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소음 소송을 보라

2007.12.07 | 군기지

주일미군 사령부가 있는 요코타 공군기지는 도쿄 중심가에서 30km 떨어진 타치가와시, 훗사시 등 6개 행정구역에 걸쳐있다. 오키나와를 제외한 일본 본토에서 가장 큰 기지이며 5만6천명을 수용한다는 도쿄돔의 157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지난 1976년 군용비행장 소음 소송이 일본에서 처음 시작된 곳으로, 5년 뒤인 1981년 원고 41명의 피해가 모두 인정됐다. 이 소송은 일본 전역에 영향을 미쳐 그 뒤 모두 4개의 미군기지 상대 소송이 제기되 현재까지 진행중이다. ‘요코타 폭음소송단’ 사무국장 후쿠모토(55세)씨는 “1974년 오사카 민간공항 소음피해를 인정하는 판결을 보고 군용 비행장도 다를것이 없다는 생각에 소송을 제기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소송을 시작한 사람은 후쿠모토씨의 아버지로 2년 전 사망했지만 그는 일본 내 미군기지에 대한 인식 전환의 계기를 만든 사람이다. “국가 안보를 위해서 국민은 피해를 감수해야만 한다”는 미군과 일본 정부의 기존 주장을 부정한 첫번째 사례를 만든 사람이다. 요코타 기지에는 주로 수송기나 미군전용 여객기가 드나들지만, 낮게 날고 한밤중에도 비행을 하기 때문에 주민들은 일상을 크게 방해받는다. 올 5월 5천명의 원고인단이 참여한 ‘신소송’의 슬로건은 “조용한 하늘을 돌려달라”이다.

사가미하라시, 자마시 등에 걸쳐 있는 아츠기 기지는 항공모함 탑재기들의 훈련장소이다. 고속으로 상공을 날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항공모함의 짧은 활주로에 착륙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착륙 기술이 필요하다. 11월5일 아츠키 기지 활주로 가까이에 가자 귀청을 찢는듯한 마찰음 때문에 제대로 서 있기기 힘들었다. 활주로에 내려앉을듯 하던 전투기가 또 다시 떠오른다. ‘터치 앤 고’(Touch & Go)라고 하는 이착륙 반복 훈련이다. 이곳의 소음 피해 인구는 반경 10Km안에 약 24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집중 훈련 기간에는 며칠 사이 가나가와 현청에만 5천통의 민원 전화가 울려 다른 업무가 마비될 정도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지난 1976년 아츠기 기지 폭음방지기성동맹(이하 폭동)이라는 주민 조직이 요코타 기지에 이어 소음 소송을 시작했다. 최근 3차 소송에서 44억엔이라는 일본 역사상 최대 보상액 판결을 받았다. 폭동은 1970년대 말 활주로 끝에서 타이어에 불을 붙여놓고 비행을 중지시키려 했던 투쟁으로도 유명하다. 주민들이 격렬하게 반대하자 결국 미군은 1993년부터 야간이착륙훈련(NLP)은 이오지마라는 섬으로 옮겨가 실시했다. 그러나 올초 이 훈련이 다시 재개돼 사흘만에 200건 넘는 민원이 발생했다.

한국은 군용 비행장 피해 인구가 약 100만명이라는데, 일본은 아츠기 기지 한 곳만 240만명이 소음에 노출돼 있다. 아츠기 기지 현장에 이어 폭동 사무실을 찾았다. 원고로 참여한 주민 6명이 4차 소송을 위한 총회 준비로 분주했다. 12월에 시작될 이번 4차 소송은 일본의 미군기지 소음 소송 역사에서 큰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처음으로 비행금지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동시에 진행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일본의 다른 지역 소송에서는 야간 비행금지 등을 요구했지만 대부분 기각되었다.

오키나와 기노완시의 중심부에는 미 해병대가 사용하는 후텐마 비행장이 있다. 지난 2004년 8월 오키나와 대학에 헬기가 추락했다. 사람은 다치지 않았지만 미군이 헬기 잔해가 떨어진 오키나와 대학 내부에 일본 경찰의 출입을 제한해 큰 논란이 일었다. 이 사고 뒤 소음뿐 아니라 추락에 대한 불안을 호소하는 민원들이 점점 늘고 있다. 

