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들의 권리 찾기 – Alliance Bases Clean Up

2004.07.26 | 군기지

*2004년 7월 1일부터 10일, 열흘동안 녹색연합의 고지선, 윤기돈, 서재철 활동가가 수빅, 클라크를 다녀왔습니다.
필리핀의 생생한 이야기를 올립니다.
이 글은 윤기돈 활동가가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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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합에서는 지난 7월 1일부터 11일까지 필리핀의 미군기지 현장 방문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필리핀은 스페인, 미국,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경험한 국가이다. 지난 92년까지 미군의 아시아 최대의 공군기지(Clark)과 해군기지(Subic)가 철수한 후, 수질, 토양 오염으로 인한 환경,보건 피해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희생자들의 권리 찾기 – Alliance Bases Clean Up
현재 미군기지에서 발생한 환경오염 피해자들과 함께 기지정화운동을 벌이고 있는 곳은 Alliance for Bases Clean UP(이하 ABC)이다.
ABC는 엔지오인 PTFBCU(Peoples Task Force Bases Clean UP 미군기지정화위원회)와 클락 희생자들의 조직인 SAUP(Sama-Samanhg Aksyon at Ugnayan ng Mga Pamilyan ng Biktima 희생자들의 가족을 위한 공동행동)과 수빅 희생자들의 조직 YAKAP(Yamang Kalikasan Aming Pangangalgaan 자연자원보호)의 연합체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2003년 부시 대통령의 필리핀 방문 때 희생자들을 조직하여 마닐라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책임과 보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며 수빅과 클락의 문제가 계속 되고 있음을 알렸다.

미군기지정화위원회는 기지의 환경문제에 관해 가장 먼저 활동을 시작한 엔지오로 원래 Nuclear Free Philippines Coalition에 속해 있던 단체다. 그러나 기지 환경문제가 점점 커지면서 97년엔 분리되어 나와 지금까지 기지 환경문제를 조사하여 세상에 알리고 필리핀 정부와 미국을 상대로 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희생자들에 대한 의료 서비스 등의 지원프로그램들을 마련하고 있다.

클락의 희생자들이 새로 이주해 간 마답팝에 위치한 SAUP 에는 희생자들의 가족인 활동가들이 지역의 희생자들을 모니터링하고 조직하는 일을 하고 있다. SAUP과 미군기지정화위원회는 현재 희생자들에 대한 새로운 도큐멘트 작업을 하고 있다. 유엔인권위원회에 제출할 서류를 만들기 위해서다. 모든 희생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발병상황과 현재 상태 등을 모으고 있는데 이는 유엔 차원의 진상조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수빅 YAKAP의 모든 회원들은 전 기지 노동자들로 이뤄져 있고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는 활동가들은 대부분 노동자들의 자녀들이다. YAKAP 역시 회원들에 대한 도큐멘트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는 새로운 소송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당시 기지안의 시설을 책임졌던 미국인 회사에 고용되어 필리핀 기지에서 일했던 미국인 노동자가 석면중독에 대해 손해배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이들은 미국 법정에서 그 회사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하기로 하였고 현재 1100여 명의 소송단을 모은 상태다. 이들 모두는 엑스레이 촬영을 통해 폐에 석면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이들이다.

ABC의 주요 활동 중의 하나는 희생자들에 대한 의료 서비스다. 클락과 수빅의 희생자들은 모두 필리핀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질병뿐만 아니라 가난에도 시달리고 있어 불치에 가까운 병을 앓고 있는 이들 대부분이 제대로 약 한번 먹어보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 ABC에선 기금을 만들어 이들의 치료를 위한 지원활동을 하고 있지만 희생자들의 숫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또한 옛 이사들이 소송을 걸어 동결시킨 어린이 희생자들의 병원치료를 위해 만들어진 기금 35,000$와 410,000페소가 여전히 해결이 되지 않아 치료를 받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던 아이들이 결국은 죽는 일도 발생하였다.
소아마비 환자들의 경우 정기적인 재활치료를 통해 걷거나 말을 할 수 있게 정도는 할 수 있다지만 대부분은 치료비 때문에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이를 위해 ABC에선 가족들이 집에서 직접 할 수 있는 물리치료법을 교육시키고 있다. 그러나 1년에 두 세 차례만 이뤄지는 교육으로는 제대로 효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에 더 정기적인 과정이 필요하지만 이 모든 사업들도 모두 재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희망을 일구며
녹색운동,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말 중에, “지구크기로 생각하고 지역에서 행동하라.”는 말이 있다. 환경문제는 지역 문제로만 바라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전 세계를 포괄하여 바라볼 때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고, 그 해결책을 가지고 지역에서 실제 실천해 나갈 때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군문제도 환경문제와 똑같다. 한국에서는 동두천, 의정부, 서울, 파주, 춘천, 대구, 군산, 평택 등 주요 도시에 미군 기지들이 분포해 있다. 처음 미군기지 반대운동은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며 이것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문제임을 인식하고 전국단위의 미군기지 반대운동을 조직하고 펼쳐나가려는 연대체가 꾸려졌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눈을 좀 더 넓혀야 한다. 미국은 전 세계를 상대로 미군재배치 계획을 세우며 자신들의 전략전술을 펼치고 있다. 한국에 주둔하던 미군이 이라크에 파병되는 것은 이러한 미국의 전략에 따라 나오는 것이다. 더 이상 한국만의 미군문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웃 일본과 대만 그리고 동남아, 더 나아가 세계패권전략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미군재배치에 맞서 싸우는 각 지역의 활동가들의 연대만이 진정한 세계평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필리핀에 미군이 주둔하게 된 배경, 필리핀과 미국의 관계, 필리핀에 주둔해 있던 미군기지, 기지가 떠난 후 발생한 참혹한 환경재앙, 재앙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 미국, 다시 필리핀에 돌아오려고 시도하는 미군 등은 비단 필리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일본의 이야기기도 하다. 또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다른 모든 나라들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나라들의 역사를 비교해봄으로써 우리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모든 나라들에 나타나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우리는 다른 나라들의 역사 속에서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우리가 미군기지가 있는 다른 모든 나라들과 연대해 나가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그래서 미군이 떠나간 뒤 발생한 필리핀의 참혹한 모습을 우리가 함께 느껴야 하며, 그들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들이 받는 고통은 전 세계 미군이 주둔하는 나라들에게 뼈아픈 교훈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각각의 나라에서 그러한 고통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일러주었다.

우리가 필리핀의 참상을 외면하지 않고 연대해야 하는 것은, 우리에 앞서 값비싼 희생을 치룬 필리핀에 대한 수업료를 내는 것이다. 몸으로써 참상을 일깨운 그들과의 연대는 그래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어야 함을 느낀다.

수빅과 클락의 희생자들을 만나고 필리핀의 미군기지에 대해 보고 들으며 내 마음 속에는 내내 대체 희망이 어디에 있는지, 희망이 존재하기는 한건가라는 의문을 많이 품었다. 기지정화는 차치하고라도 절대적인 가난과 질병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도움을 찾을 길은 없는지 고민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연민이어서는 안 됨을 느낀다. 우리는 필리핀을 통해 우리가 깨달은 점에 대한 당연한 비용을 연대의 관점에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희망을 찾아서는 안 됨을 깨닫는다. 희망은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속에서 일구어내는 것임을 이번 과정을 통해 깨닫는다.

아시아 민중들의 삶속에 들어 있는 희망을 함께 일구어내는 일, 그것이 이번 필리핀 연수를 통해 내가 배운 점이다.

글 : 윤기돈 조직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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