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2003][삼보일배]2003년 5월 9일(금), 삼보일배 43일째

2003.05.14 | 군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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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5월 9일(금), 삼보일배 43일째 – 평택을 지나다
맑은 날  

평택 시내 한 복판을 이른 아침부터 지나왔습니다. 평택은 참 조용한 도시로 출근시간에도 길이 덜 막히고 삿대질하는 사람도 없는 대신, 관심 어린 눈길과 걱정스런 표정, 가끔은 눈물짓는 얼굴도 보입니다.

길에서도 아주 많은 시민들이 순례단을 응원해주셨습니다. 집에서 쉬시다가 순례단이 지나가고 있다는 연락에 뛰쳐나오셨다는 김진옥님은 고행하시는 성직자들을 보자 눈물을 글썽이며 함께 순례에 참여하시다가, 순례단이 멀리 사라질 때까지 계속 두 손 모아 기도해주셨습니다.

대학 다닐 때인 2000년에는 새만금 살리기 운동을 벌이며 새만금갯벌에도 가보았었다는 강동구님은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새만금갯벌을 생각할 기회도 없었는데, 오늘 삼보일배 순례단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며 음료수를 사주셨습니다.

우신소방 사모님께서는 3월말에 변산반도와 내소사로 관광 가셨다가 순례단이 해창갯벌을 출발하던 모습을 보셨는데, 오늘 평택에서 또 본다면서 고생하시는데 음료수라도 사드시라고 후원금을 주셨습니다. 제일약국에서도 건강음료를 여러 상자 주셨고, 길 가시던 이름 모를 아주머니 한 분도 후원금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인정많고 맘씨 좋은 평택 사람들이었지만 현수막 한 장이 저를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평택시발전XX회 이름으로 내걸린 현수막에는 내일 오후에 어느 미군 기지 앞에서 ‘북핵 저지 주한미군 지지 결의대회’를 한다고 쓰여있는 것입니다.

미군기지가 들어서야, 팀스피리트 훈련을 해야, 전쟁이 터져야 미군들이 몰려올테니 그들이 흘리는 달러 부스러기를 얻어먹으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이 염치도 없이 내건 현수막입니다. 미군 기지 때문에 생기는 온갖 범죄와 사회문제·환경오염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피묻은 달러에만 욕심내어 미군을 부르고 전쟁을 부르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해 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쟁 반대와 평화 실현을 외쳐야 이 땅에 평화가 찾아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삼보일배를 해야 사람들은 자신의 탐욕을 버리고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다리에 힘이 쏙 빠지는 느낌입니다.

그렇게 하루가 다 지나고, 늦은 오후에는 민주당 장영달 국회의원님께서 오셨습니다. 묵언기도중이신 네 성직자 대신 문정현 신부님과 말씀을 나누셨는데,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해 중간점검을 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자는 신부님의 말씀에 대해 “동감한다. 애시당초 왜 이 사업을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뭔가 재조명해야겠다”고 말씀하시며, 지금 국회에서 진행중인 새만금 사업의 합리적 해결을 위한 정책제안 서명에도 적극 참여할 것을 검토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녁에는 멀리 설악산에서 ‘산양의 동무 작은뿔’과 설악녹색연합 대표이신 박그림 선생님께서 오셨습니다. 아파트 단지와 차들의 물결 사이를 오셨다는 선생님은 “우리가 하는 작은 일들이 미래 세대의 짐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고 말씀하시며, 점점 파괴되어가는 설악산과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들의 처절한 모습을 슬라이드로 보여주셨습니다. 쌀쌀한 봄날 밤이라 침낭을 둘러싸고 사진을 보았지만,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느릿하지만 아름다운 언어로 보여주신 슬라이드쇼에 순례단은 깊이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평택 성공회성당 정길섭 신부님과 평택교당 이도전 교무님, 작은 안나의 집 ‘유무상통 마을’에서 방상복 신부님과 삼십여명의 신도들, 담양 한빛고등학교의 재단비리에 맞서 학교 정상화를 요구하며 서울에서 광주까지 도보순례중인 학생 여섯명, 김석은 시민방송 R-TV 사장님과 불교환경연대 정성운 사무처장님, 조성천 교무님, 평택 느티나무 어린이집의 선생님과 부모, 아이들, 평택의제21 간사님과 위원님들, 천주교 환경연대 사무처장이신 이동훈 신부님, 안성천 살리기 시민모임 이정찬 대표님 등 많은 분들이 오늘 순례에 동참해주셨습니다.

어제 오후부터는 환경연합 시민환경정보센터에서 일하시는 조혜진 기자님께서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일을 대신해 주는 등 많이 도와주고 계십니다.

오늘 아침은 평택 동산교회, 점심은 평택 도원사, 저녁은 평택 서정동성당에서 각각 준비해주셨습니다.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오늘 온 길 : 경기도 평택시내 – 송탄공단 (5.8km / 새만금 해창갯벌에서 229.3km)

※앞으로 갈 길 :  경기도 평택시 송탄 – 진위면(5월 11일) – 오산시(5월 12일) – 수원시(5월 15일) – 의왕시(5월 19일) – 안양시(20일) – 과천시(5월 22일) – 서울 사당동(5월 23일) – 여의도(5월 25일) – 광화문(5월 31일)
<일정은 날씨를 비롯한 여러 사정에 의해 바뀔 수 있습니다>

생명과 조화의 땅 새만금갯벌을 파괴하는 방조제 공사를 즉각 중단하라!
새만금갯벌과 온 세상의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삼보일배 순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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