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님께 드리는 글

2012.04.24 | 탈핵

동상이몽(同床異夢)
이 편지를 쓰면서 무슨 말로 시작할까 고민하다 떠오른 단어입니다. 왜냐면 동상이몽에 오늘 편지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탈핵을 외치는 단체와 원자력발전의 가동을 전제로 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최종 목표가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원자력발전이 가동되는 순간까지 사고가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탈핵을 외치는 사람이건 원자력발전의 부흥을 외치는 사람이건 똑같습니다. 그러기에 동상이몽이지요.

이웃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를 보면서 원자력발전의 안전성에 대한 강한 의문을 제기하는 글을 1년 전 신문에 기고한 적이 있습니다. 1년이 지난 현재 제기한 문제 중 대부분이 현실에서 다시금 확인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다시금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원자력발전소가 설계에 따라 완벽하게 건설되는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그 어느 시설보다 사고의 피해가 크기에 원자력발전소 건설은 철저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게 보통 사람들의 믿음이지만, 실상은 다르다며 몇 가지 예를 들었습니다. 그 예 중 하나로 2002년 4월 울진원전 4호기에서 문제가 있는 재료를 사용해 증기발생기 세관이 찢어진 사건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작년말 울진 원전 4호기 예방정비과정 중 증기발생기 세관의 약 25%가 두께가 얇아지거나 파열 조짐이 나타나는 등 심각한 손상이 확인되었습니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지요. 그럼에도 한국수력원자력은 증기발생기를 전면 교체하는 대신, 손상된 전열관을 폐쇄하는 ‘관막음’을 하거나, 관 내부를 보강하는 ‘관재생작업’을 거쳐 가동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증기발생기가 파단되는 사고가 일어나면, 1차 냉각재가 일시에 상실됨으로써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일어난 노심용융 같은 대형사고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도 울진 4호기에 대한 한수원의 땜질식 처방에 대해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둘째로 원자력발전소가 불안전하다면, 안전한 운영을 위한 관리·감독은 제대로 이루어질까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연료안내구조물 균열, 냉각재 재순환 배관시스템 문제, 격납용기 누설률 조작 등 무려 29건의 안전성 검사를 축소·은폐했던 일본의 ‘도쿄전력 스캔들’ 사례로 들며, 철저한 관리감독의 부재가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또 다른 원인일 수 있다고.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여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1999년 ‘도둑 용접’을 포함해 크고 작은 사고에 대한 문제제기에 근본적인 접근을 하기보다는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며 철저한 조사를 진행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는 비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도쿄전력 스캔들에 버금가는 고리1호기 블랙아웃에 대한 은폐가 조직적으로 이뤄짐이 밝혀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비상시 대응시스템은 완벽한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원자력발전소는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 하나하나의 원전이 독립된 비상대응 시스템을 갖고 있다며,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독립된 비상대응 시스템이 비상 상황에서 하나같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는 다르다고 말할 확증이 없다고, 아니 우리나라에서도 발생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더 강화된 대비책을 세우는 것이 올바르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요? 더 강화된 대비책은 커녕 그렇게 자랑해마지 않은 비상대응시스템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이 고리 1호기 블랙아웃 사태로 입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광에서도 일어났지요.

지금까지 내용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문제제기한 내용이 현실로 나타남을 보며, 저의 신기에 놀라 길거리에 좌판을 깔아야겠다는 생각을 우스개로 해 보았으나, 끔찍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제가 큰 사고가 있기 전에는 작은 사고가 잇따른다는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을 이야기한 것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탈핵에 대한 진지한 검토, 그 가능성을 확장하는 것이 지금 우리 세대의 책무이니,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여기에 복무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만전을 기해도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는 것이 원자력발전소인데, 여러 가지 위험 징후가 나타남에도 끄떡없다는 식의 안일한 태도를 지니고 있는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져버리는 행위입니다.

더 늦기 전에 동상(同床)만이라도 일치하여, 한반도에서 끔찍한 재앙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합심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합니다. 그 변화의 시작이 고리1호기의 폐쇄가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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