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사람들의 행복할 권리

2011.09.06 | 탈핵

후쿠시마로 출발하는 7월 31일 새벽, 도쿄 숙소 침대가 심하게 흔들려서 잠을 깼다.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진도 6.5의 지진이 발생해 도쿄도 영향을 받은 것이다. 3월 11일 이후 일본은 계속되는 여진에 시달리고 있다. 오늘은 “방사능 없는 후쿠시마를 돌려 달라! 핵발전소 없는 후쿠시마를 촉구하는 현민 집회”가 열리는 날이다. 일본에서 열린 반핵아시아포럼 참가단으로 후쿠시마시를 방문했다. 도쿄에서 후쿠시마시까지 200킬로미터 떨어져있는데, 신칸센을 타고 1시간 30분 만에 도착했다.

원자력자료정보실(CNIC)의 반 히데유키씨는 우리가 방문할 후쿠시마 시내 지점에서 방사선량을 측정한 결과 시간당 최대 1.19마이크로시버트(연간 피폭량 10.4밀리시버트)가 나왔다고 한다. 옛 소련은 체르노빌 사고 때 연간 5밀리시버트 이상의 지역을 강제이주 한바 있어 결코 안전한 지역이 아니다. 우리는 후쿠시마시에 6시간 정도 머물 예정이다.

도착하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입간판에는 ‘파이팅! 후쿠시마’라는 큰 글자와 함께, 사람들의 응원 메시지가 빼곡히 적혀있다. 방사능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역 광장에는 젊은이들이 작은 콘서트를 열고 있다. 검표원도, 상점 주인들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너무나 차분하고 일상적이어서 겉으로 보기엔 핵발전소사고가 발생한 인접지역으로 보이지 않았다. 광장에서 거리에서 핵발전소 사고 해결을 촉구하는 현수막이나 대자보 하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들의 방사능 피해를 외면한 후쿠시마 의사들

너무나 일상적인 모습에 당황하면서, 전날 만난 <아이들을 방사능에서 지키는 후쿠시마 네트워크> 대표 나카테 세이치씨가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는 일본정부가 유치원생과 초·중학생들 교정의 방사성 피폭한도를 연간 20밀리시버트로 상향 조정할 정도로 핵재난에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고, 지역 지도자들도 피난에 소극적이라고 했다. 후쿠시마현은 사고 직후 건강위험관리 전문가를 초청해 지금의 방사능 오염은 신체에 이상을 줄 정도가 아니니 바깥활동을 재개해도 좋다는 교육을 했다.

그는 지역 지도자들이 자신들이 보호해야 할 이들의 생명과 안전보다는 자신들의 현재 지위와 기반을 더 중요시해 정보를 은폐하는 ‘엘리트 패닉’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세이치씨가 후쿠시마 아이들을 지원하는 소아과의사 네트워크를 결성해 3차례 건강상담회를 열면서 도움을 요청할 때, 후쿠시마의 의사들은 단 한명도 도움을 주지 않았고 전했다. 중앙정부는 방사능 오염정도와 위험에 대해 제대로 알리고 있지 않고, 후쿠시마현 공무원은 지역 인구가, 시의원은 유권자가, 기업은 고객과 직원이 줄어들 것을 우려해 피난보다는 오염방제 대책 마련에 적극적이라고 한다. 방사능 오염이 과연 방제를 한다고 해결될 일인가!

방사능 오염 경기장에서 치러진 고교야구대회  

‘엘리트 패닉’이라는 단어를 곱씹으면서, 집회장에 도착했다. 후쿠시마시 중심에 있는 ‘마치나카(마을 광장)’에는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에서, 최남단 오키나와에서, 또 아시아 곳곳에서 후쿠시마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달려온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집회장에서 후쿠시마 제1원전과 2원전 사이에 살았던 전 우체국직원 이시마루 고시로씨가 핵발전소만큼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것이 세상에 없다고 말한다. “아무 죄가 없는 후쿠시마 사람들은 고향을 버리고 피난을 떠야 하고, 핵발전소를 추진한 사람들은 다들 안전한 곳(도쿄에) 살고 있다. 핵전기를 끌어다 쓰기만 한 사람들은 후쿠시마 사람들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에 아랑곳없이 핵발전소를 계속 가동하자고 한다.” 그리고는 후쿠시마 아이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난 7월 13일부터 후쿠시마에서 고교야구 전국대회 예선전이 시작되었다. 당시 야구장 잔디에서 측정한 방사선량이 시간당 2.2마이크로시버트였다. 경기를 하면 안 되는데도 아이들이 예선전을 치렀다. 당시 후쿠시마 지역에서 경마는 중지되고 방사능에 오염된 잔디도 싹 교체했다. 후쿠시마 현민들이 그것도 아이들이 경주마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 나왔다.

