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8 현장에서 – 오키나와에서 불어오는 평화의 바람

2001.10.19 | 군기지

이유진 / 녹색연합 사업1국

17.4km에 달하는 아시아 최대 미공군기지, 가데나기지를 인간띠로 완전히 둘러쌀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생명을 보물처럼 여기는 오끼나와 사람들의 평화에 대한 염원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서로 손을 맞잡고, 노란색 손수건에 평화의 글을 담아 기지 포위 행동에 참여한 사람은 모두 2만7천여 명.
한국에서 미군이 독극물 한강 방류사건 사과문제로 서울시와 씨름하고 있을 때, 오키나와에서는 G8정상회담과 함께 대대적인 반기지 시위가 시작되었다. 이 시위에 미군기지 문제를 똑같이 갖고있는 한국의 시민단체가 함께 했다. 일본국토 면적의 0.6%밖에 안 되는 오키나와에는 미군전용기지 75%가 몰려있고, 2만7천여 명 이상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한마디로 오끼나와는 일본 속의 ‘미군기지 섬’인 것이다. 당연히 크고 작은 미군범죄와 그들에 의한 환경파괴는 끊임없이 일어났고, 95년 미군의 소녀강간사건을 계기로 오끼나와 주민들은 모두 반기지운동 투사가 되었다.
21일, ‘오키나와에는 기지가 필요 없다’를 외치는 집회가 나고시 사쿠라 공원에서 열렸다. 수십 여 개의 단체가 한데 모여 ‘기지는 필요 없다’라고 한 목소리로 외쳤다. 듀공 인형을 만들어 온 사람, 부채에 ‘NO, BASE’라고 써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사람, 어깨띠를 두른 사람, 기지반대의 염원을 수를 놓아 표현한 사람. 미군기지반대 집회장이 아니라 작은 전시축제에 온 듯한 느낌이다. 이번엔 준비하지 못했지만 오키나와 집회에는 항상 수화설명이 함께 한다고 한다. 집회 하나에도 장애인을 배려하는 따뜻함이 배여 있다. 그리고 집회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도 아무런 불편 없이 함께 한다. 21일에서 23일까지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도 그 누구도 찡그리지 않는, 평온하면서도 즐거운 집회가 나고시를 한바탕 시끄럽게 만들었다.
오키나와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동아시아에서는 미군이 철수하고 있는데 오키나와와 한국만은 예외이고, 오히려 일본과 호주에 병력이 확충되는 것을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한-오키나와 민중연대의 도미야마씨는 “미군은 오키나와 땅을 빌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 그리고 걸프전을 치뤘다”“베트남전 당시 학생이었던 난 그걸 막기 위해 시위해 참가했으나 결국 베트남을 향해 날아가는 비행기를 막을 순 없었다. 미안하다”라고 말해 베트남에 대한 아픈 죄책감을 갖고 있는 우리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기지를 반대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이 오키나와 땅을 빌려 전쟁을 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깊은 반감을 갖고 있었다.
집회가 끝나고 우리는 후덴마 미공군기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가까즈 공원으로 향했다.기노왕시에 있는 후덴마 미군기지는 시 면적의 33% 달하는 금싸라기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3층 전망대 위에는 후덴마기지에 대한 약도, 특징 그리고 주로 이륙하는 비행기 기종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삽화가 전시되어 있다. 특히 ‘기노왕의 꿈’이라고 명명된 난에는 기지를 반환 받으면 이곳에 역사박물관, 테마파크, 쇼핑단지와 주거지역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도면위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 외에도 오키나와 미군기지는 주민들이 지켜볼 수 있도록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고, 단정히 정리되어 있다. 높디높은 담장 뒤로 미군이 그 속에서 무슨 일을 진행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우리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매향리 폭격장과 미8군 독극물 방류사건을 G8정상회담을 계기로 세계에 알리기 위해 오키나와에 왔다’라는 우리의 목적은 오키나와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연대’라는 것은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갈 때 싹트는 것이다. 그들이 매향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알고 있는 것만큼 나는 오키나와를 알지 못했고 그래서 그들로부터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오키나와에서 모든 주민이 함께 하는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단순히 기지에 반대하는 것을 넘어서 인권과 자연을 파괴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는 평화의 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시위도중 민중가수 신야상이 부른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었다. “오키나와의 하늘과 바다, 그리고 대지는 우리의 것이다, 오키나와를 돌려달라” 앞으로 오키나와와 한국은 잃어버린 우리의 ‘평화로운 삶’을 되찾기 위해 함께 걸어가야 할 것이다.

SOS!! 오키나와 듀공

오키나와 동부해안에는 일본에서도 오키나와에만 서식하는 듀공이 살고 있다. 바다포유류인 듀공은 주로 해초를 먹고살기에 ‘바다소’라고도 불리운다. 초기 선원들은 듀공이 새끼를 안고 젖을 먹이는 모습이 꼭 사람 같다고 해서 ‘인어’라고도 불렀다. 전세계 듀공의 70%는 듀공을 법으로 보호하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살고 있고, 나머지 개체가 필리핀, 인도네시아, 오키나와에 흩어져 살고 있다. 현재 듀공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정한 멸종위기 야생동물이자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거래에 대한 협약(CITES) 부속서 1에 속해 세계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오키나와 듀공네트워크는 환경파괴로 듀공의 서식지가 점점 사라져가고 그물에 걸려 죽는 듀공이 많아지면서, 1997년 시민들이 모여 만든 듀공 보호단체이다. 꾸준한 서식지 보호활동과 개체수 조사를 통해 오키나와 연안에 50마리의 듀공이 살고 있다는 것을 세계에 알린 단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일본정부는 듀공을 국가지정 멸종위기 동물 리스트에 포함하지 않는 등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정부차원에서는 아직 한번도 정밀 조사를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최근 오키나와 듀공네트워크의 사람들은 갑자기 바빠졌다. 미군과 일본정부가 후덴마 미공군기지를 듀공이 서식하는‘해노코’로 옮겨 헨리포터 해상기지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 사람들이 주민투표를 통해 기지이전반대 의사를 충분히 밝혔지만 미군과 일본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해노코에 해상기지가 건설되면 소음은 물론 오폐수로 인해 듀공의 서식처는 심각하게 파괴될 것이고, 먹이 감소, 해류 방향 변화, 기름유출 사고 가능성 등 듀공의 생명을 위협할 요소가 엄청나게 증가한다.
오키나와 듀공네트워크의 다카에스 아사오씨는 “이제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는 사람뿐 아니라 듀공의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생명’을 위협하는 미군기지가 이 땅에서 사라지길 원한다”라며, 오키나와의 듀공 보호활동에 대한 관심을 호소한다. 아사오씨는 지난해부터 듀공에 대한 정밀조사를 하기 위해 보호기금을 모으고 있다. 현재 한국 돈으로 6천만원 정도를 모았고, 조금만 더 모으면 정밀조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눈을 감고 오키나와의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치는 듀공을 상상해보자. 지금 듀공은 오키나와 사람들만큼이나 우리에게 ‘SOS’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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