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2003][삼보일배]2003년 5월 3일(토), 삼보일배 37일째

2003.05.04 | 군기지

“지켜보기 참 힘들다. 자꾸만 눈물이 나온다. 동영상을 담아 인터넷에 올리는데 그 안에는 내 흐느낌이 들어있다. 눈뜨고는 차마 볼 수 없다. 차라리 삼보일배에 동참하는 게 낫지 옆에서 따라가는게 더 힘들다. 그렇게 힘든 하루하루가 안타깝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절절하게 말하는데 왜 듣는 귀가 없는가? 인터뷰는 할 필요도 없다. 그동안 이분들이 몸으로 다 말해왔다. 그 긴 싸움동안 그렇게 힘들게 말해왔으니 인터뷰는 필요없다”

2003년 5월 3일(토), 삼보일배 37일째
맑고 더운 날씨, 늦은 오후가 되면서 구름이 조금 낌



전북 부안을 출발하여 줄곧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던 순례단이 지난 며칠동안 내륙으로 방향을 틀어 천안에 도착하더니 오늘 아침에는 드디어 국도 1호선을 만났습니다. 이 길은 목포에서 시작하여 광주·전주·천안·서울·개성·평양 등 우리나라의 주요 도시를 거쳐 신의주까지 가는 길로서 예나 지금이나 사람과 물물이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국토의 대동맥입니다.

그런데, 그 대동맥이 이념의 차이 때문에 끊어진지 무려 59년째에 이르렀음에도 아직 한반도에는 긴장과 갈등이 평화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언제쯤 이 땅에 진정한 화해와 협력, 평화가 오고, 끊어진 맥이 다시 이어질까? 남북이 하나이고 한 형제, 한 핏줄인데 이를 가로막은 분단의 벽은 언제나 열릴까? 이렇게 좋은 봄날에 이 길을 따라 개성과 평양, 신의주까지 걷고싶다’는 생각을 하며 국도 1호선을 따라 걸었습니다.

지금은 저렇게 비지땀을 흘리며 서울까지 가고 계시는 문규현 신부님은 지난 1989년 임수경씨가 북한을 방문하여 남북 사이의 긴장과 적대관계가 커지고 있을 때에, 길 잃은 어린양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자하는 목자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분단의 벽을 넘어야 한다는 시대의 요구에 응답하고자 홀로 북한으로 들어가셨다가 국도 1호선을 따라 판문점을 넘어 서울로 오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시던 분이 이제는 새만금갯벌과 남북한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생명과 평화를 염원하는 삼보일배 대장정에 나서셨습니다. 농담 삼아 평양까지도 삼보일배로 가야겠다는 말을 하지만, 그 거룩한 뜻은 우리가 함께 빠른 시일 내에 실현시켜야겠습니다.

이렇게 만난 국도 1호선은 순례단에게는 시련과 고난의 길입니다. 차량들이 길을 가득 메우고 지나다니며, 길가에는 온갖 기계와 합성수지, 사료 등을 만드는 대규모 공단이 있습니다. 새만금 해창갯벌을 떠난 지 처음 만나는 공장지대라 먼지도 유난히 많고 오염된 공기가 코를 찌릅니다.

새파란 하늘만 보며 걷다가, 칙칙한 회색빛 대기가 낮게 깔려있는 도시의 하늘 아래를 가자니 그동안 맑은 공기만 마시던 코가 따끔거리고 잔기침이 심해집니다. 걸어가는 저도 이 정도인데, 가쁜 숨을 내쉬며 길바닥에 이마를 대고 오염된 공기와 먼지를 죄다 들이마시는 성직자들의 건강이 어떠하실지 참으로 큰 걱정입니다. 게다가 날은 점점 더워지고 성직자들의 얼굴에서는 굵은 땀줄기가 뚝뚝 흘러내리니 말입니다.

이렇게 아침부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 응원군이 왔습니다. 주말마다 삼보일배에 참여하시는 김숙원 교무님께서 아침 일찍 오셨고, 원광대학교 대학법당의 김현 교무님과 부산대학교 무용학과 채희완 교수님, 목포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조경만 교수님, 민주노동당 충남도지부 이용길 위원장님과 천안을지구당 당원 여러분도 오셨습니다.

게다가, 천안과 아산 지역의 시민·환경단체에서 길가 곳곳에 순례단을 환영하고 격려하는 현수막을 걸어놓아 더욱 힘을 얻었습니다.

