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를 팝니다

2010.04.28 | 미세먼지

– 당신의 탄소를 상쇄합니다 –

2009년 12월 제 15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덴마크 코펜하겐에 다녀왔다. 인천공항에서 코펜하겐까지 비행기로 8,728 킬로미터를 왕복으로 여행하면서 배출한 이산화탄소량은 2.668톤(CO2)이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온실가스배출량이 12톤(CO2환산톤)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량이다. 코펜하겐에서 기후변화에 대처할 새로운 의정서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선진국과 개도국의 기후변화 책임 공방으로 인해 여지없이 무너졌다. 인어공주의 도시 코펜하겐은 깨어진 협약의 도시 ‘브로큰하겐(Brokenhagen)’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속에서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4만 5천명이 참석한 이 호들갑스러운 회의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온실가스를 배출하면서 회의에 참석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뭔가? 이렇게 비행기를 타더라도,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활동하기 때문에 용서가 되는 것일까? 배출한 탄소를 나무를 심어서 상쇄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상쇄방식이 바람직한 것일까? 등등.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비행기를 타면서 배출한 온실가스가 지금도 대기권을 맴돌고 있다는 사실이다.

‘탄소중립’은 자신이 배출한 탄소에 책임감을 느껴 상쇄하고자 하는 사람이나 기업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탄소중립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면죄부로 작동할 소지가 있다. 탄소를 배출하는 행위는 고치지 않은 채 돈을 주고 배출권을 사는 것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다했다고 믿는 것이다. 더불어 정말 ‘탄소중립’이 가능하기나 한 일인지에 대해서도 근본적이고 진지한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지금 당장 우리가 배출한 탄소가 나무를 심고,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며, 재생가능에너지 설치를 늘여나간다고 해서 상쇄될 수 있는 것일까? 이 책은 그런 질문들에 대해 답을 하고 있다. 《탄소중립 신화》는 탄소상쇄의 개념과 철학, 그리고 전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탄소상쇄 프로그램의 실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인류는 2004년 한해에만 490억 CO2환산톤의 온실가스를 대기 중에 배출했다. 우리가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모두 상쇄하려면 과연 어떤 수단을 선택해야 할까? 얼마나 많은 나무를 심어야 하며, 얼마나 많은 태양광전지판을 세워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인간은 지구의 탄소순환에 대해 완전히 알지 못하며, 지금 화석연료를 태워서 배출한 이산화탄소와 나무를 심어서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는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둘은 서로 상쇄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탄소중립’은 탄소거래를 통해서도 달성할 수 있는데, 누군가가 줄인 탄소를 ‘자발적 탄소시장’에서 구매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지금의 탄소시장에서는 온실가스를 줄인다는 원래의 의도는 사라지고, 배가 산으로 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저자는 탄소상쇄 기업이 소비자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기업과 정치인들에게는 ‘그린워시’ 수단을 판매할 뿐 실제 대기 중의 온실가스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선한 의도로 자신의 탄소를 상쇄하고자 지불한 돈이 실은 탄소상쇄 회사 운영비로 쓰이고, 나무를 심거나 탄소를 줄이는 일에는 극히 일부분만 쓰인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잘못 운영되고 있는 탄소상쇄 프로젝트는 가난한 나라의 지역공동체에 오히려 큰 고통을 안겨다 준다. 이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 깊은 문구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동차 연료를 위한 석유채굴 때문에 쫓겨난 지역 주민들이 자동차 운전자들이 태운 석유를 ‘상쇄’하기 위한 플랜테이션 조성을 위해 또 다시 쫓겨나게 될 판이다.” 그래서 저자는 탄소상쇄에 집중하기 보다는 지금 당장 에너지 소비를 줄이자고 말한다. 더불어 정치적인 행동과 사회변화를 통해 화석연료를 덜 사용하는 사회로 전환해 나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에서도 탄소시장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2010년 한국에서도 탄소배출권 시범시장이 열렸다. 《탄소가 돈이다》,《자발적 탄소시장》,《탄소 전략 》,《탄소배출권사업 실천 요령》과 같이 탄소시장을 소개하면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다룬 책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정부도 기업도 온실가스 규제 정책이나 에너지 수요관리 정책에는 시큰둥하다가도 탄소배출권 시장 이야기가 나오면 전에 없던 관심을 보인다. 한국 사회는 기후변화의 원인이 된 에너지 과다 소비나 지나친 자원 소비 시스템을 고치기보다는 기후변화 대응을 통해 파생될 새로운 시장이나 경제적 효과에 열광하고 집중한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나 탄소시장에 대한 토론과 비판적인 검토 없이 과도한 열광이나 무조건적인 수용은 바람직하지 않다.

세계 탄소시장을 주도하는 곳은 영국이다. 금융이 발달한 영국이야말로 탄소시장을 주도하고자 하는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탄소시장에 대한 비판적 연구와 NGO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나라이기도 하다. 2년 전 카본트레이드워치에서 활동하면서 탄소시장에 대해 비판적인 연구를 하고 있는 케빈 스미스를 만나 《탄소중립 신화》를 받았다. 이 책은 탄소시장이나 배출권거래제의 밑바탕을 형성하는 개념인 ‘탄소중립’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따라서 탄소시장의 경제성과 효율성만을 바라보며 열광하는 한국인들에게 고민해볼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이 책에 같이 실려 있는 케이트 에반스의 《탄소슈퍼마켓》은 만화의 형식을 빌려 배출권거래시장이 어떻게 작동하고, 대기를 상품화하는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두 사람은 한국에서 이 책이 출판되도록 기꺼이 허락해 주었다. 번역작업을 하면서 한국 상황을 소개하는 것이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한국의 탄소중립과 탄소시장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하였다. 또한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를 만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교회의 실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청파교회의 탄소헌금과 몽골 나무심기 사례는 이 책에서 소개되는 탄소상쇄 전문기업의 해법과는 사뭇 다르다. 기후변화 해법으로 ‘탄소중립’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김기석 목사의 글도 실었다.

15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 총회에서 선진국과 후진국은 온실가스 감축량을 설정하는데 있어 격렬하게 대립했지만 시장매커니즘을 통해 온실가스를 줄인다는 데에는 흔쾌히 동의했다. 앞으로도 시장을 통해 기후변화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더욱 활발해 질 것으로 보인다. 탄소시장이 거침없이 내달리는 호랑이처럼 돌진해오고 있다. 그 시장은 기후변화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없는 잘못된 시장이기 때문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막아야만 하는 것인지, 아니면 호랑이 등에 올라탄 채로 시장의 실패를 보완해 나갈 것인지 여전히 혼돈스럽다. 처음에는 시장적 접근을 통한 온실가스 감축 방안이 바람직하진 않지만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의 큰 축을 이루는 산업계를 동참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탄소중립 신화》를 통해 시장주의에 입각한 대안을 찾는 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기후변화에 대한 답을 탄소시장에서 찾는 신자유주의적인 접근법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불편하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인간의 자발적인 의지와 실천보다 시장을 더 믿고 의지하기 때문이다.

만약 나에게 제한된 양의 돈과 열정과 시간을 주면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하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기꺼이 지금 당장 에너지 수요를 관리하고, 대중교통을 변화시키며, 기후변화에 무책임한 산업계를 감시하고, 사람들이 기후변화 대응에 동참할 수 있도록 정치 조직화하며, 미래 세대들인 아이들을 교육 하는데 힘을 쏟을 것이다. 우리에게 시간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는 제대로 된 길을 선택해야한다. 우리 사회가 탄소시장을 맹목적으로 쫒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더 나은 대안을 찾는데 있어,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유진/최수산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