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기지 오염자가 처리하라

2006.02.09 | 군기지

김제남 / 녹색연합 사무처장

한·미간 체결한 연합토지관리계획에 따라 지난해 반환돼야 했던 10여개의 미군기지가 아직 우리 땅으로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반환 미군기지 환경오염 정화 기준과 비용을 놓고 한·미간 협상이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당시 15개 반환미군기지 환경오염조사 대상 중 14개 기지가 토양오염 우려 기준치를 넘은 것으로 밝혀져 그동안 기름유출사고 등 끊이지 않던 미군기지 환경오염이 심각하다는 것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반환기지 정화비용 5,000억원-

이처럼 미군기지의 심각한 환경문제가 확인되고 있지만 환경오염 정화 기준과 비용 책임을 둘러싼 부실한 협상으로 자칫 한국 정부가 미군기지 환경오염 정화를 책임지게 되는 상황마저 우려되고 있다. 그동안 주한미군에 의한 한강독극물 방류사건을 계기로 2001년 주한미군 주둔국 지위에 관한 협정인 이른바 소파(SOFA) 개정으로 환경 조항이 특별양해각서로 신설되고 이후 환경오염 치유절차 합의서 등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주한미군의 환경오염 책임을 한국의 환경법과 환경기준으로 규제하지 못하고 있고 정보의 비공개, 반환미군기지 환경치유 절차 등 미비한 규정이 많아 소파 개정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현재 정부는 반환예정 미군기지 중 환경오염이 심각한 13개 기지를 정화하는 데 4천억원에서 5천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환경오염 정화의 책임을 주한미군에게 분명히 하지 않으면 이 정화 비용을 고스란히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할지도 모른다. 알토란 같은 땅을 50년 이상 무상으로 사용하고서 이제는 오염된 땅을 돌려주면서 그 치유마저 국민의 세금으로 해야 한다니 이는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최근 주한미군사령관의 이·취임에 즈음해 이를 둘러싼 한·미간 협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주한미군은 미 국방부 지침인 ‘인간건강에 대한 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오염’의 경우에는 책임이 있지만 반환 미군기지의 경우 현재까지 미군병사들의 건강을 위협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염 정화 비용을 부담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이해만을 담은 억지 논리인 셈이다.

그동안 미군기지내에서 발생한 기름유출 사고로 인근 마을의 농지와 지하수가 심각하게 오염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1992년 필리핀 클라크와 수비크 기지에서 미군이 철수한 뒤 그 땅에 거주한 사람들이 2~3년 지나 암, 백혈병과 같은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산업, 소비, 군사 활동에 따른 환경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지금 환경문제 해결에서 사전예방과 오염자 부담은 가장 중요한 원칙이 되고 있다. 이는 미군기지라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따라서 이번 협상에서 정부는 미군기지로 인한 환경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고 환경오염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 국토환경을 지키기 위해 오염자부담 원칙을 확실하게 세워야 한다.

-철수한땅 거주민들 피해 심각-

이미 군사목적을 상실하여 반환하는 미군기지의 환경문제에 대해 국민들은 알 권리가 있다. 반환후 공공의 안전과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으로 오염 실태나 오염 정화 내용, 그리고 한·미간의 협상 내용은 국민들이 알아야 할 당연한 정보이다. 그럼에도 미군이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국민의 알 권리와 참여가 배제된 채 정부는 힘 없는 협상만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방부, 외교부, 환경부, 국가안전보장회의는 2011년까지 반환받을 미군기지 환경정화의 기준과 책임을 명확히 해 향후에도 빚어질 미군기지 환경정책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과 내용을 국민들에게 소소히 제공해야 한다. 수십년간 외세의 아픔을 간직한 우리 땅이 또다시 오염으로 얼룩지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정부의 분발과 각성을 통해 미군기지가 생명과 평화의 땅으로 복원되기를 희망한다.  

이글은 경향신문 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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