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거꾸로 돌린 세계정상회의

2002.09.16 | 군기지

지난 8월 26일부터 9월4일까지 멀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어그에서는 ‘지속가능한발전을위한 세계정상회의(WSSD)’가 전세계 180여개국 3만여명(언론 보도로는 6만이나 실제 참석자는 이에 못 미침)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번 회의는 92년 리우에서 채택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리우선언’의 이행방안을 평가하고 구체적인 이행계획을 마련하는 자리였다. WSSD는 정상회의와 지방정부세션, 그리고 시민사회포럼으로 나누어 전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진행되었다.

이번 정상회의의 주요 의제는 WEHAB 의제라고 표현되듯이 물과 에너지, 건강, 농업, 생물다양성 등 5가지 의제가 핵심사항이었고 이와 함께 빈곤문제가 근저를 이루었다. 이 가운데 특히 기후변화문제를 포함한 에너지문제가 끝까지 치열한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녹색연합 사진전시회

결국 이번 회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일부 선진국들의 자국이기주의에 걸려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실패로 끝나버렸지만 지속가능성을 가늠하는 기준이 단순한 환경문제 차원을 넘어 WEHAB를 중심으로 한 종합적인 문제로 시야가 확대되었다는 데 시사점이 크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이 앞으로 10년간 시민운동뿐만 세계사의 화두가 될 것이고 한국의 시민단체들, 특히 녹색연합이 이러한 세계적 흐름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주도해 나가는 가가 운동의 승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리우에서 채택한 ‘지방의제 21(Local Agenda 21)’이 이제 ‘지방행동 21(Local Action 21)’로 전환됨으로써 지방에서의 구체적인 행동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이번 회의가 실패로 끝났다는 평가의 핵심은 2T, 즉 Time(시기)과 Target(목표)에 대한 합의 없이 선언적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는 점이며, 인권문제 등의 중요한 사항은 아예 통째로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구체적 사례를 예를 들면, 에너지문제의 경우 유럽연합(EU)에서는 2010년까지 전세계적으로 에너지 공급원의 15%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것을 제안하였으나 미국 등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수량적 목표설정을 하지 못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실질적으로 높여나가도록 노력한다’라는 수준에서 합의함으로써 아무런 구속력을 갖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아프리카 NGO의 시위

이러한 한계는 거의 모든 합의사항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생물다양성 보호를 위해 ‘2015년까지 종의 유실을 상당해 줄이기로 한다’라던가 ‘기후변화 방지를 위해 교토의정서를 시의 적절한 방식으로 비준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등에서 이번 정상회의 결과가 얼마나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정상회의에 대한 아쉬움은 비단 결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상회의 진행자체에서도 곳곳에 문제점 투성이었다. 10년마다 열리는 대규모 UN회의였음에도 불구하고 회의 장소가 정상회의장인 샌톤과 시민사회포럼이 열리는 나스렉, 그리고 주요 홍보와 전시장으로 이용된 우분트 빌리지 등이 분리되어 있고, 교통망과 치안의 문제로 참가자들이 자유로운 회의장 접근이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정상회의장은 수용인원의 한계와 경호문제를 들어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였으며 심지어 출입방식을 놓고 매일 그 형식이 바뀜으로써 회의참가대표단, 특히 시민운동가들로부터 강한 항의를 받았다. 또한 주요한 일정들이 중간에 취소되거나 변경되는 일이 잦아 대표단을 곤혹스럽게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더구나 UN 회의에서 통상적으로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반영하도록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의에서는 시민사회의 목소리와 접근이 철저히 차단되었다는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정상회의에 임하는 한국대표단의 자세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한국대표단은 회의참석을 위해 출국할때까지 이렇다할 입장표명을 하지 못하였고 회담에 참석하여서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서 실익을 챙기겠다고 눈치를 보기에 바빴다. 특히 주요 현안에서 전세계적 비판을 받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 편승함으로써 지속가능한 발전을 희망하는 한국 참가단의 빈축을 샀다. 특히 대부분의 참가자들과 전세계 언론이 실패로 끝났다는 회담 결과에 대해, 특히 에너지분야 협상에서 재생가능에너지 생산 비율에 대한 목표연도와 목표치를 설정하지 않은 것을 이번 정상회의에서 한국의 성과인양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언론이 이를 비판없이 싣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정부와 언론은 이번 정상회의가 갖고 있는 의미와 지속가능성의 개념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의 날 행사에서 박영신 녹색연합 상임대표가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NGO 활동에 대한 평가도 중요할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나스렉이라는 공간에서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매일 시민사회 포럼 브리핑을 실시하여 전날 진행된 정상회의 내용에 대한 설명과 주제토론, 당일 있을 주요행사에 대한 공유를 하였다.

