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 불법매립 폭로 100일, 밝혀야할 진실들

2011.08.25 | 군기지

8월 24일은 미 퇴역군인 스티븐 하우스가 캠프 캐럴에 고엽제를 불법 매립했다고 증언한 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

고엽제 활화산처럼 타오를 불씨

고엽제라는, 인간이 만들어낸 최악의 화학물질을 한국 땅에 불법 매립했다는 사실은 증언의 진실 여부를 가리기 전에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일까, 주한미군과 한국정부는 다른 주한미군의 환경오염 사고와 달리 이 사안에 대해 발 빠르게 대응했다. 초기 인근 지역 주민들과 시민사회를 기지 내에 초대해 기지를 공개하고, 한미공동조사단도 꾸렸다. 그러나 100일이 지난 현재 그동안 제기되었던 많은 의혹들 중 제대로 해소된 것은 하나도 없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 빠른 대응이었다기보다 사건을 덮어버리고 여론이 잠잠해지길 기대하기 위한 하나의 보여주기식 행동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힘을 얻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시민사회도 이 사안에 발 빠르게 대응했다. 초기부터 주한미군고엽제등환경범죄진상규명과원상회복촉구국민대책회의(이하 고엽제대책회의)를 전국 차원으로 꾸렸으며, 대구경북대책위와 왜관지역주민대책위도 꾸려져 공동의 행동을 진행해 왔다. 그 기간, 캠프 캐럴의 용역보고서를 공개하는 성과를 이뤄내기도 하고, 지역주민의 건강문제, 인근 지역조사, 그리고 스티븐 하우스 초청까지 일련의 활동은 대책회의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성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더 정확한 정보를 추가적으로 생산하기 어려운 현실, 정부와 주한미군이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사실 여부를 가리고 문제 제기를 진행해야만 하는 상황은 진상규명 문제가 파급력에 비해 더디게 진행되며,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차츰 고엽제불법매립사건이 꺼져가는 불씨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밝혀야 할 진실들이 남아있기에, 우리가 놓치지만 않는다면 이 불씨는 어느 순간 활화산처럼 타오를 것이다. 그 순간까지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이어가야 하는 숙제가 우리에게 남아 있다.

100일, 밝혀진 사실과 밝혀야 할 사실

고엽제불법매립사건을 접하면서 가장 조심했던 것은 그리고 지금도 가장 조심하고 있는 것은 이것을 반미의 문제로 확장하는 것이다. 물론 궁극에 그럴 수도 있으나 이것은 친미반미가 아닌 지역주민과 캠프 캐럴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의 건강과 생명에 관한 문제이다. 여기서 출발해야 하며, 이 원칙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친미반미를 떠나 모든 이들의 관심을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친미든 반미든 분노할 명백한 사안이 떠오른다. 그것은 2004년 삼성물산용역보고서와 훨씬 그 이전인 1992년 우드워드클라이드 컨설턴트의 용역보고서에서 이미 기지 오염이 심각하고, 트리클로로에틸렌(TCE)과 테트라클로로에틸렌(PCE)이 기지 밖까지 오염을 확장할 수 있음을 알고도 이에 대해 해당 지방자치단체에게 통보하지 않음으로써 지역주민들이 건강상 위해를 받을 수 있도록 방치해왔다는 것이다.

특히 2004년은 이미 2002년 환경정보공유 및 접근절차 부속서 A를 체결하여 오염이 인지된 경우, 즉시 그리고 48시간 이내에 서면으로 양국에 통보하기로까지 합의한 상황이었음에도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음은 그 어떤 변명으로라도 정당화 될 수 없다. 따라서 캠프 캐럴 최고 책임자는 왜관지역 주민에게 지금 당장 사과를 해야만 한다. 그것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이다. TCE, PCE는 국제암연구소에서 위험등급 2등급으로 분류한 매우 유해한 물질이며, 이 물질이 지하수를 통해 인근 지역으로 흘러들어가는 상황 속에서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은 점을 사과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절차임을 주한미군은 명심해야 한다. 또한 주민 피해가 입증될 경우, 주한미군은 명백히 모든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고엽제 처리와 관련하여, 미국방부가 페이서호(PACER-HO)작전을 전 세계에 걸쳐 진행하였음에도 한국에서는 그 작전의 수행여부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PACER-HO 작전에 따라 우리나라의 잔여 고엽제도 처리되었다면 지금과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한국에서는 PACER-HO 작전이 수행되지 않은 듯하다. 주한미군과 미 국방부는 이 부분을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PACER-HO 작전을 수행했는지 여부, 수행하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그렇다면 잔여 고엽제는 어디서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명확히 밝힐 때만 스티븐 하우스 증언으로 불거진 주한미군 환경문제의 일부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고엽제로 불거졌으나, 삼성물산과 우드워드클라이드 보고서로 밝혀진 유독물질과 관련한 사항이다. TCE, PCE로 대표되지만 한국정부는 주한미군이 어떤 유해물질을 어느 정도 반입해서 어느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양을 사용하는지, 그에 따른 유독폐기물은 어떻게 처리하며, 잔여 유독물질은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은 현재 사용하는 유독물질의 리스트와 사용처, 사용량, 폐기물의 처리방법과 잔여 유독물질의 처리 방안까지를 꼼꼼하게 우리 정부에 신고하고 우리 정부의 감시를 받아야 할 것이다.

재발방지 대책

이 두 가지의 의혹이 명백히 밝혀진다면, 다음 과제는 오염정화와 재발방지 대책의 마련이다. 오염 정화의 책임은 당연히 주한미군이 져야할 것이다. 재발방지와 관련해서는 주한미군기지 내 오염이 감지되었을 경우,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 조사단을 보내 기지 내 오염을 조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미 독일에서는 미군기지가 있는 관할 지방자치단체에서 미군기지 내 환경오염 조사 권리를 갖고 있기에 미군으로 보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항도 아니다. 또한 먼 장래로 보면, 미군이 스스로 기지를 엄격히 관리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 향후 장기적으로 기지관리비용을 저감할 수 있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기에 미군이 이를 거부할 이유는 없다.

고엽제불법매립이라는 증언으로 촉발된 이번 사건을 통해 불거진 여러 가지 의혹들이 말끔히 해소되고 진정 한미양국이 지역주민의 건강, 기지에 근무하는 군무원과 군인들의 건강을 보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길 기대한다. 의혹이 명백히 해소되기 전까지 한 시민으로 그리고 대책회의의 실무책임자로 감시의 눈을 거두지 않을 것이다. 한미 양국이 진실을 가리기에만 급급한다면, 이번 문제가 2002년 주한미군의 아픈 기억을 되풀이할 수 있음을 엄중 경고한다.

                                      이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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