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의 어느 낙농가 이야기

2012.01.29 | 탈핵

후쿠시마의 어느 낙농가 이야기

지난 1월 13일, 탈원전세계대회에 참가해 후쿠시마에 다녀왔다. 핵발전소 사고로 피난을 떠난 주민들이 살고 있는 이다츠시 임시 주거지역에서 하세가와씨를 만났다. 그는 방사능오염이 심해 계획피난구역으로 설정된 이이다테무라에서 소를 키우면서 살았고, 마에다구의 구장(우리로 치면 이장)을 했던 분이셨다. 그 분의 이야기를 통해 후쿠시마의 낙농가들이 핵발전소 사고로 인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알 게 되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연간 피폭 한도는 1밀리시버트로 시간당 0.114마이크로시버트, 1밀리시버트=1,000마이크로 시버트).
그가 살았던 마에다구는 일본에서 제일가는 ‘마을 만들기’의 성공 모델이었다고 한다. 지진이 났을 때, 밭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땅이 마치 파도처럼 출렁거리고 땅이 갈라졌다. 텔레비전을 보니 3월 12일, 핵발전소 1호기가 폭발하고, 3월14일에는 3호기가 폭발한 것이 보도되었다. 그는 14일 밤 9시, 대책본부로 달려가 담당자에서 방사능 수치를 물었다. 그랬더니 “하세가와씨 엄청납니다. 시간당 40마이크로시버트가 나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깜짝 놀라 방을 나가는데 그가 다시 불러 세우며 “하세가와씨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세요. 촌장(우리로 치면 면장)님이 아무한테도 말해서는 안 된다고 지시했습니다.” 그는 당장 마을로 돌아가 주민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외부 출입을 하지 않도록 당부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그 당시 마을회관 근처에서 시간당 100마이크로시버트의 방사능 농도가 측정되었다. 바람이 딱 이이다테무라 방향으로 불었던 것이다.
3월 19일, 250여명의 마을 사람들 중 35명이 피난을 떠났다. 3월 하순, 교토대학 원자력실험실의 이마나카 교수 그룹이 이이다테무라에 방문해 조사를 하고는, “이런 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너무 놀랍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촌장한테 알렸더니, 절대로 데이터를 공표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와 동시에 일본의 온갖 저명한 학자들이 이이다데무라에 몰려왔고, “여러분 괜찮아요. 안전해요.”라고 교육을 했다. 주민들은 당연히 안심하기 시작했다. 하세가와씨는 정부는 ‘유령타운’을 만들고 싶지 않았겠지만, 결국 주민들의 피난이 늦어져 피폭당했다며 한탄했다.
4월 30일, 낙농가가 모두 모여 폐농을 결정했다. 안전하지 않은 우유를 생산할 수 없다는 농민들 스스로의 결정이었고, 회의하는 동안 부인들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소를 도축장으로 끌고 가는 데, 소를 붙잡고, 소한테 미안하다,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논밭의 잡초가 무성한데, 농민들이라 이런 모습을 그냥 둘 수가 없었나 봅니다. 보기 싫은 잡초투성이 농지를 볼 수 없다면서 피폭을 각오하고 잡초를 베어냅니다.”  
하세가와씨의 친했던 친구가 자살을 했다고 한다. 언론에도 알려진 “핵발전소만 없었더라면……”이라는 글을 남기고 떠난 낙농가였다. 그는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핵발전소를 지을 때는 이런 사고가 나면 잘 대응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한다. 그러나 막상 사고가 나자 아무런 국가 대책이 없었고, 주민들은 엄청난 고통과 절망감 속에서 살게 되었다. 제염(방사성물질 제거작업)을 한다지만 실제 제염이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더구나 산에서 물이 흘러내리고, 바람이 불면, 아무리 농지를 제염한다고 해도 농사를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와 촌에서 이이다테무라로 돌아가라고 하면, 저는 돌아갈 수 있어요. 그런데 아이들은 데리고 갈 수 없습니다. 나는 4명의 손자가 있는데, 이 아이들을 어떻게 데리고 가겠어요?”라고 반문한다. 그래서 그는 제염은 당연하고, 동시에 마을 떠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세가와씨를 통해 핵발전소 사고 이후 작은 농촌마을에서 어떤 일이 진행되었는지, 땅도, 소도, 친구도, 마을에 대한 소중한 추억도 잃어버린 채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아픔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후쿠시마 시내 상점에서 ‘지산지소(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소비한다)’ 팻말이 적힌 배추를 보면서 “핵발전소만 없었더라면……”이라는 말을 되뇌어 본다.

이유진(녹색연합 녹색에너지디자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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