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기지 환경오염 바로보기①]미군기지 '환경오염', 뒷처리는 우리 몫?

2006.03.15 | 군기지

미군기지 반환이 줄줄이 예정된 상황에서 반환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후속 조치가 큰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반환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실태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데도 미국 측은 환경오염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만 지겠다며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협상의 큰 흐름은 우리 정부가 결국 환경오염 치유 비용의 상당 부분을 대는 방향인 것으로 알려졌다.
  
녹색연합과 프레시안은 함께 5회에 걸쳐 반환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관련 쟁점들을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미군기지 환경오염 바로보기①]미군기지 ‘환경오염’, 뒷처리는 우리 몫?

[미군기지 환경오염 바로보기②]미군기지 ‘환경오염’, 미국에 책임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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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 환경오염 바로보기⑤]’미국의 두 얼굴’ 폭로할 기회 저버리지 말라

[녹색연합-프레시안 공동기획] 미군기지 환경오염 바로보기(1)
  

반환 미군기지 환경오염,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2월 초 일부 언론에 ‘반환 예정 미군기지 환경오염 조사 후속 쟁점 사항 및 향후 대책’이란 환경부 문서가 공개됐다. 2005년에 반환되기로 한 미군기지 15개에 대한 오염조사 결과가 포함된 이 문서의 내용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2004~2005년 반환 대상지를 조사한 결과 14개 기지의 토양이 유류와 중금속으로 심각하게 오염돼 국내 환경법 기준으로 평균 4배, 최고 100배를 넘어선 것이다.
  
반환 미군기지 오염 조사 결과가 전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2005년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일부 밝혀지기는 했으나 한미 주둔군 지위 협정(SOFA) 환경위원회 미국 측 위원장 승인이 없이는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자세한 오염 수치가 공개되지 못해 온 터였다. 미군과의 협상을 준비하던 환경부가 국방부, 외교통상부 등 관련 부처와 협의하기 위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 문서를 통해 최근 미군이 내놓은 절충안이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반환 미군기지 오염문제,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환경문제가 기지 재배치의 복병이 된 사연
  


미국은 탈냉전 21세기 안보 환경 변화에 적극 대처한다는 차원에서 해외 주둔 미군기지를 재편하고 있다. 이러한 미군의 군사 전략을 바탕으로 주한 미군을 재배치하는 연합 토지관리 계획(LPP)이 수립되었고, 용산 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는 용산 기지 이전 협정이 체결되었다. 2004년 연합 토지관리 계획 개정안이 통과되었을 때 정부는 특히 춘천 ‘캠프 페이지’, 부산 ‘하야리야’ 등 도시 중심에 있는 미군 기지가 예정보다 빨리 반환될 것이라며 협상의 성과를 적극 홍보했다. 그러나 2005년 단 한 곳의 미군기지도 반환받지 못했다.
  
2003년 한-미가 체결한 ‘환경 정보 공유 및 접근 절차 부속서 A(이하 부속서 A)’에 따르면 미군기지는 통상 반환 12개월 전에 한미 공동 오염조사를 하고 발견된 오염은 미군이 치유하도록 하고 있다. 이 절차에 따라 2004~2005년에 27개 기지에 대한 오염조사는 마쳤지만, 주한 미군이 기지 환경오염을 정화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2005년 단 한 곳의 기지도 돌려받지 못한 것이다. 현재 한국과 미국은 반환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치유 수준과 범위를 두고 계속 협상을 벌이고 있다. 주한미군이 환경오염을 치유하지 않고 버티는 이유는 반환되는 미군기지의 환경관련 사항은 “SOFA 환경 조항에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SOFA 환경 조항 해석을 둘러싸고 한국과 미국의 입장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SOFA 환경 조항의 해석 중 가장 논란의 핵심에 있는 것은 오염의 기준이다. 2005년 11월 국방위원회에서 검토된 ‘2006 국방부 예·결산 검토 보고서’에는 “오염 치유 기준에 대하여는 현재 한·미간 이견이 있어 치유 작업이 상당히 지연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 경우 기지 반환 및 매각 지연은 불가피할 것으로 여겨지므로 이에 대한 다각적인 대응책도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
  
부속서 A에는 “미군이 미국 측 비용으로 치유한다”는 조항은 있지만 오염 기준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한국 정부는 SOFA 합의 의사록 제3조 중 “합중국 정부는 자연환경 및 인간건강의 보호에 부합되는 방식으로 이 협정을 이행할 것을 공약하고, 대한민국 정부의 관련 환경법령 및 기준을 존중하는 정책을 확인한다”는 내용을 근거로 오염 정화 기준으로 국내법을 제시한다. 그러나 미국은 SOFA ‘환경에 관한 특별 양해각서’ 중 KISE(Known, Imminent and Substantial Endangerment, 인간 건강에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을 초래한다고 알려진 오염)가 아닌 경우는 정화할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책임감 없는 협상 부처, 입장만 계속 변해
  
