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사르 총회 참가 후기] 지구반대편, 우루과이에서 외친 “5대강개발반대” “제주해군기지반대”

2015.06.20 | 군기지

여름이 시작되기 전부터 녹조라떼, 큰빗이끼벌레, 그리고 물고기 떼죽음 소식이 4대강에서 들려온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 사태의 배후에는 4대강의 심각한 습지 훼손이 있다. 4대강사업으로 30-50%의 습지가 사라졌다. 습지는 하천 생태계의 심장과 같다. 심장이 망가졌으니 온 몸이 멀쩡할리 없다. 바로 이 습지의 중요성을 국제적으로 인정한 협약이 바로 1971년 이란의 람사르라는 도시에서 체결된 람사르협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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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장 입구에서의 캠페인

지난 6월1일부터 9일까지 남미 우루과이의 푼타 델 에스테(Punta del Este)에서 12차 람사르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렸다. 한국의 목포에서 땅을 뚫고 지구 정 반대편으로가면 나오는 곳이 바로 푼타 델 에스테다. 아침의 일출과 저녁의 석양을 함께 볼 수 있는 세계적인 휴양지다. 과거 우루과이 라운드나 GATT 회의가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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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타델에스테의 전경

녹색연합이 참여하고 있는 한국습지NGO네트워크은 2명의 참가단(녹색연합 황인철 팀장, 습지와새들의친구 김경철 국장)을 이번 총회에 파견하였다. 한국의 습지이슈를 국제적으로 알리고, 습지보전을 위한 국제 엔지오와의 협력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매일 아침 회의가 열리기 직전, 습지네트워크 참가단은 총회가 열리는 콘라드 리조트에서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 캠페인을 통해서 대형개발사업으로 위협에 처한 한국의 습지를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5대강수변개발도 포함되어 있었다. 4대강사업을 알고 있는 해외 엔지오들은 또다른 한국의 5대강개발 소식에 놀라기도 하고, 안타까워도 했다.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에 이어 섬진강까지 강 주변에 각종 위락시설이 들어선다면, 그나마 남아있던 강 옆의 습지들도 몸살을 앓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많은 환경이슈들은 바로 이 습지와 관련되어 있다. 람사르 협약이 지키고자 하는 “습지”는 매우 광범위한 개념이다. 강, 호수, 바다의 산호초, 연안 갯벌, 사람이 만든 논까지, 이 모든 것을 습지로 규정하고 보전하려고 한다. 내성천의 영주댐 건설, 연산호를 훼손하는 제주해군기지, 인천 송도갯벌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이 모든 것들이 한국의 습지를 위협하고 있다. 준비해 간 피켓과 알려야 할 이슈는 많은데 캠페인을 진행하는 활동가는 고작 2명 뿐이기에, 아침마다 손이 무척 분주했다. 총회장에 들어서는 각국 대표들이 발길을 멈추고 유심히 한국 엔지오의 캠페인을 지켜보았다. 오스트리아 대표는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기도 했고, 이라크, 오만, 바레인 대표들은 본인들이 직접 플래카드를 들고 인증사진을 찍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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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에 참가한 국가대표가 제주 연산호 캠페인 플래카드를 직접 들고 인증샷을 찍는 모습

 

람사르 총회장에는 당사국 대표만이 아니라 세계의 많은 습지 엔지오들이 모여든다. 생물다양성 협약이나 기후변화협약과는 상대적으로 엔지오들과의 소통이 원활하다고 평가받는다. 총회장 입구에서 엔지오들이 자유롭게 캠페인을 할 수 있는 것도 그러한 사례다. 하지만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었다. 이번 총회에서는 2016-2021년의 습지 보전 전략계획을 논의하여 결정하게 되어 있었다. 초안에는, NGO, 시민사회의 역할이 크게 축소되어 있는 문제가 지적되었다. 이에 대해 세계 각국의 NGO가 우려를 표명했다. 다행스럽게도 세계습지네트워크(World Wetland Network, WWN)의 노력으로 전략계획 최종안에는 시민사회단체(CSO)와 현지 원주민의 역할이 기재되었다.

