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지으면 평화가 온다.

2006.04.10 | 군기지

▲ 사진제공 : 평화유랑단

매일 저녁 7시가 되면 대추리, 도두리 사람들은 대추분교에 모여서 촛불을 든다. 2006년 3월 27일, 오늘은 촛불 행사를 시작한지 569일째 되는 날. 오랫동안 해 왔지만 낮 농사일에 지친 몸으로 저녁이면 어김없이 촛불을 드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미군기지를 건설하기 위해서 285만 평 넓은 논을 강제 수용하겠다는 정부 계획에 반대하는 이들의 바람은 “미군기지 확장 막아내서, 올 해도 농사짓자”다.

대추리 황새울 들판에 서서 해가 지는 쪽을 바라보면 보이는게 모두 논이다. 이곳은 대추리, 도두리는 평택 시내에서 서쪽으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더 서쪽으로 더 가면 서해를 만나고 평택항이 자리잡고 있다.
바닷물이 안성천, 진위천을 따라 내륙 깊숙이 밀려와 농토로는 가당치던 않던 척박한 땅에에 둑을 쌓아 농토로 만든 것은 늙은 농민들이었다. 수해 때문에 둑이 무너지기도 했다. 촛불 행사가 열리는 대추 분교도 마을사람들이 돈을 모아 땅을 사고 돌을 날라 학교 건물을 올렸다. 주민들 스스로 일군 마을이지만 제대로 주인 행세를 해 보지도 못했다.
이 곳 사람들이 맨손으로 비옥한 농토를 일구었을 때 일본군이 들어왔고, 일본군 비행장을 접수한 미군이 한국전쟁 이후 기지를 건설하면서 대추리, 안정리 농민들을 내쫓았다. 당시 쫓겨났던 주민들은 정부와 미군이 짧은 이주기간을 정하고 중장비를 동원해서 시설을 부숴버렸다고 한다. 이주대책이라는 것도 부서진 집에서 거둬들인 두 지게 분량의 목재, 그리고 하얀 천막 한 동에 두 집씩 입주시키고 보리쌀을 한 가마씩 나눠준 것이 전부였다.

지금 국방부가 미군기지 확장을 위해 또 주민들을 내쫓고 있다. 서울의 용산 기지 등을 평택으로 이전하기 위해 285만 평을 강제 수용하여 미군기지를 건설할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지난 3월 초, 경찰 수천 명과 포크레인을 동원해 논을 마구 파헤치기도 했다. 올 해 농사를 못 짓게 하려는 것이다.
확장 예정지 285만 평은 강제수용 절차가 끝나 법적으로 국가의 땅이 돼버렸다. 농사꾼들이 자신들의 땅에서 농사를 짓는 게 불법이 되어 버렸지만, 주민들은 나이든 농사꾼들이 지금 보상을 받고 나가더라도 어디 가서 무엇을 하겠느냐며 고향을 지키고 있다.

정부는 미국과의 약속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한 번도 성의 있는 자세로 농민들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2003년부터 이곳이 미군기지로 확장될 것이란 얘기가 사실인지 국방부에 확인을 했지만, 아직 미국과 협상이 끝나지 않아 얘기할 수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이제 협상이 끝나 어쩔 수 없다’며 주민들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미국과 약속을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주민들 의견에 귀를 기울여 준다면 주민들은 이렇게 속이 답답하지는 않을 것이다.

올해도 농사짓자.
대추리에는 천연 기념물 솔부엉이도 있고, 문화 유적도 있다. 그 땅에는 우리가 먹는 쌀이 나고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미군기지가 들어서면 논만 없어지는 게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새와 식물들, 사람들도 쫓겨난다.

주민들은 올 해도 변함없이 농사를 짓기 위해 씨를 뿌렸다.
대추리, 도두리를 평화 마을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주민들만 하는 게 아니다. 평화 활동가, 인권 활동가들이 곳곳에서 몰려와 주민들과 평화를 위한 농사를 시작하고 있다. 5월에는 모내기를 위한 농활도 할 계획이다.
새만금에서는 올해도 조개잡고 내년에도 조개잡자며 갯벌을 죽이지 말라고 한다. 평택에서는 농사꾼들이 제발 이 땅에서 농사를 짓게 해 달라고 한다. 당연한 그들의 일을 빼앗긴 그들에게도 그대로 희망은 있다. 우리도 대추리, 도두리로 가자. 그곳이 얼마나 비옥한 땅인지 눈으로 확인하자. 땅 한 평 일구면서 평화를 일궈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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