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임금님, 원자력마피아

2012.02.03 | 탈핵

[경향신문] 벌거벗은 임금님, 원자력마피아

지난달 요코하마에서 열린 탈원전세계대회는 일본의 반핵운동이 환경단체를 넘어 대중운동으로 확산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등록을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은 인기가수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고, 생활협동조합, 학생조직, 아이를 둔 엄마들, 아이돌 스타 등 1만여 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유럽의회 의원, 요르단 국회의원, 호주 녹색당의원과 세계원전 전문가 등 국외 참가자들의 면면도 화려했다.

지속가능에너지정책연구소 이이다 테츠나리씨는 개막 연설에서 후쿠시마원전 사고를 통해 ‘벌거벗은 임금’ 원자력마피아(원자력관련이익집단)의 실체와 마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 후 후쿠시마 지역민들은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고 있고, 일본 전역에 퍼진 방사성 물질은 땅과 강, 바다, 먹을거리를 오염시켰다. 그러나 정치인과 핵산업계, 전력기업, 어용학자, 관료, 미디어로 구성된 원자력마피아들은 여전히 ‘안전’하니 ‘안심’하라고 떠든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원전이 없으면 전력공급이 끊길 것 같이 위협했지만 54개 원전 중 51개가 멈춰도 일본 사회는 잘만 돌아간다. 원자력마피아들의 거짓말이 드러난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탈원전 정치가 확산되고 있다. 레베카 함즈 유럽의회 위원은 후쿠시마 사고가 유럽의 탈원전 사회를 앞당겼다고 전한다. 독일에서는 녹색당이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으면서 2022년 탈원전 선언을 이끌어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프랑스도 사회당과 녹색당이 연합해 현재 75%인 원전 비중을 50%로 줄일 것을 발표했다. 프랑스를 쫓아 원자력발전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는 한국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회에서는 무엇보다 에너지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지역공동체의 힘이 돋보였다. 일본 지자체장들은 스트레스테스트가 끝나도 원전재가동을 허가하지 않을 것이고, 탈원전 지자체장들의 네트워크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시민들은 ‘원자력에너지에 의존하지 않는 지역공동체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주제로 분산형 에너지시스템 전환, 에너지원을 선택할 권리, 100% 재생가능에너지 도시 만들기 등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우리나라에도 ‘벌거벗은 임금’이 있다. 원자력산업계 사외이사로 일했던 학자가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지식경제부 차관은 ‘월성1호기 수명연장’을 주문하며 대놓고 원자력을 옹호하고 있다. 원자력산업계 이해당사자들이 에너지 정책을 휘어잡고, 원자력발전 확대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수천억을 들여 설비를 교체한 월성1호기는 1월 12일 고장으로 또 멈춰 섰다. 고리원전에서는 2008년부터 중고 부품을 새것처럼 속여 납품해온 것이 발각되기도 했다. 핵발전소 운영이 ‘그들만의 리그’로 운영되는 동안 시민들의 안전은 위협받고 있다.

탈원전세계대회 폐막식에 서울에서 에너지소비를 줄여 원전1기를 없애겠다는 박원순 시장의 영상메시지가 전달되었다. 반응이 뜨거웠다. 일본 그린액션 대표 아이린 스미스는 “도쿄도지사가 해야 할 일을 서울시장이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서울시는 문제의 핵심인 탈원전을 분명한 목표로 삼은 반면, 도쿄도지사는 전력소비 절감을 당부하면서 재난 탓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 탈핵에너지교수모임, 반핵의사회, 탈핵법률가모임, 녹색당 등 우리사회에 원자력에너지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단체들이 속속 출범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후쿠시마 같은 재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벌거벗은 임금’ 원자력마피아의 실체를 밝히는 집단지성의 힘, 시민의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이유진(녹색연합 녹색에너지디자인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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