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평화][전쟁과 환경파괴]걸프전 증후군 Ⅱ

2003.03.25 | 군기지

-걸프전 발발과 다국적군 참전-
지난 1990년 8월 2일, 이라크군대는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인접한 쿠웨이트의 국경을 넘어 쿠웨이트의 일부 지역을 점령하였다. 이라크와 쿠웨이트는 오래 전부터 접경 부근의 유전지대에 대한 영유권을 놓고 잦은 분쟁을 일으켜 왔었으나, 8년간에 걸친 이라크-이란 전쟁에서 승리한 이라크가 그 여세를 몰아 순식간에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나흘 뒤인 1990년 8월 6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라크에 대해 무역제재조치를 취하는 결의안(Resolurion 660 & 678)을 통과시키고, 이라크로 하여금 쿠웨이트로부터 철수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이라크는 이를 거부하였다.

이에 따라 미국, 영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우리나라 등을 포함한 36개국으로 구성된 다국적군은 이라크를 쿠웨이트 영토로부터 축출하고 쿠웨이트의 주권을 회복한다는 명분하에 이라크와 전면 전쟁에 나서게 되었다.  페르시아만(Persian Gulf)에서 발발한 이 전쟁을 걸프전이라고 부르며, 이라크군대가 쿠웨이트에서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1991년 1월 16일부터 2월 28일까지 44일간 계속되었다. 이 전쟁을 제 1차 걸프전, 그리고 1998년 12월 16일의 이라크 대공습을 제 2차 걸프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국적군 군대는 이라크 및 쿠웨이트와 접경하고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사막에 집결하여 대대적인 작전을 수행하였다. 이를 일컬어 “사막의 방패(Desert Shield)” 작전과 “사막의 태풍(Desert Storm)”작전이라고 불렀으며, 군인들은 전력이 막강한 이라크 군대와의 전투 및 생물학전 . 화학전에 대비하여 여러 달에 걸쳐 강도높은 훈련을 받았다. 이들 작전은 미국정부의 막강한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고, 군대를 파견하지 않은 국가 특히 사우디 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일본 등은 모두 530억불에 이르는  지원금을 기부하여 군 작전 비용의 상당부분을 지원하였다.

걸프전에서는 이라크군에서 쏘아올리는 스커드 미사일에 맞서 다국적군이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모두 282발 발사하는 등 양측이 최신 무기들을 사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열화우라늄탄을 다량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열화우라늄탄은 미국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약 70만발이 발사된 사실이 밝혀졌으며, 그 결과 이라크 북부지역이 방사능에 오염되어  어린이들이 많이 희생되었고, 그 지역 주민들이 지금까지도 높은 암 발생율로 고통을 받고 있다.

이 전쟁을 통해서 이라크군은 탱크 4천대, 대포 2천 140대, 장갑차 1천 856대, 헬기 7대, 전투기 240대가 파괴되었으며, 군인 10만명이 사망, 30만명이 부상, 15만명이 실종되고, 6만명이 포로로 잡히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이에 비해 다국적군은 탱크 4대, 대포 1대, 장갑차 9대, 헬기 17대, 전투기 44대 등 극히 적은 피해를 입었으며, 인명피해도 작전 중 사망 148명, 부상 458명, 사고에 의한 사망 121명 등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 걸프전 증후군의 출현과 피해상황 –
걸프전은 다국적군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이라크군은 처음부터 무기나 병력 규모 등에서 다국적군의 적수가 되지 못하였다. 사담 후세인의 군대는 서둘러 쿠웨이트에서 철수하였고, 전쟁에 참가했던 다국적 군대의 군인들은 모두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이제 전쟁으로 인한 고통과 위협은 사라지고 모두가 일상적인 생활로 복귀하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걸프전 참전군인들 사이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만성피로와 피부 발진, 탈모, 두통, 근육통, 관절염, 신경마비, 불면증, 우울증, 정신착란, 기억상실, 천식, 호흡장애, 위장 질환, 심장혈관, 생리 이상 등 확실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갖가지 증세의 질환들이 걸프전 참전군인들을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러한 증세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으며 이로 인해 고통받는 군인들의 수도 더욱 더 늘어나게 되었다. 더 큰 문제는 참전군인의 2세들이 선천성 기형, 면역결핍, 호르몬 이상, 감각기관 마비 등의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태어나는 사례가 점차 많아진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는 배우자 등 가족과 이를 치료하는 의료진에게서도 참전군인들의 경우와 유사한 증세가 나타나기까지 했다.

이같이 걸프전 참전군인들과 그 가족들이 겪고 있는 원인불명의 각종 질병을 일컬어 걸프전 증후군(걸프전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걸프전 증후군은 미국과 영국, 캐나다의 참전군인들에게서 심각하게 나타났으며, 특히 미군의 경우 70만명에 달하는 참전군인들 중에서 무려 30만명에 달하는 수의 군인들이 이러한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이중 특히 증세가 심하여 미국 보훈처에서 장애등급 판정을 받은 참전군인의 수는 모두 18만 3천명으로, 미군 전체 참전군인의 26%에 달한다. 걸프전 증후군으로 인해 사망한 참전군인은 400명이 넘으며, 퇴역한 군인들의 수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과 영국 정부는 처음에 걸프전 증후군의 실체를 부인하였다. 이들 정부에 따르면 걸프전 증후군은 단순히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것일 뿐이며, 전쟁에 의한 직접적인 피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양국 정부는 걸프전 증후군이 화학무기, 백신, 또는 열화우라늄탄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는 참전군인들의 주장을 반박하며 이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미국정부는 지난 1997년에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참전군인들의 통증을 덜어주기 위한 치료를 하는 한편, 그 원인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현재 이들 피해군인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매년 10억불에 달하며, 군인병원에서 이들의 치료를 맡고 있다. 그러나 그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명확한 결과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참전군인들은 미국정부가 사실을 은폐하고 연구결과를 날조하고 있다며 강한 불신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걸프전 증후군의 원인규명과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조직을 결성하고, 자신들의 권익을 되찾기 위해 활발한 운동을 하고 있다.

출처>>http://user.chollian.net/~precepe/pubilc_htm/frame2.htm#cha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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