그리고 시민사회포럼을 개최하여 빈곤문제와 세계화 문제, 인간안보와 환경정의 문제, 식량문제 등에 대한 다양한 토론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흐름속에서 한국 NGO 또한 다채로운 행사와 토론을 준비하였다. 28일을 한국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식과 함께 ‘장사익’ 문화공연, 심포지움, 캠페인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였다.

녹색연합은 ‘해외 미군기지의 환경문제와 인권’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는 것과 아울러 미군관련 사진 전시회를 개최하여 참가자들과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토론회에서 녹색연합은 최근 발생한 미군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압사사건과 2000년에 발생한 한강독극물 방류사건 등의 사례를 들어 미군기지 문제의 심각성과 불평등한 소파협정으로 인해 문제 해결이 어려움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일본 오끼나와 환경네트워크에서는 오끼나와에서 겪고 있는 미군기지로 인한 피해상황의 심각성을 설명하고 전세계 민중들이 겪고 있는 미군기지로 인한 피해를 해결하기 위해 네트워크 구성을 제안하였고 한국은 물론 이탈리아, 필리핀, 남아공 등의 참석자들이 이에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밝혔다.


녹색연합 토론회

특히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군사주의와 평화에 대한 의제가 전혀 논의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고 군사주의에 대한 해결 없이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불가능하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이 문제에 대해 자국내에서 뿐만아니라 UN 등을 통해 적극적인 해결 노력이 필요함이 강조되었다. 이번 녹색연합 행사를 계기로 미군문제에 대한 대응을 한국차원을 넘어 세계 각국의 NGO들과 연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

또한 환경정의시민연대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환경정의 경향과 네트워크’라는 주제로 심포지움을 개최하였고, 지방의제21전국협의회에서는 ‘지방의제 21을 위한 새로운 파트너쉽 발의’라는 심포지움과 라운드테이블을 운영하였으며, 쓰시협에서는 ‘쓰레기 제로, 소각장 반대 아시아 확산’에 대한 토론회를, 소비자모임에서는 ‘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에 대한 포럼을, 또한 에너지시민연대에서도 4개 대륙을 연결하는 포럼을 진행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이외에도 환경운동연합에서는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를 위한 캠페인 등의 활동을, 여성단체들을 중심으로 평화를 위한 행진을 벌였다.


회의 마지막날인 9월 4일, 회의 실패에 항의하는 참가자들 (이날 시위는 경찰의 방해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러한 활발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회의 운영방식과 성격에 대한 정확한 정보부재로 현장에서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 이외에 실제 정상회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활동들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더구나 이번에 참여한 한국NGO의 참여 수는 참가국 가운데 가장 많은 규모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NGO들과의 공동행동을 통한 압력행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였다. 이런 현상은 실제 NGO 행진이 있는 8월 31일에는 대부분 한국 참여자들이 다른 일정을 잡거나 귀국길에 올라 이날 행사에 힘을 싣지 못함으로써 우리 운동의 현 주소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정상회의에 참여한 전세계 NGO 그룹들이 행동 통일을 이루지 못한 채 나스렉과 인근 대학 교정으로 나뉘어져 활동함으로써 참가 규모에 비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것도 반성해야할 것이다.

이제 세계정상회의는 우여곡절 끝에 막을 내렸다. 그리고 우리들은 각자의 위치에 돌아와 일상업무에 열중하고 있다. 실패로 끝난 이번 회의 결과에 가장 만족하는 이들은 바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과 이들의 힘을 등에 업은 다국적 기업일 것이다. 환경을 지키고 녹색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한 우리들의 걸음은 그래서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발걸음을 우리는 한 순간이라도 멈출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미래세대의 눈망울을 기억하며, UN의 탈을 쓴 미국에 의해 30년이나 후퇴한 역사의 수뢰바퀴를 다시 힘차게 돌려야 할 것이다.

– 최승국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