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쉬해도 언제가는 불붙는다

2007.06.20 | 군기지

2004년 9월, 국회 환노위에서 처음으로 미군기지 오염 조사 결과 일부가 공개됐다. 당시까지 조사된 15개 기지 중 14개에서 국내 기준치를 초과한 오염이 발견되었다는 자료였다. 그 자료를 관련 전문가에게 보여주자 “미군, 얘들 도대체 땅 속에서 뭘 하는 거야?”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국내에서는 예가 없는 놀라운 오염 수치라고 했다.  

발암물질 중금속 오염 수치도 높아



미군기지의 심각한 기름 오염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90년대 초반부터 미군기지 기름유출 사고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졌다. 녹색연합이 주민 민원과 언론 보도를 포함해 집계한 자료는 66건으로, 1년 평균 4건이 넘는다. 이 중에서 양국 정부가 공식 논의한 것은 불과 20건에 불과하다. 그 중 11건의 원인은 낡은 지하 유류탱크와 배관이었다. 춘천 캠프 페이지 지하에는 ‘공설 운동장 만큼’한 지하 유류탱크가 , 부산 하야리야 기지에는 크고 작은 탱크가 200여개가 넘게 있다고 한다. 수송, 난방을 위한 땅속 저장고와 배관이 모두 낡았는데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은 이미 70년대 자국 법으로 지하 유류탱크를 모두 지상으로 바꾸도록 했다. 배관 관리가 어렵고 누출될 경우 주변 토양과 지하수에 곧바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주한미군도 몇 차례 지하저장고를 지상화한다고 밝혔지만, 이미 오염된 토양과 지하수를 정화하지는 않았다. 그 결과 유류탱크가 지상화된 지역에서는 비만 오면 미군기지 부근에서 기름띠가 발견된다는 제보가 이어졌다.

최근까지 정부가 조사한 38개 기지의 환경 실태를 보면 8개 기지를 제외한 30개 기지의 토양과 지하수 오염이 국내환경기준의 수백 배를 넘는다. TPH 같은 발암물질 뿐 아니라 벤젠, 중금속 오염 수치도 높다. 경기 의정부 금오초등학교 앞 캠프 카일은 지하수로 유입된 기름 두께가 상상을 초월했다(베일러 측정법상 4m 88cm).  매향리는 국내 공장지대보다 더 심각하게 오염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금속 오염은 기름 오염처럼 색깔이나 냄새로 확연히 드러나진 않지만 암을 유발해 인체에 유해한 것으로 지적된다. 정화에도 어려움이 크다. 특히 지금처럼 불발탄이 곳곳에 널려 있는 상태에서는 오염조사와 정화를 위해 출입하는 데에도 큰 위험이 따른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물론이다.

하와이 카홀라웨라는 작은 섬은 수십년 동안 섬 전체를 미 해군이 사격장으로 사용했다. 심각한 오염과 토지 강제 수용 때문에 대규모 주민 반대 투쟁이 일어나 결국 94년에 폐쇄됐다. 하지만 그곳에도 포탄과 중금속 오염이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해군이 10년 동안 한 일이라고는 불발탄의 70%, 그것도 지표면에서 보이는 것만 치웠다. 땅 속 탄피나 불발탄은 손도 대지 못했다. 중금속 오염 전체 면적의 10분의 1만 정화했을 뿐이다. 원주민들의 원성이 높지만 미군은 ‘더 이상 예산이 없다’고 발뺌하고 있다. 섬의 90% 은 죽음의 땅으로 남겨졌다.

