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어머니대회에서 만난 평화

2002.09.04 | 군기지

평화는 하나의 언어요 하나의 몸짓이다            

‘생명을 만드는 어머니들은 생명을 기르고 생명을 지키기를 원합니다’ 2002년 7월말 일본 후쿠오카에서 제48회 일본 어머니대회가 열렸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핵도, 기지도 없는 푸른 지구를!’  ‘우리의 삶과 생명을 지키는 빛나는 헌법!’
을 위해 전국에서 참여한 어머니들은 10180명이고 이들이 모금한 금액은 328만엔이었다.
올해는 9.11테러와 아프카니스탄 보복전쟁이후 처음 열리는 대회이자 일본의 유사법제 제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어머니들의 참여와 열기가 대단한 것이었다.

일본은 지난 45년 패전이후 평화국가 건립을 천황의 칙어로 밝히고 점령군 사령부가 쓴 평화헌법을 바탕으로 해서 비무장국가로서 평화국가 건설의 헌법을 마련하였다. 물론 전쟁과 패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천황제를 청산하지 못한 과거사를 그대로 지닌 채 이루어진 것이었다.
히로시마 원폭투하로 15만명이 사망하고 수백의 마을이 화염에 쌓여 사라져 가는 전쟁경험을 한 일본 국민은 평화국가 건립을 원했고 국방비로 들어갈 자원이 경제발전으로 돌아가면서 전후 경제적인 부와 안정을 누릴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일본 국민들로 하여금 평화헌법을 지키도록 하였고 해마다 평화를 위한 어머니대회와 같은 많은 평화대회를 열게 하고 있다.
일본의 평화헌법 제9조는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초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하게 이행하고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군사력을 영원히 갖지 않는다’고 명시하여 자위대는 외부의 침략에 방어하는 역할만 할 뿐이지 군대로서 역할을 갖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일본이 안보무임승차를 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미국의 부시정부는 9.11테러이후 자위대를 군대로 만들기를 강력하게 원하고 있고 고이즈미 총리는 자위대가 국회 동의 없이도 자율적으로 파병하거나 해외에 출동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반영해서 나오고 있는 것이 유사법제이다. 유사법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전쟁준비법’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총리가 위기상황이라고 판단하면 전시체제로 들어가 자위대 출동명령이 가능하고 국민들을 전시동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99년 주변사태법이 제정되어 자위대가 멀리 인도양까지 파병하는 등 미군의 후방지원이라는 명목으로 분쟁지원활동을 벌이고 있어 헌법 9조에 묶여 불가능했던 자위대의 군대로서의 역할이 조금씩 풀리고는 있으나 유사법제가 제정된다면 일본이 전쟁을 준비하고 군사대국화하는 길을 본격적으로 열어 놓기에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큰 도전이 되고 있다.
특히 일본의 군사대국화만으로 아시아 지역의 분쟁을 심고 동북아 평화질서를 위협하며 남북한 냉전체제는 더욱 강화될 수 있다.
일본 어머니대회에 참석한 여성들은 평화헌법을 부정하고 평화를 위협하는 유사법제에 반대하면서 우리들을 다시 전쟁으로 몰아 넣지 말라고 요구하였다.
그리고 아프칸 보복전쟁을 지원하는 자위대의 파병을 지금 당장 중단하여 무고한 아프칸 난민을 더 이상 희생시키지 말 것을 요구하였다.

이번 어머니대회에는 미국 9.11테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중에 아프카니스탄 난민을 지원하고 미국의 보복전쟁에 반대해 온 ‘평화로운 미래를 위한 9.11 유가족’의 리타 라사르씨, 아프칸에서 오랜 기간 난민 지원활동을 하고 있는 페샤와르회 대표 나카무라 테츠씨, 한국에서는 필자가 미군기지 환경문제와 미군장갑차에 의해 희생된 여중생사망사건을 소개할 대표로 특별 초청되었다.
리타 라사르씨는 고희를 넘긴 노인으로서 평화에 대한 사랑이 절절한 할머니다. 9.11테러로 동생을 잃은 슬픔으로부터 채 헤어 나오기도 전에 그녀는 아프칸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고 그 곳에서 동생의 죽음으로 순박한 사람들의 죽음이 정당화되고 있는 현장, 23년 이상의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고 죽어 가는 순박한 눈들을 만나고는 아프칸 보복전쟁을 반대하는 일에 적극 나서게 되었다. 책상도, 종이도, 창문도 없는 학교와 혹독한 추위에 먹을 것 없이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는 부모 잃은 고아들의 맑은 눈들과 만났던 것이다. 평화로워야 할 미래세대들에게 전쟁과 가난 그리고죽음이라는 미래만이 그들 앞에 놓여 있는 현실을 보며 더 큰 용기와 사랑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9.11 테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과 함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한 9.11 유가족’을 결성하였다. 지난 67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캄보디아 내전에 반대하면서 한 연설의 ‘전쟁은 평화로운 미래를 만드는데 아주 나쁜 도구’라는 내용에서 모임의 이름을 따 왔다. 폭력에 대한 보복 폭력이나 전쟁에 반대한다는 그녀는 미국에는 보복이 아니라 평화로운 길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연대하기 위해 이 곳에 왔다며 평화롭고 아름답게 남은 인생을 마무리하는 할머니의 삶을 보여 주었다.

