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불이 켜지면

2020.06.03 | 탈석탄

오스트리아와 스웨덴, 이미 보름쯤 지났습니다. 프랑스는 2년 남았고, 포르투갈은 3년 남았습니다. 영국, 5년 후? 아니, 이제 4년밖에 안 남게 되었답니다. 독일은 8년 남았는데, 어쩌면 5년 뒤로 앞당겨질지도 모른다고 하네요. 무슨 말이냐고요? 각 국가의 마지막 석탄화력발전소가 문을 닫기까지 남은 시간입니다.

그동안 고마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1882년, 산업화의 시작과 함께 첫 번째 석탄화력발전소가 영국 런던에 문을 연 이후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쉼 없이 ‘발전(發電)’하며 인류 문명 ‘발전(發展)’의 기둥 역할을 해 온 석탄화력발전이 이제 막다른 길에 선 겁니다. 이 나라들이 앞다투어 석탄화력발전소를 멈추겠다고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석탄을 태워 만든 전기가 밤에도 집과 거리를 환히 밝혀 주고, 24시간 공장을 돌려 찍어낸 물건들로 전에 없던 편리함을 가져다주며, 지구 반대편에 놓인 서울과 상파울루를 옆 동네처럼 이어 주는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시무시한 일도 함께 일어나고 있었음을 이제는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기후위기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인간이 석탄을 태워 전기를 만드는 사이 공기 중으로 뿜어져 나간 온실가스는 지구를 뜨겁게 달구었고, 질소산화물·황산화물·미세먼지 등의 각종 오염 물질은 공기를 더럽히며 우리의 숨통을 조여 왔습니다. 지난 2018년, 유엔 산하 과학위원회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구의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1도 올랐고 앞으로 0.5도 더 올라 한계점을 넘어서게 되면 엄청난 기후 이변이 일어나 지구의 생태계가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훼손될 것”이라며 우리 모두에게 엄중한 경고를 한 바 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분석에 따르면, 이미 상승한 1도의 지구 기온 중 0.3도는 석탄을 태웠기 때문에 일어난 변화라고 합니다.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전 세계 배출량의 37%나 차지한다고 하고요. 석탄화력발전과의 작별에서부터 기후위기 대응이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우리는 어떨까요?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7번째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입니다. 배출 증가율로 보자면 OECD 국가 중 가장 높습니다. 지난 30년간 기온은 1900년대 초보다 1.4도나 높아졌고, 바닷물 온도도 최근 50년 사이 전 세계 상승 폭보다 2.2배 올랐습니다. 우리나라가 기후위기로 감당해야 할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고, 우리 앞에 닥친 기후위기의 심각성 또한 매우 높은 거죠.

그런데 우리는 책임질 준비가 아직 안 된 걸까요? 해야 할 일을 하나도 못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 세계 통계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온실가스 최대 배출원은 석탄화력발전이지만 아직도 59기( *주: 최근까지 국내 석탄화력발전소는 총 60기 였다. 그중 삼천포 1, 2호기가 지난 4월 30일 폐지 발표 되었으나 5, 6호기 환경설비 개선공사 및 3호기 계획예방정비 등으로 결정이 번복되어, 9월까지는 추가 가동과 중지를 반복하다가 이후 최종 폐지될 전망이다.)의 석탄화력발전소를 돌리며 국내 전력의 40%정도를 만들어 내고 있거든요. 현재 7기를 새로 짓고 있는데, 신규 발전소들은 기존 발전소보다 용량이 2~3배 정도 더 크기 때문에 이들 발전소가 가동을 시작하면 훨씬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1년에 대략 5,160만 톤에 달할 거라고 하니 실로 엄청난 수치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석탄화력발전소 문을 닫아야 할 이 때에 오히려 새로이 짓고 있는 한국의 상황이 암담하기만 한데요. 지금까지 나온 정부 계획에 따르면, 당장 내년부터 운영을 시작해 2024년이면 7기의 신규 발전소가 모두 가동하게 된다고 합니다. 기본 수명이 30년이니 적어도 2053년까지는 이 땅에서 석탄화력발전소가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지난 2월 유럽의 기후 분석 전문 기관인 클라이밋 애널리틱스(Climate Analytics)와
기후솔루션이 공동으로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5도 지구 기온 상승 폭 제한 목표를 지키려면 한국은 2029년까지 석탄화력발전을 모두 중단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비춰 생각해 보면 지금의 정부 계획은 무책임하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인류를 포함한 지구 생명체의 존속 여부가 달린 1.5도 목표를 무시하고 짓는 석탄화력발전소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걸까요.

빨간 불이 켜지면 무엇을 해야할까

그 책임을 묻기 위해 포스코를 찾았습니다. 우리에게 철을 만드는 기업으로 잘 알려진 포스코는 사실 지금 삼척에 국내 최대 규모의 석탄화력발전소(삼척 석탄화력발전소는 포스코의 자회사인 포스코에너지가 ‘삼척포스파워’라는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하여 짓고 있는 민자 석탄화력발전사업이다. 지난 4월, 삼척포스파워는 포스코를 연상시키는 기존의 사명을 ‘삼척블루파워’로 변경하여 청정 이미지를 덧입히려 했다.) 를 짓고 있는 기업이기도 합니다. 지난 8년 동안 국내 온실가스 배출 1위 기업 자리를 한 번도 내려 놓지 않은 것 또한 포스코입니다.

지난 3월 27일, 녹색연합이 함께하는 기후위기비상행동(기후위기에 맞서려는 377개 단체와 개인이 모인 연대체) 이 포스코 주주총회장 앞에서 전달한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그간 포스코가 철강 사업과 화석연료 기반 사업으로 막대한 이윤을 챙기면서 기후위기를 가속했으니, 이제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라는 겁니다. 기업의 제1 목적이라는 이윤 추구도, 지구와 그 위에 발 딛고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의 목숨을 담보로 이뤄져서는 안 되니까요.

앞서 인용한 IPCC의 경고를 받아들여, 기후 파국을 막기 위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계산해봅니다. 고작 8년 남짓입니다. 전 세계가 매년 지구 대기에 추가로 방출하고 있는 온실가스 양으로 미루어 보아 그렇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간 동안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요.

지난 100여 년, 앞만 보고 달려오는 동안 우리는 목적지를 잃었습니다. 애초에 목적지가 있기는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끝없는 경제 성장, 산업 발전, 이를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한 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지금과 같은 기후 위기는 분명 아니었을 겁니다. 방향을 잃은 우리에게 지구가 비상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경고의 노란 불이 빨간 불로 바뀐 지는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그리고 빨간 불이 켜지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우리는 이미알고 있습니다.

글. 유새미 녹색연합 에너지기후팀

  • 녹색희망 271호에 실린 글입니다.

[정정합니다] 본문 중 “독일은 8년 남았는데, 어쩌면 5년 뒤로 앞당겨질지도 모른다고 하네요.”라고 서술한 부분은 사실 관계가 맞지 않아 정정합니다. 독일은 2038년까지 석탄발전을 퇴출하겠다고 발표했고, 현재 2035년으로 앞당기려는 논의도 진행 중입니다.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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