상대적으로 민간부문(기업)과의 협력은 더욱 강조되고 있는 분위기였다. 람사르 협약은 에비앙과 다농과 같은 기업의 후원을 받고 있다. 총회장 곳곳에는 살루스(Salus)라는 우루과이 생수회사가 제공한 생수병이 놓여 있다. 공식 총회 중간에 에비앙과 다농 대표가 직접 자신들의 기여를 브리핑하고, 람사르 사무총장이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자칫 람사르 회의가 시민사회와 거리를 두면서 점점 더 비지니즈화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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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N을 대표하여 우루과이 엔지오 대표가 총회장에서 연설하는 모습

 

람사르 총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세계습지네트워크(World Wetland Network, WWN)가 시민사회단체를 대표해서 성명서를 발표한다. 각국 대표들에게 엔지오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공식적인 자리다. 6월3일 총회장에서 WWN은 현재 논의되는 전략계획에 시민사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함을 지적하였다.

또한 한국의 환경단체가 제기한 문제도 이번 NGO 성명에 포함되었다. 바로 각국 정부가 제출하는 습지실태에 관한 국가보고서(Natinal Report)의 문제다. 여러 나라 정부가 습지의 현황을 왜곡하거나 부실하게 보고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4대강사업이나 간척으로 인해 습지면적이 심각하게 감소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국가보고서 안에 이런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좋은 점만 나열한 부정확한 보고서가 제출되는 셈이다. 정확한 정보 없이는 올바른 대책도 있을 수 없다. 한국습지NGO네트워크는 총회 전부터 이 문제를 지적하는 서한을 람사르협약 사무총장인 Christopher Briggs에게 전달한 바 있다. 한국 엔지오의 이 문제제기는 다른 나라 엔지오들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총회장에서 발표한 국제NGO성명서에는 “각국 정부가 보고서를 올바르게 작성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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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엔지오 연설 내용을 검토하는 WWN 회의 모습

이번 12차 총회에서 발행된 보고서 (fact sheet) 가운데는 위기에 처한 산호초를 다룬 것이 있다. 산호초군락은 람사르협약과 생물다양성협약 등에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는 주요한 습지다. “바다의 열대우림(rainforest)”라 불릴 정도로 생물다양성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인정받고 있다. 이번 보고서에는 지구상의 여러 생태계(하천, 호수, 산림 등등) 가운데 산호초군락이 가장 높은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는 연구결과가 실려 있다. 소위 경제의 논리로 따져도 산호초의 중요성은 높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제주도 연산호 군락이 해군기지 건설로 인해 무방비 상태로 훼손되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비판을 받을 만한 일이다.

fact sheet 캡쳐_산호초 경제적 가치

람사르 사무국이 발행한 산호초 관련 fact sheet 중 산호초의 경제적 가치를 평가한 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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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장에 배포된 각국의 팜플렛 가운데 4대강 관련 보고서가 놓여져 있는 모습

총회장에는 습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여러 팜플렛과 전시물들이 가득하다. 습지는 깨끗한 물을 공급하고, 홍수, 가뭄 등의 재해를 막는다. 야생동식물들에게 다양한 서식처를 제공하고 생물다양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습지”의 중요성은 “개발”과 “경제” 논리 앞에 매우 자주 힘을 잃는다.

다른 나라 엔지오들을 만나게 되면, 새만금, 4대강, 강정해군기지가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된다. 많은 나라에서 다른 이름 다른 모습의 4대강, 새만금, 강정을 만날 수 있다. 1900년 이후 전 세계 습지의 64%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번 람사르 총회의 주제는 “우리의 미래를 위한 습지”다. 습지가 사라지면 우리의 미래도 사라진다. 각국 정부들은 9일간의 람사르 총회가 끝나도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황인철 팀장 (평화생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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