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중심 다국적군은 점령군 외연확대에 불과할 뿐

2003.10.17 | 군기지

– 유엔 이라크 결의로는 이라크 평화 가져올 수 없어
– 전투병 파병 배제하고 이라크 민생치안 지원책 등 대안 논의해야

1. 지난 밤 유엔안보리에서 이라크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당초 이라크에서 민정이양 일정이 제시되어야 한다며 버티던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 유럽국가들도 미국의 손을 들어주고 말았다. 유엔결의는 미국이 막판에 이라크 민정이양 정치일정 및 다국적군 임무에 대해 유엔사무총장과 협의해 유엔안보리에 보고하겠다는 내용의 수정안을 제시한 데 대해 안보리 이사국들이 조속한 민정이양 요구를 철회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엔이 이라크 국민들의 입장에서 의한 이라크 재건을 향한 보다 민주적이고 건설적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도리어 미 점령군 중심의 다국적군 구성 등 갈등유발적 해결안을 의결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2. 우리는 지난 발족회견문에서 명시한 바와 같이 유엔에서 다국적군 구성 결의가 있다하더라도 우리 전투부대를 이라크에 파견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힌다.
우선, 미국이 유엔에 제출한 다국적군 구성안은 ‘평화유지군’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유엔 평화유지군(Peace Keeping Force)의 주요임무는 분쟁지역의 중간에 들어가, 질서를 유지하고, 협정위반 등 분쟁 현장을 감시하는 현상유지가 주요 임무이고, 자위권을 제외하고는 강제군사조치를 할 수 없다. 파견 시에는 접수국인 이라크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반면, 미국이 추진중인 다국적군은 이라크 내 미국의 점령군으로서의 지위는 포기하지 않은 채 이라크 시민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구성되는 점령군의 다국적 확대에 다름 아니다. 유엔 평화유지군과는 달리 다국적군의 군비는 유엔이 아닌 참전국의 분담으로 충당되게 된다.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이 설사 유엔의 승인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코 이라크에 평화를 가져다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미 이라크 저항세력들이 터어키·스페인 등 다국적군에 대한 공격과 저항을 선포하고 실행하고 있다.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도 이라크에서 대규모 테러를 도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유엔본부마저 두 차례 폭탄공격을 받은 바 있다. 점령군을 정당화해주는 유엔결의가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한국과 함께 파병압박에 직면해 있는 파키스탄의 유엔주재 대사가 미국의 이라크 점령이 계속 폭력을 불러올 것이라며“파키스탄은 이라크에 군대를 파병하지 않을 것”이라 밝힌 점은 시사하는 바 크다.

3. 다국적군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점령군 미군이 감당해야 할 군사적 위험과 경제적 부담을 나누어 떠맡는 일이다. 게다가 유엔에서 다국적군 파병을 동의한 국가들은 결의안 통과에 협조한 데 따른 ‘보상(?)을 기대하면서도 비용과 전투병력은 파견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들 나라들은 주로 경찰교육 등 그야말로 최소한의 민생치안 지원에 그칠 전망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한국이 유엔 결의를 금과옥조로 여겨 대규모 전투병을 파병하는 것은 어리석고 실속 없는 일로서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서커스단이 버는 격”이라 할 것이다.

4. 미국이 유엔결의를 얻어냄에 따라 파병압력이 거세질 전망이다. 실제로 유엔결의가 통과되었으므로 전투병을 파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국민행동이 일관되게 강조해 왔듯이, 우리가 전투병 파병을 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유엔 결의 여부를 파병의 시금석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우리는 파병여부에 대해 민주적 의견수렴절차를 거쳐 결정할 것을 주장해왔고 정부도 약속해왔다. 민주적 공론화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유엔결의의 내용과 성격에 대해 국민이 정확히 알 수 있도록 제대로 알리는 일이다. 이로써 아랍의 화약고가 되어버린 이라크에 점령국의 일원으로 전투부대를 파견하는 것이 국가의 장래를 위해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 국민들의 현명한 판단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아울러 유엔결의가 다국적군 승인 외에도 “유엔과 유엔이라크지원단(UNAMI)이 인도적 구호와 경제재건,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토록 하기 위한 상황조성, 대의제적 정부 수립을 위한 제도 구축 등에 관해 이라크에서 역할을 강화할 것”을 결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투병 파병을 배제한 다른 차원의 대안적 지원책들, 예컨대 민간구호활동, 경제지원 등에 대해서도 국민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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