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선생이 한심스러워 할 한국정부의 협상력

2006.10.19 | 군기지

지난 2006년 7월 14일에 열렸던 제9차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에서 한국과 미국은 1년 6개월 동안 지속된 반환미군기지 환경오염 정화 협상의 첫 마침표를 찍는데 합의했다. 한국과 미국이 1년 6개월 동안 지난한 협상을 진행한  배경에는 ‘오염자부담원칙’에 따라 주한미군에게 반환미군기지 환경오염 정화 책임이 있다는 한국측 주장과  SOFA 제4조 ‘원상복구 의무가 없다’는 조항에 따라 환경오염에 대한 원상복구의무가 없다는 미국측 주장이 대립되는 명분의 쟁점이 있었고, 실제 막대한 금액이 들어가는 환경오염정화 비용을 누가 지불하여 정화할 것인가라는 실리를 둘러싼 쟁점이 있었다. 그런데 지난했던 협상과 달리 15개기지 반환의 전제 조건 어디에도 한국 정부가 주장해 온 내용은 담겨있지 않았다.

한국정부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은 셈이다.
한국정부는 유류성분이 기준치의 최대 100배를 초과하는 기름범벅 된 미군기지를 그냥 돌려받게 되었으며, 따라서 오염 정화 비용(환경부 추산 15개 기지 1,200여억 원)도 고스란히 국민의 혈세로 부담하게 되었다. 물론 미군은 반환미군기지 환경오염의 정화 책임이 자신들에게 없다고 지금도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과는 한국정부로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었을까? 대답은 ‘아니다’이다.

우선 명분싸움에서 우리의 주장이 밀릴 어떠한 이유도 없다.
‘오염자부담원칙’은 국제 사회에서 통용되는 불변의 원칙이다. 따라서 이를 부정한다는 말을 누구도 쉽게 꺼낼 수는 없다. 한국과 미국이 2003년 합의 작성한 「환경정보공유 및 접근절차 부속서 A, 6조 가항」의 ‘반환되는 시설과 부지의 오염정화에 대하여는 미측의 비용으로 미측이 정화한다.’는 표현이 들어간 배경도 ‘오염자부담원칙’마저 주한미군이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염 정화 의무가 없다는 주한미군의 주장은 명분이라기보다 실리를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책이었다. 주한미군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SOFA 제4조 ‘원상복구 의무가 없다’ 는 조항이다. 그러나 이미 한국은 2001년 헌법재판소 판결을 통해, SOFA 제4조는 합중국 군대에게 그 공여받은 시설과 구역을 오염시킬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 아니라고 해석한 바 있다. 그럼에도 한국정부는 반환미군기지 오염정화의 책임이 주한미군에게 있다는 표현을 주한미군으로부터 받아내지 못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주한미군이 SOFA 제4조를 근거로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쳤을 때, 한국정부가 공식적으로 이를 반박한 적이 단 한차례도 없었던 사실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오히려 국방부는 홍보관리실 박왕옥중령의 기고를 통해 주한미군의 이 같은 입장을 지지하기까지 하였으니, 주한미군으로서는 반환미군기지 환경오염정화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다음은 실리싸움이었다.
어느 정도까지 오염된 땅을 정화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한국과 미국이 대립했다. 주한미군은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KISE)’에 해당하는 오염만 자신들이 정화하겠다고 주장하였고, 한국정부는 ‘국내법’을 기준으로 국내 정화 기준을 초과하는 오염에 대해서는 주한민군이 정화하라고 주장하였다.
한미간 합의했던 정화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논란의 요소가 있었다. 주한미군은 협상과정에서 KISE에 해당하는 오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했을 뿐, 이를 뒷받침할만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국내환경법의 정화기준은 그 기준을 초과했을 때, 인간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정한 것이다. 따라서 국내환경법의 정화기준을 초과하는 위험이 KISE에 해당한다는 논리로 협상에 임해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원칙적 주장만 되풀이 했다.
이 과정에서 주한미군은 자신들이 평소 미군기지를 관리하려고 만든 환경관리기준에 나와 있는 조치 사항 중 8개항을 마치 선심을 쓰듯 제시하였으며, 한국 정부는 그것이 대단한 양보를 받아낸 것처럼 덥석 받아들였다. 8개항 중에서도 주한미군이 특히 강조했던 ‘지하유류저장탱크(이하 UST) 제거’의 경우, 하청업체와의 계약 중 대부분이 기지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인 2002년 9월부터 체결되어 2004년에 주로 이루어졌다. 주한미군이 협상카드로 UST 제거를 제시한 시점인 2005년 9월 이후 하청업체와 체결한 UST 제거 계약은 2건만이 확인되었다.
주한미군이 나름의 협상전략을 세운 것과 대조적으로 한국정부는 제대로 된 협상전략을 못 세웠던 것이다.

반환미군기지 환경오염 정화 협상에서 훨씬 유리한 고지에 서 있었으면서도 한국정부가 얻어낸 협상의 결과물이 없는 것이 노무현 정부의 협상력인 것이다. 이번 협상을 서희선생이 보셨다면, 억장이 무너지셨을 것이다. 이런 정부가 과연 한미FTA 협상에서 무엇을 얻어낼 수 있을까?

노무현 정부는 말로만 자주권을 외치고, 장밋빛 미래를 유포하지 말고, 환경주권을 지키기 위해 당당하게 주한미군에게 반환미군기지 환경오염 정화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에서부터 국민들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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