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20221일, 생태의 보고 DMZ를 가다

2009.01.05 | DMZ

정전 20221일, 생태의 보고 DMZ를 가다



금단의 땅 DMZ를 간다는 설레임 때문이었을까? 마치 소풍날 어린이처럼 이른 새벽부터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7시,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겨울 새벽의 정경이 을씨년스러워서였을까? 갑자기 전쟁의 상흔, DMZ를 간다는 일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잔인했던 파괴와 살상의 질주, 비무장이라는 이름으로 3년간 계속된 전쟁 중단의 상징이 된 곳, 그래서 두고두고 평화를 깨달으라고 신에게 벌받는 것처럼 사람은 그 누구도 갈 수 없고, 인간을 뺀 자연만이 오롯이 남아 있는 곳, 녹색연합의 신입활동가로서 나는 DMZ에 가서 무엇을 느껴야 할까? 여러 번 나에게 질문을 던지며 성북동 길을 올랐다. 이번 DMZ 방문은 나를 비롯한 녹색연합의 18기 신입 활동가 3명과 우리의 수습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이신애 활동가, DMZ 담당자인 유소영 활동가, 이선화 활동가를 비롯한 회원확대팀의 3명의 활동가, 사이버담당자인 이재구 활동가 이렇게 총 9명의 녹색연합 활동가가 함께 한다. 오전 9시 30분, 일행을 태운 차량이 첫번째 방문 예정지인 연천을 향해 출발했다.

DMZ 생태보전을 상징하는 두루미의 날개짓

11시 30분 연천인근에서 점심을 먹고 태풍전망대를 찾아나서는 길, 갑자기 차창 밖으로 평화롭게 나는 두루미가 보인다. 차에서 내려 살펴보니 장군여울가와 농경지에서 두루미들이 고혹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다. 멸종위기의 진귀한 새, 천연기념물 두루미는 세계적으로 2,800마리 정도만 남아있고, 이들 중 연천 DMZ 부근에는 150-200마리의 두루미가 관찰된다고 한다. 두루미는 보통 3,4마리, 혹은 5,6마리씩

가족단위로 이동한다고 하니 연천지역에만 마흔의 두루미 가족이 찾아온 셈이다. 연천지역 두루미들은 율무를 먹이로 삼는데,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평화로운 두루미의 날개짓을 한껏 감상하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구부러진 길 옆에 군사시설물이 보인다. 우리 일행은 다시 차에 올라 태풍전망대를 향해 출발했다. 차장 밖으로 두루미의 날개짓은 여전한데 차가 움직이는 길을 따라 지뢰 표시가 가득하다. 사람이 손길이 닿지 않는 곳, 비무장지대 인근인 연천은 두루미들에게 연천은 안녕과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삶의 터전이건만 우리는 여전히 길 위에서 전쟁과 마주해야 한다. 언제가 되어야 저 길이 꽃길이 될 수 있을까? DMZ 생태의 상징 두루미가 사람들의 가슴에 평화의 전령도 되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낯설게 전쟁을 전망하는 일

