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친구들 한북정맥탐사 – 도롱뇽 얼굴도 못 봤지만…

2004.08.09 | 군기지

내 일에만 바쁘고 내 생각에만 빠져있으면 사람을 만나도 그 얼굴이 보이지 않고 그 마음도 잡히지 않는다. 일이 조금만 틀어져도 원망이 터져나오고 웬만한 일도 용서가 되질 않는다. 매사에 공연히 스트레스를 받아 말로는 너그럽게 넉넉하게 살고 싶다고 되뇌면서도 쫌생원에 되기 일쑤고 마음은 평화를 찾을 수가 없다. 오래 오래 그렇게 살아온 것 같은 느낌에 빠져 지냈다.



입만 열면 남의 뒷담화에 열중이었고, 술과 담배와 사람에 치여 한 순간에 늙어버린 것 같았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 나 자신에 집중해서 바라볼 공간, 고즈넉하게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책읽기들을 갈망하다가 드디어 용감하게(?) 일을 접었다. 이 나이에 그만두면, 심지어 잘난척 하면서 나와버리면 어느 날 어디서 어떤 용도로 나라는 사람의 쓰임새를 찾을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했지만, 여하튼 일단은 숨통을 터야 할 것 같다는 조급증 때문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겨울잠 자듯 잠수 아닌 잠수를 타고 나자 내가 바쁘던 시간에 존재감 없이 스쳐간 사람들이 생각났고, 제목만 읽고 버려둔 책들이 알알이 들어와 박혔고, 예전에 사람들이 내게 했던 말들이, 행동들이 돌연 이해되기도 했다. 나만이 최대의 피해자인양, 번제에 얹혀질 순한 양인양 두 눈을 껌뻑거리던 나날들이 부끄럽게 떠올랐다.

녹색연합에서 나온 책들이 눈에 띈 것도 그 즈음이었다. 녹색연합과 우리 사무실이 이웃해 있을 즈음, 딸 이름으로 회원가입을 하고 받아보기 시작한 책들은 우편물 더미에서 한달이 지난 후에야 껍질이 벗겨지지 일쑤였고 화장실에서나 간신히 읽게 되는 책이었는데, 쉬게 된 후부터는 내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심지어 편집과 디자인이 어떻게 바뀌어가는지까지 보게 될 정도가 되었다. 게다가 함께 들어오는 ‘녹색희망’이란 회지같은 것들은 그냥  재활용함으로 직행하기 일쑤였는데, 평화를 얻게 되자 거기에 쓰여있는 알림소식까지 마음으로 들어왔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거기에 쓰인 작은 소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녹색연합의 시민 모임인 녹색친구들에서 한북정맥 탐사를 떠난다는 글. 평소에도 늘 산에는 가고 싶었다. 시간이 없어 하진 못했지만 환경운동도 늘 해보고 싶었다. 생태환경 조사도 하고 싶었다. 사람을 만난지도 오래되어서 수다도 떨고 싶었다. 그래, 거기 참가해 보자. 이래뵈도 왕년에 천왕봉, 대청봉 모두 올라가본 내가 아닌가. 능선에 올라가 우리 나라 산이 얼마나 훼손되었는지, 계곡에 들어가 물이 얼마나 오염되었는지 내 발로 딛고, 내 눈으로 봐보자. 그렇게 쉽게 참가등록을 했다. 물론 그 동안 녹색연합 활동가들이 시사지에 연재한 글들, 즉 백두대간 탐사, 골프장 건설, 미군들이 오염시킨 상수원등에 대한 것들을 미리 읽어두어 그리 낯설지 않았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녹색연합 홈페이지에서 한북 정맥 탐사에 대한 글들을 찾아 읽고 회원들도 별 부산을 떠는 사람들도 아닌 것 같아 아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신경쓰지 않고 모임장소로 나갔다.



내 생전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만하면 되었다 싶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산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자, 는 슬로건을 가진 사람들이라니 무얼 더 바라랴 싶어  무리없이 어울렸다. 하룻밤은 그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딱딱한 잠자리, 씻지 못하는 불편함, 어두운 텐트속이 생긴 것 같지 않게 불면증과 결벽증이 있는 나로선 견디기 힘들었지만, 뭐 어리광부릴 대상도 없었고, 나이도 그랬고, 설사 그랬다 한들 자청한 일이었으므로.