무너진 농업과 식탁의 방사능 오염    

농업전문 언론인 카즈오카 오노씨는 사람들이 피난 떠난 20킬로미터 지점 논밭은 방치된 상태이고, 20~30킬로미터 구간은 쌀 경작이 금지됐지만 채소는 생산해서 방사선량이 기준치보다 낮으면 출하되고 있다고 했다. 5월부터는 핵발전소에서 300킬로미터 떨어진 사이타마현의 찻잎에서 6월부터는 400킬로미터 떨어진 시쯔오카현의 찻잎에서도 방사능이 검출되고 있다. 핵발전소 사고는 땅과 바다에 기대 삶을 살아가던 수많은 농민과 어민들을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만들었다. 이미 후쿠시마 현에서 농부 2명이 자살을 했고, 농부들이 앓고 있는 심리적 불안과 우울증은 심각한 상태이다. 40년을 헌신해서 일궈온 유기농업운동도, 지역에서 생산한 건강한 먹을거리를 아이들에게 먹이자던 학교급식운동도 이제는 할 수가 없다. 이제 생협에서도 계약을 끊고 있다.

방사능 공포는 일본 국민들 식탁 위로 확산되고 있다. 7월, 검은소(와규의 한 브랜드로 유명)가 방사성 물질이 흡착된 볏짚 여물을 먹은 후 도축되어 43개 도도부현으로 유통됐다. 세슘에 오염된 소는 3000마리로 추정되고, 잠정기준치인 500베크렐을 넘어선 소는 51마리이다. 소 값 폭락은 말할 것도 없고, 소의 방사능 오염은 예기치 못했던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 지금까지 소 분뇨는 퇴비로 쓰면서 농업에 있어 유기물 순환의 고리였는데, 이제 하루에 40~50킬로씩 소가 싸는 똥이 방사능에 오염된 것이라 어디다 버릴 수도 보관도 못하는 상황이다. 분뇨가 논과 밭에 유입되면 분뇨를 통해 또 땅이 오염되는 것이다. 9월말에서 10월이 되면 벼를 수확하는 데, 쌀이 또 얼마나 오염이 됐을지 몰라 모두들 걱정하고 있다.

후쿠시마 사람들이 행복할 권리

후쿠시마시에 머무르는 짧은 시간동안 핵발전소 사고가 가져다 준 절망에 대해 실감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이곳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생각만 해도 아득했다. 피난 간 사람은 피난을 간대로, 남아있는 사람은 남아있는대로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집과 땅을 잃고, 직장 잃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 엄청난 재앙 앞에서도 일본인들은 특유의 인내와 희생정신을 발휘해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모습이 좋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후쿠시마 사람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정부에 핵사고에 대한 정확한 오염과 영향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자신들의 판단에 의해 피난갈 수 있어야 하며, 피난을 간 지역에서도 이전과 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후쿠시마 사람들은 핵사고가 초래한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권리가 있는 것이고, 정부는 마땅히 그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최소한 그렇게 하는 것이 핵발전소 주변지역에서 살면서 핵발전소로 인해 환경적 사회적 피해와 위험부담을 감수해왔으며, 지금은 핵사고의 피해자가 된 후쿠시마 사람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싸움은 후쿠시마 사람들만의 싸움이 아니다. 전 일본인들이 함께 해야 할 싸움이다.

후쿠시마 핵사고가 한국사회에 던지는 숙제

후쿠시마시에서 돌아오니 도쿄에서 쓰는 전기가 그냥 전기 같지 않았다. 개발에 소외되어 있었지만 평화롭고 풍요로웠던 농촌이었던 후쿠시마는 핵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도쿄에 공급하고 있었다. 도쿄 시민들은 후쿠시마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마찬가지로 서울 사람들은 핵발전소 21기가 흩어져 있는 영광, 고리, 월성, 울진에 대해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고시로씨가 말했던 것처럼 핵으로 생산한 전기를 쓰기만 한 사람들은 막연히 핵에너지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후쿠시마 핵참사는 전세계 핵발전국가들의 정책을 변화시키고 있다. 우리나라만 제외하고 말이다. 일본 핵사고를 걱정하는 이들을 ‘불순·불온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한나라당을 보면서, 또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침묵하는 민주당을 보면서, 한국에서 핵사고가 난다 하더라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엘리트 패닉’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고가 나도 사실을 숨기고 안전하다고 안심시키는 것 말이다. 최근에는 관악산에 핵폐기장을 짓자고 기자회견을 했던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출신의 원로학자가 국가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되었다. 2030년까지 핵발전소 80개를 수출한다는 정부의 허황된 목표 또한 변함이 없다. 우리와 우리 아이들 미래를 윤리적이지도, 환경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지속가능하지도 않는 핵에너지에 걸고 있는 것이다.

일단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나면 사람도, 자연도, 경제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만다. 결국  이 땅에서 핵발전소 1기라도 줄이는 게 우리가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우리가 핵발전소 건설을 막기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대대적으로 전력소비를 줄여 추가적인 핵발전소 건설의 명분을 없애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2012년 수명이 끝나는 월성1호기를 수명연장 없이 문을 닫게 하는 일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지역주민들이나 환경단체도 나서야 하지만 무엇보다 국회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에너지 문제에 대한 정치의식이다. 핵에너지중심 정책을 중단할 수 있도록 에너지 문제를 정치의제로 만드는 것이다. 이 땅 어디든 핵발전소가 더 생겨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나아가 “핵 없는 세상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탈핵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움직여야 한다. 핵발전소 지역뿐만 아니라 핵발전에 무심한 많은 도시의 시민들이 함께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 이제는 유권자인 시민들이 그리고 정치가 핵발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에 대해 답해야 한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한국사회가 어떻게 탈핵 사회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제 우리 스스로 그 숙제를 풀어야 한다.

이유진 (녹색연합 녹색에너지디자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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