보통의 전망대라면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산하를 바라보며 인간을 압도하는 자연의 숨결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태풍전망대에서는 우리세대는 감히 상상으로도 다다를 수 없는 치열한 전투의 현장과 휴전 후 남북간 DMZ 현황을 보고 듣게 된다. 입대한 지 이제 갓 3개월을 넘겼다는 이등병으로부터 태풍전망대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치열한 전적지 설명 사이사이에 DMZ일원에서 고라니 등의 야생동물이 관찰된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군사시설물이 보이는 각도에서 사진촬영을 할 수 없다는 설명도 이등병은 빠뜨리지 않았다. 그는 설명하는 것이 낯설고, 우리는 전쟁을 전망하는 일이 낯설다. 흐린 날이라 시야는 뿌옇고 겨울이라 철책 안은 푸른빛이 감돌지 않는다. 그저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임진강자락, 잠든 것 같은 숲을 보며 50년간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아 잘 보전된 생태를 짐작할 뿐이다. 봄이 되면 생태의 보고답게 비무장지대 숲 사이로 평화의 바람이 깃들고 나뭇가지 사이로 햇볕이 반짝거리리라. 거의 매일 뉴스에서 경색되어가는 남북관계 소식을 들어야 하는 요즘, 인간의 봄은 언제나 찾아오게 될까? 전쟁을 전망했던 일이 추억이 되기를 염원하며 일행은 철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정부의 대북 선전과 식량증산 정책에 따라 지난 1967년 민북마을로 마을의 역사를 시작했다가 2005년 민통선마을에서 해제된 철원 대마리 두루미평화마을 숙소에 짐을 풀었다. 큰아드님 이름을 따서 식당이름을 지었다는 대원식당에서 엄마가 차려주신 듯 정성과 맛이 가득 담긴 저녁을 마치고, 다시 숙소로 이동, 철원 향토 문화를 연구하시는 김영규선생님으로부터 민북마을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김영규선생님은 철원에서 나고, 다시 철원으로 귀촌하신 분으로 철원의 역사를 제대로 종합기술하고 싶다고 하셨다. 젊음을 훌쩍 넘긴 나이셨지만 철원지역의 역사를 연구한다는 자부심과 열정이 목소리를 타고 생생하게 전해졌다. 지난 1967년부터 정부는 대북선전과 식량증산을 목적으로 1954년 미국육군사령관이 지정한 보이지 않는 선 민통선 안에 입주자를모집하고 파주, 연천, 철원, 인제, 양구, 고성 등에 민북마을을 조성했다. 이들은 지뢰를 밟아도 그래서 죽게되더라도 문제 삼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민북마을로 들어왔다. 자립안정촌, 재건촌, 통일촌 정부는 마을마다 조금씩 건설목적을 달리했지만 민통선 마을사람들은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이곳으로 입주, 어제는 옆집 아저씨가 오늘은 우리 아들이 지뢰를 밟아 죽어나가는 걸 가슴에 묻고 살아왔다고 한다. 2000년 들어 대마리를 비롯한 상당수 마을들이 민통선 마을에서 해제되어 군의 통제로부터 일면 자유로워졌고, 이제 장성한 2세대들이 마을을 이끌어가고 있지만 민통선 마을 주민들의 서러움과 한은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김영규 선생님은 생존해계신 1세대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기록하고 계신다고 했다. 그저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 인간의 자유를 헌납하고, 그저 식구들 배부르게 하고 싶어서 목숨을 내걸고 살아오신 분들의 터전인 민북마을 설명을 들으면서 가슴이 자꾸만 먹먹해졌다.

김영규 선생님의 강의를 마치고, 우리는 민북마을 2세대인 한종문 주민과 술한잔을 기울이며 민북마을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어머니가 고물을 파신다고 광주리 한가득 담아 밭에서 이고 오신 것들이 알고보니 지뢰였다는 것, 학창시절 수업 중에 펑소리가 요동을 해도 모두들 놀라지 않았다는 것, 깜깜한 밤 응급실에 실려가야할 상황에서도 제재 때문에 참아야했다는 것… 대화는 어느 새 민통선의 생태 보전은 어떠해야 하는 지, 현재 지자체들의 주도로 개발되고 있는 현황과 문제점은 무엇인 지로 이어졌다. 술자리 내내 우리 일행을 들었다놨다 하는 달변으로 유쾌한 웃음 가득한 얼굴로 한종문 주민은 오히려 자신의 삶을 넘어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해주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녹색운동가가 지역주민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지, 지역주민들과 함께 가고 있는 지를 반성하게 해주셨다.

DMZ 생태는 인간이 치룬 값비싼 대가

이틀째. 오늘은 평화전망대와 철원일대를 둘러보는 날이다. 안내자는 한종문 주민. 노동당사, 월정리역, 그리고 평화전망대… 해방 이후 철원은 읍에만 인구 2만 이상이 거주하는 번성한 곳이었다. 철도가 놓여지고, 은행이 있었던 곳… 노동당사를 바라보다가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철원이 격전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평화전망대를 올라 태풍전망대에서보다 더 가깝게 비무장지대 일원을 조망하면서 나는 철원이 격전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분명하게 깨달았다. 이유는 생명에 있었다. 식량창고가 되어줄, 사람을 먹여 살릴 비옥하고 드넓은 농토… 군사전문가들이 무엇으로 이유를 말하건 간에 생명줄이 되어줄 드넓은 농토가 있다는 것,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격전을 치루게 한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오히려 생명을 앗아갔고, 모든 것을 파괴했다. 오늘날 우리가 생태의 보고라고 일컫고 있는 DMZ는 인간이 값비싼 대가를 담보로 태동된 것이다. 전쟁은 인간을 되돌아보게 한다. 파괴를 정면으로 응시하게 하고, 그를 통해 생명, 삶의 존엄성을 깨닫게 한다. 생명의 존엄함과 파괴에 대한 묵계, 그걸 발딛고 50년간 보전되어온 생태계… 이곳은 그대로 보전되어야 한다. 누구에게도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생태를 상품으로 전락시킬 권리가 없다. 오로지 우리에겐 이 자연을 지켜야할 의무만이 남은 건 아닐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떻게 녹색운동을 할 것인 지 다시 나에게 물었다. 나의 녹색 삶의 답에 이르는 길, 철원에서 나는 그 첫발걸음을 내딛었다.

글 : 녹색연합 18기 신입활동가(박진희, 배보람, 손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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