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2003]생명의 아름다움은 생명이 완전할 때 지켜질 수 있습니다.

2003.04.29 | 군기지

글   윤주영(자원활동가)

4월 26일 12시 반, 인사동 거리
12번 징이 울립니다. 이것은 완전한 소리입니다. 생명의 근원을 일깨우는 소리입니다.


  서양에서 12는 완전과 완성을 상징합니다. 시계에 12시까지만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닙니다. 12가 완전수로 여겨진 데에는 성서적 배경이 있습니다. 12의 완전성은 12지파와 12사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인 12지파로부터 하나님의 구원은 시작되었고, 예수님의 제자들인 12사도는 교회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이들은 곧, 생명의 근원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12의 완전성은 이러한 생명의 근원성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근원은 완전하고, 완전함은 아름다움을 창조합니다. 그래서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습니다. 그 아름다움은, 생명이 완전할 때 지켜질 수 있습니다.

12번의 징소리는 잠든 생명의 소리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12년 동안 썩어온 새만금의 신음을 전해왔습니다. 새만금 간척 사업이 시작된 지 올해로 꼭 열두 해째가 됩니다. 새만금이 앓아눕기 시작한지 벌써 12년이 지난 것입니다. 12번 징소리, 그 울림은 저 멀리 있는 새만금의 아픔을 우리의 귀밑까지 전해왔고, 그 소리는 도시의 소음을 물리치고 생명의 소리를 불러내고 있었습니다.

구성진 음성이 생명의 소리를 펼칩니다. ‘에이야 술비야, 어허허 술비야’ 소리에 맞추어 천천히 푸른 바다가 떠오르고, 어부들의 힘찬 물질은 그 바다를 가릅니다. 진도의 민요 ‘술비소리’는 출항하기 전 그물을 배에 실을 때 뱃사람들이 부르던 소리입니다.


  그 소리를 도심 한복판에 불러낸 것은 서울대 민요동아리 ‘아리랑.’ 장구(정금수(97))의 장단에 맞추어 한 사람(김장훈(99))이 ‘쿵’하고 소리를 매기면, 나머지 사람들은(전영신(99), 박정재(99), 김격락(96)) ‘짝’하고 소리를 받습니다. 멋드러진 가락은 금새 행인의 발목을 붙들었고, 남인사동 마당에는 흥겨운 한 판 잔치가 펼쳐졌습니다. 절로 마음이 들썩들썩이고, 절로 여기저기 추임새가 나옵니다.

‘쌀조구도(어어야 술비야) 걸려주고(어어야 술비야) 앵필이도(어허야 술비야) 걸려주라’
욕심 내지 않고, 꼭 필요한 몫만 자연에서 얻어갔던 우리 조상들의 소박함이 ‘술비소리’를 타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물고기떼(쌀조구)나 어린 물고기(앵필이)는 그물에서 걸러달라 하는 옛 뱃사람의 소박함은 이 거대한 도시에서는 오지 않은 미래보다도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래서는 장사가 되겠냐고, 돈칠을 하고 서있는 도시 곳곳은 저리 떠들어대고 있을 뿐입니다. 생명과 더불어 살던 그 시절의 소리를 이해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술비소리’에 담긴 우리 조상들의 소박한 마음은 이 도시에서는 박제된 과거로만 존재할 뿐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던 옛날을 잃고, 탐욕과 어리석음과 분노만을 키운 오늘날이 존재하는 까닭입니다. ‘술비소리’ 이후 이어진 사회자의 외침은 우리의 가슴을 툭하고 건드립니다. ‘새만금을 죽이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탐욕과 어리석음과 분노’라는.

  잔치는 점점 더 뜨겁게 달구어집니다. 토요일 오후에 어울리는 신나는 ‘엿타령’ 가락에 잔치는 더욱 북적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임진강 뱃사공.’ 힘찬 가락 속에서 우리의 아픈 역사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흘러갑니다. 해방 이후 미군정이 들어서고 삼팔선이 그어져, 북에 있는 뱃사공 남편과 생이별을 한 아낙네. 남편을 그리워하고, 갈라진 조국을 원통해하며 넘은 철조망. 남은 것은 피 묻은 치맛자락… ‘해방’의 허울을 쓴 침략 전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라크의 현실이 우리의 지난날과 겹쳐집니다.

   ‘원통한 아낙네 한맺힌 통곡소리, 물러나라 돌아가라 니놈땅에 돌아가라.’ 우리의 어머니 같았던 아낙내의 절규는 어느새 고통 받는 이라크의 절규로 바뀌어 있습니다. 생명의 소리는 새만금 뿐만 아니라 모든 아파하는 존재의 신음을 담아내며 그 폭이 더욱 넓어집니다.


  이렇게 파하기에는 너무도 흥겨운 잔치입니다. 우리는 한 곡을 더 청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 여어 여러 여루 상사디여’ 농부가가 잔치의 끝머리를 후끈 달굽니다. 생명을 심고 가꾸는 농부의 소리가 다친 생명을 치유하고, 아픈 새만금을 어루만집니다. 생명의 소리가 꽃 핀 정원은 갈수록 아름다움이 더해져갑니다 아름다움은 완전하고, 완전함은 생명의 근원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아름다움에는 생명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 생명이 완전해야, 비로소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 됩니다.

다시 12번 징이 울립니다. 완전한 소리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잠들었던 생명과 양심을 일깨우는 소리입니다.

징소리는 스러져갔습니다. 아름다운 새만금을 잊지 말라고, 그 아름다움은 새만금이 완전한 생명을 누릴 때에만 지켜질 수 있는 거라고… 여전히 아쉬운 듯 속삭이면서… 어느새 도시는 금새 제자리를 찾은 소음들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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