“일대 지하수가 다 오염됐다”
우리나라에서도 군 기지 환경오염은 큰 사회적 이슈였다. 지난 99년, 육군이 정비창으로 사용하던 부산 문현동 부지 3만2천평을 부산시가 금융 단지로 개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사 도중 일대가 기름에 심각하게 찌들어 있는 것이 발견돼 공사가 중단됐다. 시민들의 따가운 눈총과 부산시의 강력한 요청에 육군은 자체 예산 122억원을 들여 3년 동안 정화했다. 각종 최신 공법들이 도입되고 여러 전문가 손을 거쳐야 했다. 중금속 오염은 미군기지가 우리 군 기지보다 훨씬 심각하다. 미군기지처럼 오염물질이 다양할 경우 한 가지 방법만으로는 정화하기 어렵다. 여러 공법을 사용해야 하니 당연히 정화 비용은 늘어난다. 2003년 우리나라 민간에서 벌어진 오염 정화 건수는 166건, 전체 치유비용은 70억원 정도였다. 이와 견주면 23개의 반환 미군기지의 정화 비용은 국내 역사상 최대 규모가 될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기름에 찌든 흙보다 더 심각한 것은 지하수다. 부산 문현동도 지하수 오염이 심각했는데 시료의 80%가 지하수 수질기준은 물론 폐수배출 허용기준을 크게 초과했다. 지하수 오염은 베일러라는 이름의 측정기구를 사용해 확인한다. 2m 정도 되는 원통형 관을 땅속에 넣어 오염된 기름을 추출하는 방식으로, 전문 계산법에 따라 환산된 두께로 오염 정도를 알아본다.  이에 따라 의정부 카일 기지는 4m88cm, 파주 에드워드 기지는 1m가 나왔다. 부경대 이민희 교수(환경공학)는 “이 정도의 양이 측정 대상인 지하수에 둥둥 떠있다는 건 일대 지하수가 거의 다 오염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오염토양보다 오염지하수 정화에 비용이 더 든다. 이 교수는 “지하수 정화 비용이 제외된 채 계산된 환경부 정화 비용은 실제 정화가 시작되면 훨씬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SOFA 규정에 따른 105일 조사기간으로는 정밀 조사를 할 수 없어 지하수 오염의 확산 범위는 알 수가 없다”며 “지하수 정화 비용 역시 현재로서는 추산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오염 정도도, 정화 비용도 알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환경부는 유류 오염은 토양 경작법을, 중금속 복합 오염일 때는 토양 세척법을 택해 정화 비용을 산정한다. 하지만 토양지하수 정화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환경부는 미군기지의 오염된 흙과 지하수 샘플을 각각의 방법으로 정화해보는 실험도 하지 않았다. 실제 땅을 파서 정화를 시작하면 예상 비용이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105일로 제한된 현장 조사도 부족한데 이를 통해 결정한 정화 방법이 현장 상황에 맞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미국이 적용하는 이중잣대


필리핀은 미군이 버리고 떠난 기지의 지하수 오염으로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다. 91년 피나투보 화산을 피해 이주한 사람들이 비어 있는 클락 미 공군기지 부지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 식수, 생활 용수로 사용하던 우물에서 기름 냄새가 나고 물에 뭐가 떠 있기도 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서” 계속 우물을 사용했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시름시름 앓고 죽어갔다.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고 이제는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피해는 자식들에게 이어져, 현재 미군기지 지하수 오염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상당수가 백혈병과 소아마비를 앓고 있지만 제대로된 치료도 받지 못한다. 지금까지 클락에서는 520명 이상, 수빅에서는 1천934명의 피해자가 집계됐다. 피해자를 지원하는 미군기지 정화위원회 뮐라 발도나도씨는 2005년 한국 방문 때 “필리핀의 고통은 다른 국가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은 시간이 있으니 미군에게 정화를 요구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국내의 오염·정화 기준을 미군에게 요구하는 게 무리일까. 미국에서도 5차례 기지 통폐합(BRAC)을 할 때 늘 기지 오염 문제가 따랐다. 이들 기지는 모두 미국 환경법에 따라 정화하고 있다. 한국 토양환경보전법은 16개의 물질만 오염물질로 규정하지만 미국은 130개가 넘는 물질을 오염물질로 정하고 있다. 만약 주한 미군기지를 미국법에 따라 조사한다면 더욱 심각한 오염 실태가 나올 것이다. 미국 국내법보다 훨씬 약한 한국법을 지키라는 요구에도 미군은 모르쇠로 일관한다. 미군이 미국과 해외에 적용하는 이중잣대는 여러 국가에서 비난받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 왜 미군기지 오염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와 해법 마련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일까. ‘환경’은 미군의 최대 아킬레스 건이다. 미군은 최대한 노출을 꺼리고 있고, 국방부 외교부는 오히려 미군을 도와준다는 얘기가 공공연할 정도로, 정부 차원에서 제대로 된 항의를 해본 일이 없다. 춘천 캠프 페이지 오염조사 결과를 공개하라며 시민단체가 제기한 소송의 재판이 열렸을 때, 판사가 자료 공개로 생기는 ‘외교적 불이익’이 무엇인지 물었다. 환경부 담당자는 “앞으로 반환될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조사에 차질을 빚게 될까 우려된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과거 일부 언론에서 미군기지에서 벌어진 오염사고를 보도하자, 미군이 환경부에게 ‘등에 칼을 꽂았다’고 항의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몰래 언론에 자료를 흘리는 것 아니냐며 환경부를 공격했다는 얘기다. 사실 그 자료는 SOFA 규정을 몰랐던 해당 지자체가 공개한 것이다. 주한미군이 주둔한 이래 미군 사령관이 한국민에게 처음으로 공식 사과한 것은 2000년 한강 독극물 방류사건 때였다.  

