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현장교육 1- 지뢰괴물 살고 있는 DMZ

2010.07.23 | DMZ

비무장지대 자원활동가들과 철원에 다녀왔습니다. 서로가 메모한 작은 글들을 모아봅니다. 무엇하나로 정의되기 어려운 그곳에서 바라본 시선을 나눠봅니다.


▲ 비무장지대는 언제나 숨을 쉰다. 그대로의 그곳이었으면 한다 ⓒ녹색연합

모든 것이 배제된 곳에 나를 들여보내다.
DMZ.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자유를 제한 당한 곳이다. 차갑지만 가장 자유롭고, 쉼 없이 따뜻한 땅. 모든 것이 멈춰진 듯 조용하며 많은 것들이 계속 움직인다. 살아있는 채로 들썩이고 있다. 나무와 나무사이로 풀과 풀 사이로 생긴 대로 구불구불 하늘에 맡기고 있다. 바람에 맡기고 그저 유유히 저 스스로 소리 없이 흐르는 화강이 아름답다. 일터에서 불과 몇 십킬로만 달리면 보이는 곳이지만, 참 다른 곳이다. 내 가슴을 지배하는 것이 다르다. 숲이 웅장하지 않아도, 끝없이 펼쳐진 평야가 아니어도, 가슴 속 DMZ는 참 넓고 웅장하다. 그 안에 있는 많은 생명체를 보지 않아도 언젠가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그 앞마을에 들러, 이 마을에 평화가 오면 무엇을 어떻게 할지 고민해 본다. 민간인통제구역 주민들의 삶과 일터와 그 평화의 땅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다. 그저 어쩌다 오는 이들의 꿈이 아닌, 그들만의 현실을 고민해 본다. 마을의‘역사’는 최고의 가치로 자존심이 되고, ‘현실’은 그들 삶에 그대로 녹아드는 또 다른 꿈이 되었으면 한다. 어떤 느낌보다 내 눈에 보였던 오늘 이 마을의 모습들이 잠자던 나의 생각들이 깨워 주었다. 불끈 불끈 무언가를 솟게 하는 새로운 경험을 주었다. 생태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한다. 이제 행동하고 싶다. / 양현숙


▲ 민간인 통제구역의 마을도 우리가 사는 곳과 다르지 않다 ⓒ녹색연합

투명한 공간으로 누구의 간섭도 받지 말기
DMZ 하면 대학 다닐 적에 교양수업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읽었던 소설 DMZ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건 제목에 대한 기억일 뿐, 내용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겠지? 아주 우연찮게 이 자리에 오게 되었는데, 전에 보지 못한 풍경을 맞이하게 되었다. 뭐랄까? 아, 처음 보는 풍경이다’딱히 정의하기 보다는 그저 희한하다는 느낌? 군데군데 헐벗어 있긴 했지만 촉촉하고 푹신푹신한 느낌이다.
평소에 보지 못한 벌레 들고 많이 보고, 듣지 못한 소리도 많이 듣는다. 또 다른 소리를 들었다. 개발? 왜 이렇게들 애를 쓰는 걸까? 4차선도로, 자전거 도로, 철거 후 새 건물, 왜 이렇게 개발에 안달이 났지? 복잡하다. 먹고사는 그런 것들이 있겠지만..(생각이 자꾸 산으로 간다.) 난, DMZ를 그냥 놔두었으면 한다. 아직까지 인근에 사는 주민들을 배려하지 않는 관점과 관광화 하지도 말고, 개발하지도 말고, 그저 모른 척. 이곳만큼은 폭신폭신하게 그대로 클 수 있게(또, 산으로 가네@@) 너무나 백지상태라 달리 생각하는 것도 어렵다. 다 이유가 있겠지만 철거보다는 보수해서 쓰는 게 낫지 않을까한다. 무조건 새것을 찾기보다는 계속해서 역사는 쌓아가는 것. 더 뜻 깊은 일일 것이다. DMZ. 투명인간이 돼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그렇게 어딘가에 존재했으면 좋겠다. / 그림 그리는 서하나

남으로 남으로

남으로 남으로
한 마을에 찻길을 딱 하나
지뢰가 없는 길
차 소리도 드물고 마을엔 온통 제비소리
가득하다 살고 싶었는데
길 따라 남으로
남으로 걸어가자

한 방울 빗방울 떨어지자
오이며 파프리카를 키우던 비닐하우스에선
쏴아 쏴아 강물 소리가 난다.
남으로 흐르는 물 남대천
비 속에서 소리죽여 우는 사이
비 맞은 생창리 비닐하우스에선
꽃 강이 피어난다.

