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도 농사짓자!

2006.01.24 | 군기지

–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촛불 집회 500일 기념 집회를 다녀와서



평택(平澤). 평평한 늪이란 지명답게 눈에 보이는 건 다 들판이었다. 녹색연합의 가족이 된지 며칠 되지 않아서 아직은 어리둥절한 가운데 활동가들과 평택 팽성을 찾았다. 덜컹거리며 흔들리는 지하철을 타고 그 곳까지 가는 동안 내 생각도 요동쳤다.

평소에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았던 미군기지 확장문제에 대해서 내가 뭘 안다고 그곳에 가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웠고 이런 내가 그 곳에 가서 머리수 한 번 채워주는 것이 위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이 곳에 한 번 다녀오고 끝! 이러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나는 녹색연합 신입활동가로 뽑힌 사람인데 이러한 무지, 불안 상태로 가도 되는 곳인가 하는 생각에 편하지 많은 않은 발걸음이었다. 어찌되었건 열차는 달려달려 평택에 도착했다.

가을 추수가 끝난 지 오래라 텅 빈 논에는 군데군데 쌓인 짚더미가 한가롭게 서 있었다. 그 풍경을 보고 있자니 이곳이 수백일 동안 집회가 열리고 있는, 긴장감이 도는 그곳이라는 것이 믿기 힘들 정도였다.

“지금 눈에 보이는 들판이 다 기지 확장 예정지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넓은 곳을 다? 뭐하는데 이 많은 땅이 필요한거지? 고이지선 간사님은 옛날 조상들이 피땀으로 개척한 농토 위에 처음 미군기지가 들어서면서 농민들의 삶의 터전이 한 번 밀려난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날 또 기지가 확장된다는 명목으로 그 농민들이 한 번 더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게 생겼다고 하셨다.



평화를 위해 존재한다는 미군, 존재에서부터 모순을 가지고 있는 그들에게 사는 곳을 내 줄 수 없어 촛불을 들기 시작한지 500일. 이 날은 기지 확장의 반대 목소리를 전국에 알리기 위해 트랙터를 몰고 순례를 한 농민들이 평택으로 다시 돌아오는 날이기도 했다.

“올해도 농사짓자!”
저 간단한 구호 한 마디에 얼마나 큰 함의가 있는가. 저 벌판에는 누런 쌀알이 떨어져야지 차가운 탄피가 떨어져서는 안 되는 일이다.

사람이 떠나버려 마을이 비게 되면 자리를 내 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평택을 지키기 위해 이곳으로 이사 오신 분들, 그리고 예전부터 살고 계신 주민들 모두가 하나되어 간절하게 원하고 있었다.

집회는 흥겨웠다. 아니, 아직까지 그 속사정을 잘 모르고, 농민들의 절박한 심정을 잘 헤아리지 못하는 나만 즐거웠을 수도 있겠다. 여러 단체에서 온 사람들이 가득한 대추 초등학교 운동장에 노래가 울려 퍼지고, 깃발이 흩날리고 있어서 대동제라도 열리는 분위기였다.

비가 와 땅이 진흙으로 변한 가운데에도 사람들은 날씨가 풀려서 다행이라면서 웃고 몸짓패 율동을 따라하였다. 우리는 소리를 내면서 타고 있는 대나무 둘레를 강강술래를 하였다. 때마침 보름달도 환하게 밝았다. 내가 평택 주민이었다면, 아니 우리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시골에 다른 것도 아닌 미군기지가 들어선다면, 우리가족이 내몰릴 위기에 처했다면, 나는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으면 절실해지지 않는 내가 아직은 많이 부족한 것 같았다. 알아가겠습니다, 깊이 공감하고 힘을 보태겠습니다, 하고 다짐해보았다.    



지금도 머릿속에 박힌 장면은 무대 위 주황색 조명 아래 펄럭이던 현수막이다. 땅만큼이나 붉고 주름진 얼굴의 농민분이 하얗게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모습은 걱정하나 없고 풍년의 기쁨을 감사하는 듯한 해맑은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그분들의 이마를 가로지르는 붉은 띠에는 “미군반대”가 새겨져 있었다. 올해 봄이 오면 이분들이 붉은 띠 대신에 흰 땀수건을 두르고 계속 모내기를 할 수 있기를…

글 : 녹색연합 신입활동가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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