민주노동당 충남도지부 이용길 위원장님은 “충격이다, 충격! 일상의 게으름과 나태에 대한 질타이다. 운동하고 활동하는 자세에 대해 개인적인 반성을 해본다. 모든 것을 내던지고 생명과 평화를 위한 길에 나서신 것을 보고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게을러서는 안되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네 분이 다른 종교를 가지셨는데, 일상적으로 보기에는 서로 배타적인 것 같은 종교의 성직자들이 함께 삼보일배 하시는 것을 보며 우리 사회도 분열을 극복하고 하나가 되어야한다는 메시지를 던지시는 것 같다. 환경과 노동·통일 등 각 부문운동 활동가들이 분파와 차이를 넘어서 시대와 민중을 위해 단결하고 활동해야한다고 가르치시는 것 같다. 작은 것에 얽매이고 조금만 틀리면 선 긋고 자기편만 챙기려는 것을 뛰어넘어 자본주의가 만든 잘못된 고리를 풀어야 한다. 이런 잘못은 상당수가 정치적인 잘못에서 온다. 권력 중심에 있는 위정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환경·노동·농민 문제가 발생하는데, 민주노동당이 앞장서서 잘못된 정치를 꼭 바로잡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1시가 조금 지나자 멀리 경기도 여주 신륵사에서 주지이신 세영스님과 동자승 일곱 명, 신도들이 오셨습니다. 가슴에 ‘갯지렁이가 집을 잃어버렸어요’, ‘오리가 먹을게 없어요’, ‘갯벌이 썩어가고 있어요’, ‘게가 울고있어요’ 등의 예쁜 글과 그림을 달고 온 아이들은 성직자들을 보자 예쁘게 합장하며 인사드리고, 삼보일배 순례에 동참했습니다. 그 모습에 모처럼 삼보일배 수행중인 성직자들도 허허∼ 웃음을 짓습니다.

새벽 5시 30분 차로 서울에서 아침 일찍 내려오신 강동송파환경연합 이계룡 회원님은 “더운데 고생이 많으시다. 환경단체 회원이면서 여태 마음만 있었지 한번도 오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었는데, 오늘에야 풀려지게 되었다. 앞으로 서울로 오시면 또 참여하겠다. 새만금 때문에 집회와 행사가 있었는데, 이번만큼은 새만금 문제가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후에는 동국대학교 홍기삼 총장님께서 순례단을 방문하셨습니다. 총장님께서는 네 성직자의 삼보일배 고행을 보시고는 “보다 나은 환경과 인간성 회복을 위해 고행하시는 선각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삼보일배는 단지 환경을 살리겠다는 것을 넘어 우리나라의 계층간·남북간 갈등과 불화를 화해와 올바른 삶으로 인도하는 중요한 암시가 그 고행 속에 담겨있다. 이러한 정신이 세계에 널리 퍼져 종교라는 이름으로 폭력과 전쟁을 일삼고 있는 지금, 세계의 종교 지도자들이 이분들의 고행을 통해 진정한 평화와 인류 삶의 지향에 대해 깨달아야 한다. 이 성직자들 뒤에서 잠깐 걸어봤는데, 짧았지만 행복하게 기억하겠다.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이 이 고행의 의미를 되새기기 바라며, 거듭 성직자들의 고행에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개발과 발전이 자연 파괴로 이어졌던 과오를 사람들이 깨닫고 이 성직자들이 왜 고생하시는가 생각해야 한다. 이분들의 뒤를 따라오면서 기뻤으며 한편으로는 많은 책임을 느꼈다. 이제는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도 문정현 신부님께서 오셔서 순례단을 격려해주시고 순례 모습도 촬영하셨습니다. 신부님은 “주한 미군이 여중생을 죽이고, 이라크에서 미군이 무고한 여성과 아이들을 죽이고, 새만금갯벌에서 무수한 생명을 죽이는 것은 다 생명을 파괴하는 것이며 이에 반대하는 것이 생명운동이며 평화운동이다. (새만금) 해창에서 청와대를 가나, 매향리에서 청와대를 가나 다르지 않다. 1997년부터 주한미군 주둔과 관련해 싸워왔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생명과 평화를 위한 것이며, 비슷한 시기에 전북 부안에서 우리 어민과 생명들을 위해 싸우기 시작했다. 매향리의 철조망을 걷어내고 발파중인 산에 올라가 싸워도 봤지만 자본의 움직임과 제국주의의 움직임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아닌 것은 아니다. 이분들이 3월 28일부터 세 발 걷고 한 번 절하고 있는데, 이 소음과 먼지와 악조건 속에서 몸을 투신한 것으로 가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염원한다’는 할 말은 해야한다는 정신은 살아있다. 세상은 변화가 없는 듯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어도 예루살렘에서는 먹고 마시고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런 것이 깨치고 새로운 희망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이러한 희생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켜보기 참 힘들다. 자꾸만 눈물이 나온다. 동영상을 담아 인터넷에 올리는데 그 안에는 내 흐느낌이 들어있다. 눈뜨고는 차마 볼 수 없다. 차라리 삼보일배에 동참하는 게 낫지 옆에서 따라가는게 더 힘들다. 그렇게 힘든 하루하루가 안타깝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절절하게 말하는데 왜 듣는 귀가 없는가? 인터뷰는 할 필요도 없다. 그동안 이분들이 몸으로 다 말해왔다. 그 긴 싸움동안 그렇게 힘들게 말해왔으니 인터뷰는 필요없다”고 말씀하시는 문정현 신부님의 동영상은 신부님의 홈페이지인 http://munjh.inp.or.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삼보일배가 무사히 끝나고, 저녁에는 천안역 광장에서 ‘새만금갯벌 생명평화의 날’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 자리는 삼보일배 순례단의 천안 방문을 환영하고 순례단을 지지하기 위해 천안 지역의 시민·환경단체가 주최했습니다. 3백여명의 시민이 행사에 참여하셨는데, 환경운동연합 서주원 사무총장님과 충남환경운동연합 신언석 공동대표님, 민주노총 충남지부 이용길 위원장님, 김원웅 국회의원님 등의 인사말과 지지발언이 있었고 환경운동연합 회원 노래단 ‘솔바람’과 병천고등학교 풍물패의 신명나는 사물놀이가 곁들여 성황리에 진행되었습니다.

