볍씨 자라고 개구리 우니 평화 오려나

2006.07.05 | 군기지

김제남 녹색연합 사무처장

5월 어느 날 광화문에서 평택 대추리 주민들이 나누어 준 볍씨 한 움큼을 접시에 담아 싹을 틔웠습니다. 열흘이 지나 싹이 튼 볍씨를 흙을 담은 작은 상자에 조심스레 심어 물을 부어주니 작은 논이 되었습니다. 우리 집 마당에 자리 잡은 작은 상자 속 볍씨는 평택 너른 평야에서 자라고 있는 벼들 마냥 잘 자라 제법 키도 크고 푸른 잎이 싱싱합니다. 딸아이가 마을 근처 논에 나가 잡아온 몇 마리의 올챙이들을 함께 넣어 기르니 개구리밥도 예쁘게 자라고 한달이 지나자 앙증맞은 작은 청개구리가 되었습니다. 뒷다리가 쑤욱, 앞다리가 쏘옥 나오더니 꼬리가 짧아지며 새끼손가락 한마디만한 청개구리가 뛰어 나옵니다. 그 우는 소리를 못 알아듣겠는데도 딸아이는 용케도 개구리 소리를 찾아 마당을 뛰어 다니는 청개구리를 찾아냅니다. 이제 곧 그들이 태어난 넓은 논으로 다시 놓아 주어야겠습니다.

5월 4일 군인들은 평택 팽성마을 미군기지 확장 이전터에 철조망을 치고 대추리, 도두리 농민들은 하늘같이 섬기며, 애지중지 자식처럼 보살펴 온 땅과 싹을 틔운 볍씨들과 생이별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2달여의 시간이 흘러 여전히 철조망은 단단하게 마을 주민들 앞을 가로막고 있고 마을 어른들은 완강하게 고향을 지키고 있습니다. 마을 어르신네 깊이 패인 시름을 아는지 모르는지 벼는 잘 자라 들녘이 푸릅니다.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작은 씨앗 하나에 우주가 담겨 있고 하나의 씨앗에서 수많은 생명을 부양할 넉넉한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밥상에 두런두런 앉아 함께 나누어 먹으니 평화가 절로 오고 더욱 건강한 생명을 키워 갑니다. 그래서 땅, 볍씨, 농민이 바로 생명과 평화일 것입니다.

그동안 이 땅을 일구며 생명을 부양해 온 농민들은 온갖 정치논리, 군사논리, 개발논리, 세계화논리에 밀려 하루아침에 문전옥답을 잃고 난민신세가 되어 왔습니다. 팽성주민들도 385만평의 미군기지가 확장되면서 생존의 땅을 강제수용당하고 있습니다. 문정현 신부님이 20여일 이상 단식을 하시고 김지태 마을이장이 구속되고 황새울 들판이 철조망에 3m이상 깊은 골로 파헤쳐지는 동안 우리 사회는 월드컵에 열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평택 미군기지 확장의 문제를 지적하거나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은 한미동맹을 위태롭게 하거나 안보를 위협하는 것으로 환경단체 등이 왜 나서는가라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조선일보와 같은 언론이나 집단이 이분법으로 이념논쟁을 일으키고 친미, 반미로 편을 갈라놓으며 평택 범대위에 참가한 단체나 촛불을 든 단체를 반미단체라며 억측 같은 소리를 해 대도 평택 팽성읍 대추리, 도두리 황새울의 현실은 좌우 대립하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과 평화의 문제입니다. 녹색은 생명가치, 평화가치를 온전하게 담고 있습니다. 녹색은 우리 민초들이 사는 현실에 뿌리 내려 사회약자가 부당하게 고통 받는 현실에 저항하도록 합니다. 녹색연합이 회원들과 함께 평택의 아픔을 나누고 황새울의 평화를 찾기 위해 연대하는 것은 녹색의 정신이요, 이 시대를 사는 양심에 따른 행동입니다. 조선일보 기사가 나가고 나서 오랫동안 회원으로 참여하신 분들이 회원탈퇴를 한 일은 참으로 마음 아픈 일입니다. 아무리 정당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회원 한분 한분의 마음을 사고 소통하는 일에 더욱 정성을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광주에서 6.15 민족통일대축전을 진행하던 어느 날 아침 이 지역에서 크다고 하는 회사에 취직서류를 접수하려 수백 명이 줄을 서 있는 모습이 차창 밖으로 지나쳤습니다. 차창 안에 있는 내게 실업문제는 차창 밖에 있는 사람들만의 문제인양 구경하듯 지나쳤습니다. 그러다 되돌아보며 오늘날 청년실업률이 8.5%에 이르고 서민경제가 무너져 사회양극화가 극에 달하고 있는 우리사회 현실과 민초들의 삶을 들여다봅니다. 이 곳에 사는 즐거움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요? 쉽지 않은 숙제입니다만 분명한 것은 ‘너희들의 문제, 너네들의 희생’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에서 그 답을 풀어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황새울에 벼가 자라고 개구리가 씩씩하게 울어대 풍년이 오고 마을주민들이 수확하는 기쁨, 내년에 뿌릴 볍씨를 거두는 평화를 되찾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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