나카무라 테츠씨는 의사로서 지난 84년부터 아프카니스탄을 지원하는 활동을 벌여 왔다. 현재 아프칸 북서부 페샤와르 지역의 모임 대표로서 활동하고 있다. 사람들이 가기 싫어하는 곳으로 구원의 손길이 절실하게 필요한 지역이기에 그곳으로 갔다고 했다. 차도 없고, 길도 모르고, 정보도 없어 1주일이상 찾아 헤매어 가야 하는 곳이다. 사람들의 나이도 잘 알지 못하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구원의 손길이 되어 주자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슬람교도인 아프칸은 헌법도 없고, 재판소도 없다. 관습에 따라 공동의 규칙을 지켜가며 살아가고 급하게 서두름이 없어 무슨 일이든 시간이 많이 걸린다.
아프칸 사람들은 대부분 6-7천m 높이의 산 속에서 거주한다. 대부분의 경제활동이 농업과 방목으로 농업용수가 절대 필요하다. 2000년 심한 가뭄이 발생하여 400만 명이 기아에 시달리고 1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나카무라씨는 당장의 위급한 기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1천 개의 우물을 파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수맥을 찾고 우물파기를 1년 이상 걸려서 600개 이상의 우물을 만들었다. 가뭄의 단비이상으로 메마른 땅에 물을 대고 굶주리는 사람들을 살릴 수 있었다.
물론 그는 의사로서 말라리아, 피부병 등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진료하고 나병환자들의 치료와 재활을 돕는다. 아프칸 사람을 닮아 천천히 미래를 응시하지만 그의 두 눈은 절박하고 간절하게 평화를 갈구하고 있었다. 이들의 고통은 계속되는 전쟁으로 더욱 커지고 있고 이들을 구원하는 노력과 힘은 전쟁과 기아, 질병으로 몰아 넣는 막대한 군사력과 힘을 당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밝게 웃고 있지만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아프칸의 아이들, 이 아이들은 가난하고 가진 것 없지만 마음은 평화롭다. 나카무라씨는 전국에서 모인 1만여명의 어머니들을 향해 ‘전 세계 모든 여성들의 공통의 힘이자, 변하지 않는 어머니들의 모성으로 이 아이들을 지키자’고 호소했다.

필자는 주한미군의 환경문제를 비롯해서 수없이 일어나고 있는 인권유린, 살인, 성폭행, 재산권 침해 등으로부터 한국의 무고한 시민들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과 미군기지 환경감시를 위해 그동안 해 온 활동을 소개하였다. 특히 미군 장갑차에 치여 죽은 어린 여중생의 일로 아이들의 부모와 한국 시민들이 슬퍼하고 부시대통령의 사과와 형사재판권을 정부에게 이양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한국의 운동을 소개했다. 빈 공책을 꺼내 서명을 요구하자 일본의 어머니들이 기꺼이 서명에 나서며 같은 어머니로서 어린 소녀들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올해는 어느 해보다 평화를 위해 아낌없이 나서는 세계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목소리와 실천이 뜨겁다. ‘평화를 위한 사랑과 연대’는 비록 표현하는 언어는 다를지언정 진정 하나의 언어요, 하나의 미래에의 비전과 희망인 것이다. 지금도 평화를 위한 시민들의 물결은 세계 구석구석 큰 물줄기가 되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 이 글은 ‘작은것이 아름답다’ 2002. 9월호에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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