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 범대위와 한국사회단체 신년기자회견문]2003년을 자주.평화의 해로

2003.01.12 | 군기지

2003년을 자주.평화의 해로
여중생 범대위와 한국사회단체 신년기자회견문

2003년 한반도의 새해 아침은 유례없는 긴장과 희망이 공존하는 가운데 밝아오고 있다. 올해로 정전 50년을 맞는 한반도는 50년 전 전쟁의 상흔은 아직 지워지지 않은 채 세계 유일의 분단냉전지대로 남아 있다. 분단된 한반도의 북녘은 국제적 고립과 혹심한 기아에 허덕이고 있으며 핵 개발논란을 둘러싼 북미간 긴장이 작년에 이어 계속되는 가운데 전쟁이 언제 발발할지 모르는 위기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변화의 희망 또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최근 수년간 남북간 평화와 화해의 기운은 고조되어 왔고 한반도를 전쟁과 소모적 대결로부터 지켜내겠다는 한국민의 열망은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지난해 미군 궤도차량에 의한 여중생 압사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촛불 집회를 통해 우리는 호혜·평등의 한미관계를 확립하고 군사주의와 전쟁의 폭력을 단호히 반대하는 우리 의지를 분명히 천명하였다.
우리는 정전 협정 50주년을 맞는 올해를 자주․평화의 해로 선포하면서 다음과 같이 우리의 입장을 밝힌다.  

2003년은 여중생 사망사건의 책임자를 처벌하고 불평등한 한미 SOFA를 전면적으로 개정함으로써 평등한 한미관계의 새로운 기초를 다지는 해가 되어야 한다.

지난해 6월 발생했던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과 그 처리과정은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주한미군은 무고한 두 소녀의 죽음에 대해 아무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사실 여중생 사건은 유사한 여러 사건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여중생 사건 외에도 무수히 많은 미군 관련 사건들이 가해자인 미군의 편의에 따라 지극히 불투명하고 불공정하게 처리되어 왔다.

한국민 대다수의 항의는 일시적 감정에 따른 것이 아니라 누적된 분노에 기초한 것으로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통해서만 해결 가능한 것이다. 여중생 사망 사건에 대한 명확한 책임규명과 공정한 사건처리를 가로막는 현행 한미SOFA의 전면적 개정은 그 최소한의 전제이다.

우리는 현재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가 합의한 ‘개선안’에 동의할 수 없다. 현재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가 합의한 ‘개선안’은 현행 한미SOFA의 불평등성을 개선하는 데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서 유사한 사고의 재발을 방지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촛불시위에 동참하는 대다수의 한국민들이 강력히 요구하는 평등한 한미관계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우리는 불평등한 SOFA의 근본적 개정과 여중생 사망사건 책임자의 처벌, 부시 대통령의 직접적이고 공개적인 사과가 이루어질 때까지 평화로운 우리의 항의행동을 계속할 것이다.

우리는 미국의 정부와 언론이 한국민의 항의를 더욱 진지하게 되새길 것을 촉구한다. 특히 일부 미국 고위 관리들과 언론들이 한국민의 요구와 항의행동을 감정적 반발로 치부하거나 배타적 민족주의에 기초한 것으로 묘사하는 것은 한반도는 물론 전세계에서 일고 있는 거대한 자주와 평화의 흐름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의 요구는 수십년간 한미관계와 주한미군의 존재방식을 특징지어 온 불평등과 특권을 정상화하여 한미관계를 호혜적이고 평등한 관계로 재정립하자는 지극히 정당하고 합리적인 요구라는 점을 미국 정부와 언론은 직시해야 한다.    

2003년은 북핵을 둘러싼 갈등을 대화와 협상을 통해 일괄타결함으로써 한반도에 조성된 전쟁의 위기를 걷어내고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정착의 대전환을 이루는 해가 되어야 한다.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분단 냉전지대인 한반도는 최근 수년 동안 반세기간의 대결과 반목을 넘어서는 중대한 변화의 걸음을 내딛어 왔다. 특히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은 대결적인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바꾸어 놓았으며, 나아가 10․12 북미 공동코뮈니케와 북일 정상회담 등을 이끌어냄으로써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평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괄목할 만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는 지금 심각한 전쟁 위협 앞에 직면해 있다. 주지하듯이 부시 행정부가 지난해 10월 켈리 특사의 방북 이후 ‘북의 우라늄 핵 개발’ 의혹을 제기하면서 일체의 대화와 협상을 거부한 채 중유제공을 중단하고 북한이 이에 맞서 핵 동결 조치해제 및 NPT 탈퇴를 선언함으로써, 북미간 갈등은 심각한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는 현 위기상황과 관련,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이 보여온 일방주의적 대외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핵무기 보유국이면서도 핵 군축에 소극적이고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도 거부하고 있다. 또한 제네바 합의 사항인 북한에 대한 소극적 안전보장을 이행하지 않은 채, 핵 선제공격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특히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의 북미간 관계개선 노력들과 합의의 성과들을 부정하고 일방적으로 원점으로 되돌리는가 하면, 한국 정부의 대북 관계 개선 노력을 무시하고 폄하했다. 부시 행정부는 나아가 북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대북적대정책을 펼침으로써 북미갈등의 원인을 제공했다.
사실 미국은 북한 우라늄 문제를 제기하면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또한 미국은 북과의 협상을 거부한 채 일방적 제재를 시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핵 동결 해제라는 북의 강경대응을 불러왔다.

