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2015.05.12 | 군기지

괴물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개봉 2주 만에 천 만 관객을 동원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은 2000년 용산 미군기지 영안실에서 다량의 독극물, 포름알데히드를 한강에 무단 방류한 실제 사건에서 출발한다. 독극물 방류 부작용으로 생겨난 한강의 괴물이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시민들을 공격하는 이야기이다. 영화의 성공 요인으로 블록버스터 마케팅, CG의 화려함, 가족이야기 등 여러 가지가 꼽히지만, 나는 그 안에 담긴 사회에 대한 불신과 소시민들의 활약이 인상적이었다. 대낮에 괴물이 나타나 시민들을 공격해도 정부와 공권력의 개입은 보이지 않는다. 전직 운동권, 노숙자, 도시 빈민들, 특별히 들이밀 이력 없는 소시민들이 외롭게 괴물에 맞서고 있다. 지금도 이러한 상황은 되풀이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미군기지로 인한 오염문제 대응 활동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영화 「괴물」은 여전히 진행형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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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지역과 맞닿아있는 용산 미군기지 ©녹색연합

 

“아직도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나요?” 

용산기지 오염문제를 알리는 캠페인 영상을 제작하는데, 영화 「괴물」의 몇 장면을 사용하고 싶어 제작사에 전화했을 때 받았던 질문이다. 영화 제작 당시에 녹색연합이 관련 사건의 자료를 제공했듯, 제작사는 흔쾌히 영화의 몇 장면을 사용하도록 해주었다. 그렇게 제작된 용산기지 오염문제 캠페인 영상, 「괴물이 되어버린 땅」을 작은 전시회에서 주말마다 상영하였고 용산 주민들에게도 보여드렸다. 용산에서 40년 넘게 살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전혀 몰랐다던 주민 한 분은 내게 물었다. “이 문제를 알게 된 제가 무얼 하면 좋을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알려주세요.” 

용산 미군기지는 2000년 독극물 방류 사건 외에도 여러 차례 유류오염사고가 있었다. 그 중 주한미군 측이 기지 내부 오염원을 인정한 사례는 두 건으로 2001년 녹사평역 공사 중 맨홀에서 다량의 기름이 발견되었던 사고와 2006년 남영역 캠프 킴 인근에서 기름이 유출된 사고이다. 서울시는 사고지점 두 곳의 미군기지 담벼락 바깥에서 지금까지 오염지하수를 퍼내고 정기적으로 시료를 채취하여 성분분석을 하고 있다. 녹사평역 인근은 12년째, 캠프 킴 인근은 8년째 오염지하수를 뽑아내고 있지만 여전히 1급 발암물질인 벤젠과 석유계총탄화수소 등 유류오염물질이 기준치를 크게 웃돌고 있다. 조사 지점마다, 조사 시기마다 결과는 차이가 있지만 최근까지도 벤젠이 500배 이상, 석유계총탄화수소가 4,000배 이상 검출되는 지점이 있을 정도이다. 도심 속 아스팔트로 포장된 땅위를 걷고 고층 아파트에 주거하며 생수를 사서 마시는 우리에게 토양·지하수의 오염은 당장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보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필리핀의 수빅, 클락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기지로 인해 주변 지역 토양·지하수가 심각하게 오염되고 주민들이 각종 암에 시달린 사례는 유명하다. 한국에도 미군기지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 중, 특히 지하수를 장기간 음용하던 지역에 암 발병률이 평균치를 크게 넘는 곳들이 있다. 미국 내에서도 미 해병대 기지로 인한 오염 지하수를 음용하여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보상하는 법률이 2년 전 제정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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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정부는 의지박약, 오염자는 나 몰라라

상황이 이러한데 우리는 이 문제에 있어 오염자 부담의 원칙을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환경문제에 있어 오염자 부담의 원칙은 국가마다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불변의 원칙임에도 한-미 관계 안에서는 늘 협상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리고 우리는 그 협상에서 늘 지기만 했다. 한미동맹의 슬로건 “함께 갑시다”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굳건한 동맹 관계라면서 왜 오염시키는 자와 그것을 책임지는 자를 일치시키는 게 이토록 어려운 걸까? 이미 한국 정부는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것에 대해 합당한 대가를 치루고 있다. 오염문제는 협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고 오염 정보는 군사·외교상의 보안 대상이 아님에도, 미군기지와 관련한 것은 기지 담벼락에 가로막힌 듯 알기도 어렵거니와 알게 되도 그 책임을 묻기도 힘들다.

지난 3월, 부산과 동두천의 미군기지 두 곳의 반환 협상이 완료되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관련 정부부처 세 곳인 국방부, 외교부, 환경부는 모두 협상 결과에 대해 공표하지 않았다. 장관의 작은 거취도 자랑스럽게 보도 자료를 내면서, 말썽 많은 오염 미군기지 반환협상에 대해서는 서로 자기 부처에서 발표할 사안이 아니라고 한다. 질의서를 보내자 국방부는 “3월 13일자로 미군기지를 반환받았으며, 국방부가 정화해서 사용자에게 넘겨줄 예정”이라고 답변했다. 윤성규 환경부장관은 출입기자들에게 “정화 자체가 중요하지, 누가 정화비용을 부담하는지는 그 다음 문제”라는 발언을 했다. 이런 정황들을 보면 과연 우리 정부에게 미군기지 반환협상에서 오염자 부담의 원칙을 주장할 의지와 전략이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또한 이번에 반환받은 동두천 캠프캐슬 기지는 유류 오염의 면적도 넓고 그 정도도 심각함에도 내년 3월 대학교 개교를 목표로 급속하게 개발이 추진 중이다. 기존의 미군기지들은 정화하는데 3-4년씩 소요되었는데, 당장 내년 3월에 학교로 사용될 만큼 깨끗하고 안전한 공간으로 정화가 될까? 미래 그 공간을 사용할 학생들의 건강과 안전이 우려된다.    

끔찍하지만, 이대로라면 우리는 현재 동두천의 상황이 용산에서 반복되는 것을 목격하게 될 수 있다. 수도 정중앙의 80만평 땅을 온전히 시민의 품으로 돌려받기 위해, 오염 문제 및 정부 당국의 협상에 대해 더욱더 관심과 행동이 필요한 시기이다. 2016년 말까지 반환되어 향후 국가 생태공원으로 조성될 용산 미군기지의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하기 전에 정말 필요한 건 제대로 오염정화를 하고 그 치유책임을 주한미군 측에 묻는 것이다. 

 

작성: 신수연 (평화생태팀 활동가)

*  이 글은 월간 환경잡지 <함께사는 길> 5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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