한국과 미국이 SOFA를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것은 세부 절차를 마련하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미군이 다 치유할 것이라며 성과를 부풀리기에 급급했지 실제 발생할지도 모를 문제에 대한 준비는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예로 국방부는 2003년 12월, 아리랑택시 부지가 반환될 때 보도자료를 통해 “오염원인자 정화 원칙을 구현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밝힌 바 있다.
  
외통부는 2004년 11월, 용산기지 이전협상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자 ‘용산기지 이전협정, 바로 알고 논의하자’는 홍보 자료를 내놓고 “반환되는 용산기지의 오염 치유는 미국 측이 하게 된다”고 밝히며, 부속서 A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문서이기 때문에 반환되는 용산기지의 오염 치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일부의 우려에 대해 “법적 구속력이 없는 합의라고 해서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고 속단하는 것은 국제사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아니라는 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언론을 통해 확인되는 외통부와 국방부의 입장은 이와 달라졌다. 2월 8일, 정례 브리핑에서 반기문 외통부 장관은 “환경부, 국가안전보장회의, 국방부, 외교부, 주한 미군 당국 간에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며 “원만한 방향으로 해결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같은 날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우리가 원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미군은 전례가 없는 성의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도대체 우리가 원하는 수준은 아닌데, 원만한 방향으로 해결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나? 2월, 한 외통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동안 미국 측이 치유 비용 전액을 부담한다는 취지로 과대 홍보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우리가 발표할 때 ‘SOFA와 관련 합의에 따라 처리한다’고 발표했으며 의도를 갖고 과대홍보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는 외통부가 과거에 가졌던 입장을 은근슬쩍 바꾸면서 책임을 면하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태도로는 책임 있는 외교협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명확한 기준 없는 미군
      


한편 미국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기보다 협상 테이블에서 오염 정화 책임을 최소로 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오염 치유 수준에 대해 미국은 ‘환경에 관한 특별 양해 각서’에 나온 ‘KISE’를 근거로 제시해 왔다. 이것은 실제 기준이 되기보다는 해외 미군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개념에 불과하고 실질적인 기준이 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미군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2003년 반환된 아리랑택시 부지의 경우, 미군이 오염된 토양을 한국 업체와의 계약에 따라 소각하는 방법으로 처리한 것을 알려졌다. 발견된 오염은 석유계 탄화수소(TPH)의 경우 최고 1만1365ppm이었다. 처리 비용을 미군이 부담했다는 것은 미군이 ‘KISE’를 적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오염도가 아리랑택시 부지보다 훨씬 더 높은 캠프 페이지(5만552ppm), 캠프 게리오엔(4만7819ppm), 캠프 하우스(2만7901ppm) 등 반환 대상 기지는 당연히 ‘KISE’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미군은 현재 이들 기지의 오염도가 ‘KISE’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오염자 부담 원칙’ 분명히 제시하라
  
2월 14일, 녹색연합 등 시민·사회단체는 괌에서 벌어지는 SPI(안보 정책 구상 회의, Security Policy Initiatives)를 앞두고 국방부, 외통부 등 정부 부처에 반환 미군기지 환경오염 정화 책임은 누구에게 있으며, 협상 내용은 무엇인지 등을 묻는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그러나 정부는 한 달이 지나도록 대답하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협상 내용이나 미국의 입장에 대해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번 협상에서 미군의 책임 범위를 협소하게 한정할 경우, 앞으로 2011년까지 반환될 62곳의 미군기지에 대해서도 미군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려워진다. 선례를 만든다는 점에서 이번 협상은 중요하다. 오염 조사가 끝난 27개 기지에서 발견된 오염을 정화하는 데에 4000억~5000억 원이 든다는 추측 기사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실제 비용은 훨씬 더 커질지 모른다. 앞으로 반환될 나머지 기지들의 정화 비용까지 합친다면 오염 정화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부의 결단이다. 현재 미군이 보이고 있는 태도는 오염자 부담 원칙을 적용하겠다던 한국 정부의 입장과는 크게 달라 보인다. 오염을 발생시킨 자가 오염을 치유해야 한다는 오염자 부담 원칙에는 양보의 여지가 없으며, 이에 대한 예외는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원칙을 가지고 미국의 오염 정화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정부의 협상력과 소신 있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 : 녹색사회국 고이지선 활동가 antikone@green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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