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미군기지의 온전한 반환을 희망한다

2020.09.04 | 군기지

미군이 떠난 자리

2000년대 중반, 평택은 미군에게 새롭게 360만 평의 땅을 제공하도록 강요받았다. 당시 미군기지 확장저지 운동(2004년~2006년)과 폭력적 진압으로 엄청난 사회적 갈등을 치렀고, 몇 해 전 단일 기지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여의도 면적 다섯 배의 미군기지가 평택에 지어졌다. 전체 부지 건설비 100억 달러 중 92%를 한국이 부담했다. 이렇듯 ‘새집’을 제공하면서 70년 이상 미군이 사용한 ‘헌집’도 줄줄이 돌려받고 있다. 돌려받은 헌집은 어떤 상태일까.

반환 대상 미군기지는 총 80개로 이미 반환된 곳은 58개이며, 반환 예정인 곳은 용산 미군기지(메인포스트, 사우스포스트, 캠프 킴, 캠프코이너 등 9개) 포함 22곳이다.(2019년 12월 기준) 미군기지 반환 절차는 SOFA(주한미군지위협정) 합동위원회 산하 ▲시설분과위원회의 반환 절차 개시, ▲환경분과위원회의 협의, ▲합동위원회의 최종 승인을 통해 이루어진다.

미군기지 이전협정이 체결되었지만 각각의 미군기지에 대해 반환 협상을 하는 이유는 ‘기지 내부의 환경오염을 누가 책임질 것인지’ 때문이다. 대개는 오염 문제를 둘러싼 한미 간의 협상 때문에 이미 미군이 떠나고 텅 빈 미군기지임에도 돌려받는데 원래 계획보다 5년, 10년씩 더 걸린다. 해방 이후 최근까지 군사기지로 사용하여 유류, 중금속, 각종 유해물질로 오염된 땅을 정화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 미군기지 반환 협상이 오염에 대한 책임 공방을 벌이다 교착 상태에 빠지고, 결국 한국 정부가 정화 비용을 부담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반환받은 부평·원주·동두천의 4개 미군기지의 정화 비용은 정부추산 무려 1,140억 원이다. 부평 미군기지의 경우, 발암물질 다이옥신에 대한 토양정화 국내기준도 없고, 정화 방법도 알지 못했기에 기준을 정하고 정화 방법을 실증 실험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2007년에 돌려받은 캠프 페이지 사례처럼 이미 정화작업까지 마친 이후에 최근 문화재 발굴이나 공원화 과정 중에 추가로 오염물질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용산 – 군사기지에서 공원으로의 ‘온전한’ 전환이 필요

부산 시민공원(캠프 하야리아), 매향리 생태평화공원 (쿠니 사격장), 원주 문화체육공원(캠프 롱), 부평 신촌공원(캠프 마켓) 등 돌려받은 미군기지의 상당수는 공원으로 조성됐거나 조성될 예정이다. 그 중 대표적인 공간으로 용산을 떠올릴 수 있다.

용산은 1906년 일본이 군사시설을 건설한 이래 해방 이후 미군이 주둔하게 되었고, 110년 넘도록 ‘금지된 공간’이었다. 오랜 기간 담벼락과 철조망에 둘러싸여 일반인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던 곳, 지하철 4호선과 동작대교 북단의 모습도 변형시켰고 국내 지도에서도 초록색으로만 표시된 금단의 땅이다. 기지 내부에는 일제시대 지어진 벙커와 감옥, 각종 건축물이 남아있고 근현대사의 굴곡과 사연이 깃든 공간들이 산재해 있다. 1980년대 후반, 용산 미군기지 이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용산 기지 터를 ‘공원’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여론이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제기되었고, 2007년에는 제1호 국가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용산공원조성특별법」이 제정되었다. 남산과 용산, 한강의 생태축을 잇는 넓은 녹지공간은 상상만 해도 미세먼지로 답답한 숨통을 탁 트이게 한다.