아침.
멀리서 먹구름이 올라오는 중에 계곡 팀과 능선 팀이 갈려졌다. 어젯밤 공부한 꼬리치레 도롱뇽을 보고도 싶었지만, 깊은 산 꼭대기도 올라가고 싶었다. 어영부영 능선팀이 되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옛날부터 힘들다고 어리광부리면서 남자들 손이나 붙잡고 산을 오르거나 낑낑대는 여자들 꼴을 보기 싫어 했던 터라, 그리고 나를 믿었던 터라 나는 산행에 다져진 그들과 조금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닥 어렵지 않게 산을 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십여분을 올랐을까.



심장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다리가 마구 무거워지더니 머리마저 띵해지는 것이 죽을 것 같았다. 약간의 경사로를 죽기살기로 올라가니 남들이 탄복하는 구름낀 하늘과 펼쳐진 나무의 바다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돌연 괜히 따라왔다 싶은 후회와 함께 신물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앞서가는데, 산에 오른지 삼십분도 안되었는데, 갑자기 눈이 흐려지더니 토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올라오면서 먹은 물만이, 하염없이 토해졌다. 그냥 내려가야겠다, 그냥 등산도 아닌 탐사를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에게 짐이 될 수는 없다는 마음이 가득 차올랐다. 세상에, 그동안 어떻게 살았기에 몸이 이 지경이 된 것일까. 그러다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다행히도 토하고 나니 메슥거림이 조금은 나아져 비척비척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올라가는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꽃들을 보는데 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로 재고 기록하고 무슨 나무가 있는지 알아보고 있는데… 내 한 몸 추스릴 수도 없다니, 이게 무슨 짓인가. 까닥하다간 죽겠다싶은 마음속에 몇 년 동안의 내 삶의 문양만이 간간이 떠올랐다. 밤새 일하기, 원고 읽기, 사람하고 싸우기, 미워하기, 술 먹기, 담배피우기, 살림하기, 하얗게 세기 시작한 머리칼. 산이 어디 있는지조차, 운동이 무언지 알지도 못한 채 시내와 집만 오가며 일을 하면서 서서히 굳어버린 몸과 마음이 이다지도 썩어버렸구나 싶어서 기운조차 없는데 눈물이 나는 기분이었다. 한걸음 한걸음이 능선 탐사가 아니라 내마음 탐사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산이, 물이 나무가 훼손되고 죽어가듯이 내 마음도, 몸도 무너져 내렸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는 사이사이 그럭저럭 능선을 타기 시작하니 살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 탐사를 계속하는 이들에 대한 존경의 염이 목끝까지 차올랐다.



아, 비만 오지 않았다면 나는 실려내려오지 않아도 되었을까? 능선을 타기 시작한 후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허벅지가 천근만근인데 비에 젖은 바지가 척척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발가락들이 아야아야 소리를 지르고 남들은 척척 우의를 걸쳐 입는데 일회용 우비를 걸친 내 등짝으로 폭우가 쏟아져 들어왔다. 앞서 걸어가는 우비를 걸친 사람이, 흐릿하게 지워져   검은 유령처럼 무서웠다. 나무가 무서웠다. 나무 사이의 벌레들이 무서웠다. 앞서가는 저 사람을 잃어버리면, 따라잡지 못하면 영영 비내리는 산에 묻히게 될까봐 두려워 나, 진짜로 눈물을 비와 함께 흘렸다. 능선을 따라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다가 간신히 비와 나무에서 벗어나 탁 트인 대로로 내려섰다. 이제부터 능선 끝까지 사람들은 탐사를 계속할 모양이었다. 나는 그래도 탐사에 도움은 못 될망정 폐를 끼칠 수는 없다는 정신력 하나만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는데, 아뿔싸, 정말로 발이, 허벅지가 움직이질 않았다. 한 걸음 떼는 것이 그렇게 힘들 수도 있을까 하는 중, 드디어 나를 처리할(?)기사가 밀명(?)을 받고 앞서가다가 내려왔다. 무전기가 왔다갔다 하면서 탐사대원 한 명이 나를 데리고 하산하라는 명령을 들은 모양이었다.

