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이 만든 철학하는 일본사회

2011.08.02 | 탈핵

내년은 1992년 리우환경회의가 열린지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70억에 가까운 사람들이 발 딛고 사는 지구의 환경은 나아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10년에 한 번 지구환경 회의를 연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할까? 기상이변, 고유가, 시름하는 세계경제라는 3중고 상황에서 유엔은 내년 6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릴 RIO+20회의를 위한 대륙별 준비회의를 열고 있다.

지난 26~27일 요코하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지역 회의에서는 일본 대지진과 원자력발전소 사고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이 이어졌다. 먼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원자력에 의지해 온 일본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반성이 쏟아져 나왔다. 원자력의 위험성이나 경제성에 대해서는 새삼 이야기할 것도 없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엄청난 손해배상 비용과 발전소 폐쇄 비용, 국민 건강비용과 정신적인 충격비용까지 지불해야 하는 일본은 이미 탈핵의 수순을 밟고 있었다. 원자력발전소 54기 중 39기가 가동이 중지된 상태이고, 일각에선 일본이 독일보다 먼저 탈핵사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는 도시가 예기치 않은 재난에 얼마나 취약한지로 이어졌다. 거대한 쓰나미가 덮치자 도시에 전력, 통신, 난방, 물, 석유, 식량 공급이 중단되었다. 쓰나미에 살아남았지만 추위로 인해 사망자가 늘어났다. 도호쿠 대학의 히로아키 니이츠마 교수는 “재난이 발생하자 모두가 다 혼돈에 빠졌다. 일상이 사라졌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오래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들려줬던 이야기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거대한 재난은 일본인들을 모두 철학자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나이츠마 교수는 막상 재난이 발생하자 돈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으며 의지할 수 있는 것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의 힘, 지역 공동체의 힘이었다고 말한다. 후쿠시마 재건위원장 히로시 스즈키 교수는 후쿠시마를 지역에서 생산해서 사용할 수 있는 자연에너지, 외부 충격이 발생해도 자생할 수 있는 지역공동체 기반 산업과 경제를 만들어가는 것을 재건의 방향으로 삼았다고 한다.

최근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는 자연재해와 이상기후로 인해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뉴질랜드 대지진, 파키스탄 대홍수, 스리랑카와 일본의 쓰나미 사례를 보면, 현대사회의 기술과 과학만으로는 위기를 극복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당장은 사회안전망과 재난대비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식량과 에너지 생산 체계, 지역 기반 경제를 갖추는 것이 회복력을 높이는 길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이렇게 아시아․태평양지역 회의에서 도출한 핵심단어는 탈핵, 재생가능 에너지, 공동체, 참여, 회복력, 지역기반 녹색경제였다.  

일본은 지금 대대적인 전기 절약에 들어갔다. 당장 화려한 도쿄와 요코하마의 야경이 겸손해진 느낌이다. 일본은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인한 방사능 오염과 전력부족이라는 엄혹한 현실에 직면해서야 자신을 돌아보는 철학하는 국민들이 될 수 있었다. 회의가 열리고 있는 지금, 속도전을 하던 중국의 고속철은 기어이 사고가 나고 말았다. 서울은 엄청난 폭우로 물바다가 되었다. 광화문과 강남역이 물이 잠겼고, 시민들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왜 이런 일이 연달아 발생하는지, 우리 사회가 지금 어디에 어떻게 서 있는지,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꼭 RIO+20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이유진 (녹색연합 녹색에너지디자인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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