민간 공동 조사단 가능할까
미군기지가 반환된 이상 국방부는 국내법에 맞게 정화할 의무가 있다. 정화를 하다 보면 미군기지 오염은 어쨌든 공개될 것이다. 쉬쉬하면서 일을 추진해도 언제가는 ‘불붙게’ 된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투명하게 정밀 조사를 하고 정화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오염 조사를 꼼꼼이 한다 해도 그 비용은 그리 많이 늘어나지 않지만, 잘못된 조사를 근거로 정화 계획을 짤 경우 비용은 몇천배, 몇만배 늘어날수 있다. 반환된 기지에 대한 정밀 조사는 반환될 기지의 오염 확산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추가 반환을 앞두고 양국의 기준을 만드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지난 6월 초, 환경부는 시민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방부에 민관 공동 정밀 오염조사단 구성을 요청했다. 국방부의 결정에 관심이 모아진다.

피해 병사 없었으니 안전하다?
    – “성의를 보였다”며 떠난 미군의 거짓말

지난해 7월14일, 15개 미군기지 반환 합의 당시 미군은 ‘KISE’ + 8개항의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KISE: 알려진 급박하고 상당한 오염). 그리고 이것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진전된 조치이자 성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엄격하다는 독일 환경법을 따르는 주독 미군과 비교해서 하나도 나은 점이 없다. 주한미군은 토양과 지하수 오염은 손도 대지 않았다. 그나마 약속한 것도 다 하지 않은 채, 현장 검증만 해도 확인될 뻔한 거짓말을 하고 유유히 기지를 떠났다.

미군은 자국법 기준치를 넘은 경우에도 지금 당장 인체에 유해하지 않으니, KISE에 해당되는 오염은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 내에서는 군 기지들의 특성과 시설별 치유대상 물질 목록, 검출량, 치유수준, 치유공법, 치유비용 등을 분석해 KISE 해당 여부를 판단한다. 뿐만 아니라 “잠재적 위험”까지 포함해 폭 넓게 해석하고 있다. 주한미군 규정에도 “주한미군의 의무 환경 전문가가 판단한 자료를 토대로 주한미군 사령관이 최종 판단”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미군은 KISE를 판단한 보고서를 한국에 제출하지 않았다. 미군은 자신들이 기지를 사용할 때 피해자가 없었다는 이유로 오염에서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주한미군은 음용수, 생활용수 모두를 기지 외부에서 공급받았다.

8가지 조치 사항은 지하에 있는 유류 저장탱크를 제거하는 등 ‘청소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사격장 불발탄도 다 제거했다고 했지만 미 공군이 60년 동안 폭격 훈련을 했던 매향리에는 불발탄이 여전하다. 2005년 폐쇄 이후 우리 국방부가 한 일은 고작 갯벌 출입을 금지하는 “위험” 경고판을 설치한 것이다.

각 기지에 방치된 ‘PCB’ 품목 중 13.5%가 국내 기준치를 넘었고, 심지어 환경기준의 44배에 달하는 것도 있다. 전기 절연성이 좋아 변압기에 사용되는 PCB는 분해 되지 않고 생물체 내에 농축되는 공포의 독성 물질이다.

미군은 국회 현장검증 기지 중 하나였던 캠프 에드워드 등 5개 기지에서 ‘최신 공법’인 바이오 슬러핑으로 지하수에 떠 있는 기름을 제거했다고 밝혀 왔다. 하지만 이행 여부에 대한 검증은 거부했다. 지난 3월17일 기지별로 회수된 기름의 양만 한국 정부에 통보하고, 환경부의 검증을 거부했다. 미군이 6개월 동안 했다는 바이오 슬러핑의 오염물 처리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는 셈이다. 당초 처리를 담당했던 삼성물산도 오염 범위와 정확한 오염양을 측정하지 않고 ‘무조건’ 6개월간 계약을 했기 때문에, 작업 효과는 알 수 없다고 밝힌다. 바이오 슬러핑 기법은 심각한 지하수 오염 치유에는 효과가 없다는 논란이 따른다. 게다가 삼성물산은 이에 대한 무자격업체로 드러나 토양환경보전법 위반 혐의로 한강유역 환경청 수사를 받고 있다.

1996년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 한 차례 환경 정화를 둘러싼 공방이 있었다. 냉전시대 미군이 사용하던 기지를 캐나다에 반환하면서 PCB 등 오염 문제가 생기자, 캐나다 정부는 “미국은 국제법상으로 분명한 정화 책임이 있다”며 미군에 정화 비용을 요구했다. 당시 미군은 1억달러어치 무기 구매 비용을 삭감해주겠다며, 이는 캐나다와 동맹 관계를 고려한 “성의(an ex gratia)”라고 밝혔다. 반환된 미군기지의 환경정화는 과연 미군의 “성의”일 뿐일까?

* 한겨레 21 6/18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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