낭패였다. 그러나 모두 능선쪽으로 사람들은 사라졌고,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수긋하게 시키는 대로 하자, 내려가자… 진정한 포기를 한순간에 해버렸다. 폭우와 낙뢰가 걱정된다는 공무수행중인 어떤 분의 충고를 받잡고 모두들 능선탐사를 그만둔다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인 채 그 차를 얻어타고 내려올 때의 절망적인 심정이라니…

점심.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산 속에서의 지옥같던 시간이 모두 꿈 속인양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한 낮. 그 고생을 했는데도 시간이 한 시 정도밖에 안되었던 것도 기이한 일이다. 계곡 팀은 점심을 먹으며 그들이 탐사한 꼬리치레 도롱뇽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나는 솔직히 무안하긴 했지만 살 것 같은 심정이었다. 이제 곧 집에 가서 쉬면 되리라 생각했었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그것도 생전 처음 남자 옷을 빌려서 입었다)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그런데 이 사람들, 정말… 점입가경이다.

배가 부르고 해가 떠오르고 비가 그쳤으니 폭우로 중단했던 계곡 탐사를 마저 하고 가자고 입을 맞추더니 모두들 조를 나눠 계곡 탐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능선처럼 힘들진 않으려니 했다. 나도 그럼 이번에는 계곡에서 꼬리치레 도롱뇽이나 보고 가자고 마음을 다져먹었다.
새로 짜진 팀으로 들어가 계곡을 접어들 때는 능선팀에 비해 수월해서 이 팀은 신선놀음을 했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러나, 여기서도 나는 나동그라져 버렸다.

축지법을 쓰는 것인지, 바위를 성큼성큼 넘어가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간 버린 사람들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비에 불어난 계곡물은 흙탕물인데, 꼬리치레 도롱뇽은 보이지도 않는데, 사람들마저 산 속으로 들어가 내려오질 않았다. 진퇴양난. 나도 탐사하러 저 숲 속 계곡으로 갈 것인가. 내려가서 차에서 기다릴 것인가. 정적뿐인 숲 속에서 어찌나 무서운지 그 더위 속에 소름이 돋았다.
기운도 없는데다가 겁마저 왜 이리 많은 것인지, 정말 내 자신이 싫어져 발등을 찧고 싶은 심정으로 바윗돌에 앉아, 어서 어서 일행이 내려오길 기다리던 그 시간…
이제 산을 내려가면 운동을 조금씩이라도 해야지, 마음 공부를 해서 내 속의 이상한 공포도 다스려야지, 하면서 다짐을 하던 그 시간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일행이 내려와 물의 온도와, 수질과 도롱뇽의 개체수를 기록하던 그들의 표정의 진지함에 다시 한번 놀랐다. 난 결국은 능선의 탐사와 계곡 탐사에도 어떤 실질적인 도움도 주질 못했지만, 돌아오는 차안에서 이 생각은 했다.
내가 얼마나 막 살았는지의 진지한 반성과 그래도 확실하게 안 것도 있다는 것.

좋아하던 시에서 음률이 좋아 이름만 알고 있던 나무, 물푸레나무를 확실히 알게 된 것. 능선에서 물푸레나무를 많이 본 탓이다. 그리고 꼬리치레 도롱뇽은 맑은 물에서만 사는 녀석이라 이 녀석들의 생태계가 무너지면 우리나라 계곡물의 수질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 앞다리가 네 개에, 뒷다리가 다섯 개인 이 녀석이 살아야 우리 물도 산다는 것.

첫 번째 탐사치고 이 정도의 지식과 반성을 얻었으면 그래도 된 것 아닌가.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또 생태계에 대해서 공부를 더 하고나면 다음 탐사때는 좀 더 쓸모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왔지만 마지막 엄살을 더 하자면 돌아온 후 다리와 어깨 아니 허리까지 온 몸이 아파서, 잠도 못 자고 이틀을 꼬박 앓아누웠다는 것, 맨소래담으로 마사지하고도 파스까지 사다붙여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것. 도롱뇽 사진을 찍어왔냐는 딸 물음에 그 녀석 얼굴은커녕 꼬리하나 본 적 없다고 소리를 빽 질렀다는 것. 다음 달 탐사를 내가 또 가게 될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는 것. 아니, 그들이 나를 빼고 갈 수도 있겠다는 것.

글 :  권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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