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생명이 걸린 원전문제 외면한 4.27 재보선 유감

2011.04.29 | 탈핵

정책선거 실종, 진정한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다.

4.27 지방선거가 많은 국민들의 관심 속에서 끝났다. 선거는 승자와 패자가 나누어 질 수밖에 없지만 나는 이번 선거는 정치권 모두의 패배로 규정한다. 외형상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연대를 이룬 야당의 승리와 한나라당의 완패로 분석되지만 국가와 국민들을 위한 정책대결은 뒷전으로 밀리고 인물대결과 부정부패만이 돋보였던 선거였다. 이번 선거에서 특히 유감스러운 것은 지난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로 치명적인 방사능 오염이 진행되고 전국민의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원전 문제가 선거의 최대쟁점이 되었어야 함에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로 원자력 안전신화는 거품에 불과했음이 드러났고 전세계는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심각한 재검토에 들어갔다. 독일은 17기의 원전 중 30년 이상 노후된 원전 7기를 즉각 가동중단시켰으며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가장 열을 올리고 있던 중국조차 당분간 신규원전 승인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일본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고 지진과 쓰나미의 위험이 상존하는 한국 정부는 원자력 중심의 에너지정책에서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치러지는 4.27 선거에서 원자력 문제가 최대 쟁점이 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에서는 원자력 중심의 에너지정책이 타당한 것인지,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신규 원전건설이 지금 시점에서 꼭 필요하고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논쟁조차 이루어지 못했다. 그나마 원전문제가 선거 쟁점의 하나가 된 지역은 강원도지사 선거뿐이었다. 동해안 관광지인 강원도 삼척이 신규원전 후보지 중의 하나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나마도 핵심쟁점이 되지는 못했고 자칭-타칭으로 대권후보들이 출마하여 최대 경합지역이었던 분당이나 김해에서는 선거 공약 축에도 끼지 못했고 중앙당 차원에서도 원전문제를 쟁점으로 만들기를 꺼려했다. 원전문제는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적어도 중앙당 차원에서 원전문제에 대한 공약을 제시하고 이번 기회에 국민들의 판단을 받아보는 것이 마땅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독일 녹색당 주지사 탄생, 차기 총리 눈앞

이는 최근 선거를 치룬 독일이나 일본의 경우와는 정 반대 현상이다. 원전 사고가 난 지역인 일본과는 지구 반대편에 위치해 있음에도 독일은 후쿠시마 사고 후인 3월27일 치뤄진 인구 1천70만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선거에서 원자력발전소 반대에 앞장서고 있는 녹색당이 24.2%를 획득하여 사상 처음으로 주지사를 배출할 예정이다.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엥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인 기민당의 텃밭으로 기민당이 주지사 자리를 내준 것은 무려 58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원전이 선거 쟁점이 되고 당락을 결정지은 것은 독일만이 아니라 사고 당사국인 일본에서도 일어났다. 최근(4월 24일) 치뤄진 지방선거에서 ‘탈원전’을 내세운 후보가 도쿄도 세타가야구 구청장에 당선된 것이다. 그의 주요 공약은 ‘위험한 원전을 차례로 가동을 중단시켜 나가자’는 것이었다.

원전을 반대하는 녹색당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지지는 계속 상승세를 타고 있는데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무려 28%를 획득해 사민당을 앞질렀고 녹색당과 사민당의 연정(적녹연정)을 통해 녹색당은 사상 처음으로 독일 연방정부의 차기 총리를 배출할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이처럼 원전문제가 선거쟁점이 되고 정치권의 주요 의제가 되는 일은 독일과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큰 흐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에 반해 이번 4.27 보궐선거의 모습은 너무나 안타깝다. 대한민국 정치가 한걸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 이 글은 4월 29일자 경향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최승국 / 시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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