기노완시는 민원의 형태를 분류해 일본 정부와 미군에 매일 팩스를 보낸다. 물론 미군에서는 아무 답변이 없다. 기노완시 기지정책부의 야마우치 시게오 부장은 “주민의 민원과 목소리에 성실히 대응하는 것은 지자체의 당연한 일”이라며 “미군이라도 예외가 없다”고 말했다. 후텐마 기지가 바라보이는 기노완 시청의 옥상에는 “Don’t Fly our city(우리 도시 위를 날지 마세요)”라고 큰 글씨로 적혀있다.

동북아 최대의 미 공군기지인 가데나 기지는 가데나정 면적의 70%를 차지한다. 주민 거주지보다 더 넓은 면적을 미군이 쓰고있는 셈이다. 2000년 5500명의 주민이 참여한 ‘신소송을 위한 건강 조사’에서는 11명 주민들이 난청인 것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이곳에서는 1년에 70㏈ 이상인 미군의 비행 횟수가 4만번에 달한다. 그러나 아직도 난청을 포함해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인정받는 것이 쉽지 않다. 구체적인 주민 역학 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거의 없기 대문이다. 정부나 방위성에서 조사한 일은 일본 전역을 통틀어 단 한번도 없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소송 재판부는 소음 측정 결과에 기대어 판단하는데, 주민들이 승소하면 엄청난 배상비용이 발생하므로 일본 정부로서는 큰 부담이다. 그러니 아예 역학 조사를 회피한다. 최근 한국도 피해기준을 80웨클(가중등가평균총소음량)에서 85웨클로 올려 판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피해 범위를 줄여 논란이 일고 있다.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미군기지의 소음 피해에 대해서는 소송을 통한 주민들의 대응활동이 대부분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음 저감 방안을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내놓는 것은 크게 대비된다. 1976년 제정된 ‘군사 시설 주변 정비에 관한 법’으로 비행장 주변 건물에 대한 방음창 설치와 소음 측정망 설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뒤 민간공항 주변에만 적용되던 피해방지 대책이 주민들의 요구로 미군 비행장까지 확대됐다. 

일본의 지자체는 상시적인 소음 측정망을 갖추고 있다. 측정망 하나를 설치하는데 약 300만엔 정도가 드는데 방위성이 비용을 지원하고 지자체가 공동으로 운영한다. 가데나정은 9개, 사가미하라시는 6개를 운영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기록이 저장되며 5초간 기준치인 70㏈이 넘는 소리는 시간과 소음도가 자동으로 저장된다. 지자체는 이 모든 기록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매년 소음 측정 결과를 상세한 지도를 첨부해 보고서로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각 지자체는 미군의 야긴비행 금지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오키나와현은 1996년 미군과 ‘소음방지협정’을 만들어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 비행을 금지하도록 했다. 그러나 단서 조항에 “미군이 필요할 경우 운용 가능하다”고 되어있어 실질적인 효과는 없다는 것이 주민들 의견이다. 가데나 기지만 해도 1년에 야간비행이 3천회 이상이다. 요코타와 아츠기 기지에도 일미 합동위원회 비슷한 합의가 있었지만 같은 이유로 실효성이 적다. 하지만 소음 문제에 대해 미군과 협의조차 없고, 야간비행에 대해 아무런 규제장치도 마련하지 않은 한국보다는 훨씬 진전된 형태이다.

한국의 매향리나 일본의 후텐마에서는 주민들의 요구로 비행장이 폐쇄되거나 이전된다. 그러나 군대는 떠나도 상처는 남는다. 지금 양국에서 이뤄지는 소음 소송 판결은 단순한 귀찮음’에 대한 보상에 그치고 있다. 주민들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겪고 있는 피해를 규명하는 일이 남아 있는 숙제이다. 한국의 국방부는 소음 측정을 하면서도 소음도가 적은 지역만 골라서 측정하거나, 측정을 할 때 비행 고도를 높이고 선로를 바꾸어 소음도를 낮춘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그나마 측정 결과는 한번도 공개되지 않았다. 미군기지 주변 소음측정 결과가 국가 기밀일까?

● 글 / 사진 : 녹색연합 녹색사회국 고이지선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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