 주도해온 낡은 프레임을 깨고, 새롭고 희망찬 프레임을 만들어낸 사례가 많습니다. 황우석 사태, 천안함 이후의 지방선거 결과, 광우병 촛불 집회 정국 등…. 이번에는 원자력 차례입니다.

MB 원자력 정책 지지하실 겁니까?

그래서 묻고자 합니다. 후보님들께서는 이명박 정부에서 목을 매는 원자력 발전소 확대 정책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명박 정부는 2010년 기준 전력 생산의 31.5%를 차지하고 있는 원자력의 역할을 2024년까지 48.5%까지 끌어올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2024년까지 14기를 더 지을 계획입니다. 심지어 2030년 전력 중 원자력 비중은 59%입니다.

전 세계가 원자력 공포에 숨죽이고 있을 때,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 원자력 발전소 수출 기공식에서 축배를 들었습니다. 원자력을 핵심 수출 사업으로 키운다는 목표를 세우고 2030년까지 원자력 발전소 80기를 수출한다는 목표를 세워 놓은 상태입니다(이 대목에서는 헛웃음이 나옵니다). 설마 후보님들도 이명박 정책에 동의하시는 것은 아니시죠?

자, 이제 후보님들이 국민들에게 답을 해주셔야 할 차례입니다. 당장의 신규 원자력 발전소 건설 부지 선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수력원자력은 삼척, 영덕, 울진을 대상으로 신규 부지 심사를 벌여, 6월까지 2곳을 선정할 계획입니다. 좁은 땅덩어리에 높은 인구 밀도, 이 땅에서는 사고가 나면 피할 곳도 없습니다. 일본이 지금 겪고 있는 방사능 공포는 그동안 원자력으로 생산한 전기를 사용하면서 누렸던 편익과 맞바꾼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우리도 선택을 해야 합니다. 더 많은 위험의 감수와 더 많은 전력의 소비인지, 더 적은 위험의 감수와 더 적은 전력의 소비인지 말입니다.

노후화된 원자력 발전소 문제도 당면 과제입니다. 2012년 설계 수명이 끝나는 월성 1호기 처리 문제를 6월까지는 마무리해야 합니다. 2007년 수명이 끝난 고리 1호기는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0년 연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원자력 발전소의 수명 연장이 이전처럼 쉽지는 않을 겁니다. 2020년대에는 지금 돌아가는 원자력 발전소의 절반 가까인 10기의 원자력 발전소 수명이 만료됩니다. 발전소 내에 쌓여가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에 관한 대안도 마련해야 합니다. 원자력 발전소와 관련해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그래서 후보님들께서는 원자력 발전소에 관한 장기 정책을 갖고 계셔야 합니다. 저는 방사능 사고 위험으로부터 소중한 생명을 지켜내고, 핵폐기물을 양산하지 않기 위해서는 원자력 발전소 확대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답을 보여주는 국가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독일입니다. 독일은 현재 전력의 약 22%를 원자력 발전소에서 충당하고 있는데, 환경청 발표로는 2017년까지 원자력 에너지로부터 독립을 하고, 2050년에는 모든 에너지 수요를 재생 가능 에너지로 충당할 수 있다고 합니다. 후보님들이 독일과 같은 단계적인 ‘원자력 발전소 출구 전략’을 제시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금이야 말로 에너지 전환의 적기

다음 지도자는 에너지 정책에 대한 비전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중동 정국 불안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고유가와 일본의 원자력 안전 신화의 몰락이라는 상황 속에서 우리의 에너지 정책은 지금까지 와는 다른 방식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부르짖던 ‘저탄소 사회’의 실상은 원자력을 통해 달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저에너지 소비’를 통한 ‘저탄소 사회’입니다. 에너지 공급 확대 대신 사용량 감축과 효율 개선으로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석유 정점에 대한 장기 대응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석유 없는 세상을 디자인해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정책 전환을 위해서는 정부와 시민이 함께 부담을 나눠야 합니다. 불합리한 에너지 요금 구조를 개선하고, 세금 제도도 개편해야 합니다. 에너지의 생산, 유통, 소비 과정을 근본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에너지 비용을 더 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에너지를 덜 쓰고, 좀 더 춥고 덥게 지내는 일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위기는 곧 기회입니다. 지금은 시민들의 에너지 위기에 대한 인식과 정책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기입니다. 후보님들이 제시한 ‘전환의 비전’을 통해 우리 사회가 원자력 공포로 부터 보다 안전해지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 체제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확신만 갖게 된다면 시민들은 기꺼이 지지를 표할 것입니다.

다음 지도자는 반드시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결단과 비전을 가진 사람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꼭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 이유진 녹색연합 녹색에너지디자인 팀장

– 프레시안  2011-03-24 기고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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