그런데 용산이라는 공간의 가능성을 상상하기 전에 찜찜한 게 있다. 바로 오염 문제이다. 미군이 오랜 기간 사용한 용산 기지 터는 특히나 각종 환경 사고의 종합판이다. 한 세기 만에 돌아오는 땅의 의미를 탐색하며 공공의 공간으로 재편하기에는 여전히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겁다. 오염되고 병든 땅이 대체 어떤 상태인지 누가 치유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늘 뒷전이다.

용산은 현재 반환 협상을 위해 기지 내부 시설물과 오염 정도를 조사하고 있다. 국내 미군기지 중 가장 많은 기름 유출 사고가 확인된 만큼 여전히 오염에 대한 책임 문제가 협상의 관건일 것이다. 일부 공간을 미군이 계속 사용하는 문제도 있다. 미군기지 내 드래곤힐 호텔과 헬기장을 존치시키고, 광화문의 미국 대사관도 용산 기지 터로 옮겨올 예정이라 공원 조성 면적은 전체 265만m2가 아니라 미군을 위해 남겨둔 8.3%(22만m2)를 제외한 243만m2가 됐다.

최근 국토부에서 전쟁기념관, 국립중앙박물관 부지 등을 용산공원 면적에 산입시키겠다고 발표했지만, 그 공간들은 진작부터 정부가 운영하던 시설물이다. 숫자상으로는 면적이 늘어났지만, 공원이 확대됐다고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미군이 계속 사용을 희망하는 드래곤힐 호텔이나 공원 초입에 미 대사관이 들어서는 것, 녹색연합 등 시민사회단체가 미국 정보자유법(foia)을 통해 확인한 용산기지 전역에서 발생한 100건 이상의 기름유출, 오염사고 등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의지가 있어야 한다.

군사기지에서 공원으로, 116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공간을 우리는 어떻게 환대할 것인가. 전쟁과 분단, 안보를 상징하는 공간을 역사와 생태 가치를 품은 곳으로 재편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새로운 공간으로의 전환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에게 남은 매듭이 있다. 환경오염의 원인 제공자인 미군이 먼저 제대로 된 정보공개, 인정과 사과, 제도적 개선을 해야한다. 남산-용산한강의 생태축을 잇는, 서울의 대규모 녹지공간으로 개편하면서 공원 부지 가장 위쪽에는 미 대사관을, 아래쪽에는 미군 잔류시설을 남겨놓는 문제도 다시 검토되어야 한다. 오염자가 정화를 책임지고, 처음 사용할 때 부지 그대로 돌려받는 것, 그것이 온전한 반환이다. 온전한 반환 이후에야 공공성과 생태, 역사를 담은 공간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지 않을까. 용산 미군기지의 온전한 반환을 희망한다.

“도쿄 외곽의 다치카와 시에는 1972년까지 주일미군 공군기지가 있었어요.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기지 확장 계획이 추진됐지만 주민들의 저항에 무산됐고 결국 미군은 다치와카 시를 떠나게 됐어요. 힘을 모아 싸운 성과가 있기는 하지만 온전한 승리는 아닙니다. 1981년 일본 정부는 미군기지 부지 전체 중 3분의 1정도인 148헥타르를 공원으로 만드는 계획을 발표했어요. 근현대사의 아픔, 주민들의 저항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곳이에요. 공원 주변에는 일본 경찰청, 소방청 등 정부 기관이 사용하는 건물들이 들어섰고, 공원 명칭을 쇼와 일왕을 기념하도록 지은 것도 문제지요. 한국 용산 미군기지도 반환 이후 공원화 계획이 있다고요. 쇼와기념 공원은 미군기지 이후 조성된 공원의 좋은 본보기가 아니에요. 용산공원은 시민들의 뜻을 모아 더 의미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길 바랍니다”

– 반전평화단체 일본 스나가와 평화광장 대표 후쿠시마 쿄코 님의 메시지

글 신수연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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