서주원 사무총장님은 “10년 넘게 진행된 새만금 간척사업은 풍요로왔던 지역의 생태계와 어민들의 생존권을 파괴하고 있다. 최근 대통령이 밝힌대로 농지로 사용되려던 목적을 상실한 만큼 지금 당장 방조제 공사를 중단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 대안을 찾아야 한다. 새만금갯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네 성직자의 고행에 온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해야 노무현 대통령의 눈과 귀를 열 수 있을 것이며, 시민사회단체도 최선을 다해 이러한 노력에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언석 공동대표님은 “충청지역도 새만금 간척사업 때문에 새로운 환경재앙 위기에 처해있다. 방조제 건설로 썩게될 만경강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연간 1억톤 이상의 금강물을 끌어가 오염될 새만금 만경강 물을 희석시키려 한다. 이렇게 될 경우 금강 하구의 생태계에 커다란 악영향을 초래할 것이다”며 환경재앙만 초래하며 예산을 낭비하는 새만금 간척사업을 즉시 중단하라고 촉구하셨습니다.

이용길 위원장님은 “37일간 고난의 행군을 하신 네 성직자가 천안을 통과하며 천안 시민과 함께 생명과 평화의 말씀을 나누게 된 것은 천안 시민에 대한 축복이다. 네 분께서는 지금 새만금갯벌에 묻힌 말도 못하는 미물들, 조개들, 꽃게들을 위해 외치고 있다.

우리도 함께 힘을 합쳐 새만금 간척사업을 중단시키자. 새만금의 생명을 살리고 이라크 민중과 남북 평화를 위한 길에 떨쳐 일어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김원웅 의원님은 “신부님의 새까맣게 딴 얼굴을 보며 마음이 저려왔다. 늦었지만 이 자리에 와보니 그분들이 느끼는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으며 생명이 반드시 지켜져야 하고, 새만금갯벌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실감한다. 지금 국회에서는 새만금 사업의 합리적 해결을 위한 정책제안을 추진중인데, 이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생명을 지키는데 무슨 여야가 필요하고, 무슨 이념이 필요하고, 무슨 보수와 진보가 필요하냐? 모든 국회의원에게 서명 동참을 호소하고 있는데, 오월 하순에 순례단이 국회에 도착할 때에는 국회의원 과반수 이상이 서명하기를 바란다. 순례단이 국회에 도착할 때에는 국회의원들이 새만금 살리기를 위한 대국민 제안서도 발표하고, 필요하다면 결의문도 발표할 것이다”며 국회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외에도 전주대학교 법대 학장이신 이병훈 교수님과 이병학 전북도의원께서도 오셔서 순례에 참여하셨고, 영광 성지고 황명신 교장님, 성원규 행정실장님, 원불교 영광 교구장 박명제 교무님, 사무국장 황주원 교무님,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이원호 간사님, 원불교 익산 궁동교당 조성천 교무님, 월간 원광의 오정행 교무님 등 많은 분들이 순례에 참여하셨습니다.

아침은 공주 영평사 신도께서, 점심은 온양교회에서, 저녁은 수덕사 환희대에서 마련해주셨습니다.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5월 4일(일) 오전 7시, ‘KBS저널’을 통해 새만금갯벌과 온 세상의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삼보일배가 방영될 예정입니다. 많은 시청 바랍니다.

※5월 8일(목) 오후 5시 10분에는 불교방송 라디오에서 ‘부처님 오신 날’ 특집프로그램에도 삼보일배 순례단 이야기가 방송될 예정입니다. 많은 청취 바랍니다.

※순례가 한 달을 넘기면서 참여하시는 분들도 늘었는데, 삼보일배 순례에 참여하시려면 자신이 마실 물 정도는 준비해오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온 길 : 천안시 버스터미널 – 천안시내 외곽(6km / 새만금 해창갯벌에서 206.5km)
※앞으로 갈 길 : 천안시내 외곽 – 직산면 – 성환읍(5월 4일) – 경기도 평택시(5월 7일) – 송탄 – 진위면 – 오산시(5월 11일) – 수원시(5월 17일)
<일정은 날씨를 비롯한 여러 사정에 의해 바뀔 수 있습니다>

생명과 조화의 땅 새만금갯벌을 파괴하는 방조제 공사를 즉각 중단하라!
새만금갯벌과 온 세상의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삼보일배 순례단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