한편, 우리는 고농축 우라늄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상태에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 동결을 해제하고 IAEA 사찰단을 추방한 데 이어 NPT마저 탈퇴할 것을 선언한 것에 대해서도 심각한 우려를 전한다. 특히 한국 정부와 주변국의 중재에 의해 대화에 의한 해결이 논의되고 있고 이를 위해 상호간을 자극하는 정책을 취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던 상황에서 북이 NPT 탈퇴를 선언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는 북이 핵시설 재가동을 통해 핵무기 개발로까지 나아갈 수도 있다는 내외의 우려를 낳고 있다. 우리는 최근 북한이 취한 NPT 탈퇴 등의 조치가 대화와 협상을 지지해온 국제여론을 냉각시키고 한국민과 세계 평화애호세력의 평화적 해결 노력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이의 철회를 촉구한다. 북한당국자는 북의 강경대응이 한반도 전쟁이라는 원치 않은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지지하며 이러한 맥락에서 한반도에서의 핵무기개발, 배치, 사용에 반대한다. 또한 우리는 전쟁이나 무력의 사용, 기타 봉쇄조치가 문제해결 수단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한반도 8천만 민중이다. 그런 만큼 우리는  8천만 민중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논의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북핵 문제는 오직 북미간의 성실한 협상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우리는 ‘북미간의 조건 없는 대화와 상호 동시조치를 통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력히 촉구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최근 미국이 이 문제에 대해 대화를 시작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북한 당국 역시 리처드슨 미 텍사스 주지사를 접촉하는 등 최소한의 대화의 노력들이 시작되고 있는 것에 주목한다. 또한 북한이 NPT탈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핵무기개발을 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이 대북적대정책과 핵위협을 중단한다면 북미사이에 별도의 검증을 통해 증명해 보일 수 있다며 협상의 여지를 남기고 있는 점 역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우리는 이러한 움직임이 북미간의 적극적 협상을 통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로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협상의 첫걸음은 북미 양국이 상호간 대북 중유제공 중단과 핵동결 해제 조치 및 NPT 탈퇴를 동시에 철회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나아가 미국은 북한에 대한 불가침, 평화협정 체결, 테러지정국 및 경제제재의 해제를 약속함으로써 북한의 생존과 안전을 보장하고, 북한은 미국에 대해 검증가능한 방식으로 핵을 포기하고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확산 우려를 완전히 해소하는 것을 포괄협상 방식을 통해 일괄타결해야 한다.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당선자에게 한반도에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봉쇄와 전쟁에 단호히 반대하고 북미 양국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해 줄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또한 정부가 혹심한 기근과 에너지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과 인도주의적 지원을 지속해 줄 것을 당부한다.
아울러 우리는 일본, 중국, 러시아, EU등 관련 주변국들이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일관되게 지지해 줄 것과 북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 및 경제교류를 지속해 줄 것을 촉구한다.

2003년은 세계 평화애호세력의 연대를 통하여 이라크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전개되고 있는 모든 부도덕한 전쟁과 전쟁위협으로부터 세계평화를 지키는 해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반테러의 이름으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의 경험을 통해 어떤 전쟁도 종국에는 무고한 민중들에게 끔찍한 공포와 고통의 상흔을 남기는 가공할 폭력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극적 전쟁의 포연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미국의 일방주의적 패권정책은 9․11테러 이후 도를 넘어서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테러를 지원하는 등 세계 안보와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대이라크 전쟁을 강행하고 있다. 현재 이라크는 유엔안보리 결의안 1441호를 무조건 수용하면서 유엔사찰단이 이라크에 대한 전면적인 무기사찰을 진행하였고 이라크의 대량파괴무기(WMD) 개발-보유현황 보고도 지난 12월 제출된 바 있다. 이러한 검증절차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미국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이라크에 대한 전쟁구실을 찾으며 전쟁계획을 공식화하고 있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이라크가 미국과 다른 나라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도 않고 있다. 심지어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 그 자체가 대량학살무기의 증거라며 정권교체 없이는 아무런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내정간섭적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미국이 이렇게 무리한 전쟁을 서두르는 것은 이를 통해 자신의 정치·경제적 이권을 챙기려는 것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다.

우리는 명분 없는 대이라크전에 반대한다. 국제사회는 미국의 일방주의적 전쟁 준비에 대한 협력을 거부해야 한다. 우리는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재정지원이나 파병 등 지원 요청을 거부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우리는 이를 위해 대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세계 평화애호세력들과 굳건히 연대해 나갈 것이다.

2003년, 한반도 전역에서, 지구촌 곳곳에서 호혜평등과 평화공존을 위한 연대의 촛불을 피워 올리자.  

지난 해 우리가 저마다 피워 올린 촛불은 상생과 호혜평등,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우리 모두의 염원의 상징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의 분노와 항의행동은 비단 무고한 두 여중생의 죽음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수백 수천만의 미선이 효순이가 부도덕한 군사작전과 전쟁의 과정에서 죽어갈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겪게 될 공포와 비극에 함께 아파하고 분노한다. 우리는 올 해 한반도의 현실에 대한 국제적 연대와 지원을 호소할 뿐만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의 비극, 특히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대외정책이 만들어내는 패권적 전쟁을 반대하는 모든 세계 평화세력과 연대할 것이다.
  
2003.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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