남으로 남으로
금강 남쪽 강원도에서 시작된 물이
강원도도 아니고 함경도도 아니고
평안도도 아니고 경기도도 아니고
남도 북도 아닌 비무장지대를 지나 꽃처럼 피어나는 곳

금꽃, 금화
이제는 김화라는 이름 단 곳
그곳을 소리도 없이 남으로 흘러
임진강에 이르는 강아

너는 꽃 강
제 이름을 찾으리
꽃과 새와 물이 서로 떨어진 두 길이
그 곳에서 만나리

/ 윤신영


▲ 지뢰괴물은 언제 어디에서 출몰할지 모른다. 항상 긴장을 놓아선 안된다 ⓒ녹색연합

작은 깨달음 준 곳. DMZ
삶이란 배움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DMZ에 오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두렵기도 했다. 그렇지만 두려워도 온몸을 던져야 함을 알았다. 점수를 위한 공부. 한 자리 하기 위한 공부. 성공하기 위한 공부. 그것이 진정성을 담고 있는 지가 두려웠던 것이다. 저 곳을 바라보며 세상은 잘하는 사람만의 것이 아닌, 일등만의 것이 아닌, 행동하는 사람의 것임을 덤비고 설치고 시도하는 사람의 것임을 깨닫는다.
‘자연’이라는 말처럼 스스로 그러하다는 말이 좋다. 자연은 자연그대로 일 때가 아름다운 것처럼 여기서 그것을 몸소 깨닫는다. 우리의 움직임이 작지만 가치 있고 소중한 완충의 역할이다. 작은 깨달음과 행동으로 이곳이 지켜졌으면 하는 바램 이다. / 이효리


▲ 이곳에서의 30년은 모든 것이 그리움이이었다 – 김화군 생창리 이장님 ⓒ녹색연합

이해한 척 해야 하는 것들
캠퍼스는 항상 시끄럽다. 자기들 각자의 목소리를 내느라 항상 시끄럽다. 난 지금 3학년이고 3년 내내 그 시끄러운 캠퍼스 내의 목소리들을 정신없이 들으며 학교를 다녔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캠퍼스는 더 시끄러워졌다. 시끌시끌한 울림들 속에서 나 또한 그 분위기에 휩쓸려 정신없이 3년을 보낸 것 같다. 학교에서 스터디를 하면서 우리 나름의 목표와 질문을 정하고 답사를 간다. 사실 답사라고 해봤자 일주일도 안 되는 정말 짧은 기간이기에 진정한 field work라고 얘기할 순 없다. 하지만 항상 ‘연습을 한다’는 생각으로 마을 조사를 한다. 답사를 다녀오고 나서는 매번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다. 눈으로 보지 않고 몸으로 경험하지 않는 것들을 내 말로 언어화 시킬 수 없다는 것. 내가 고민하고 있던 부분이 사실 현장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말이 될 수도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현장의 모순이 보이기도 하는 것들이 있다.
‘비무장지대’라는 단어는 나에게 있어 ‘미지의 고요한 평화의 지대’라는 정도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다. 좀 더 좁혀서 말하자면 평화=정적, 이라는 단순한 논리를 내 머리 속에 정립하고 있었다. 평화라는 단어는 너무나 추상적이고, 거대하고, 아름답기만 한 단어라서 사실 평소에 스스로도 잘 쓰지 않는 단어다. “그래 평화 좋지.”라는 식으로 깊이 고민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평화라는 단어를 아름다운 사회적 단어로 유지시키기 위해 우리 주변엔 얼마나 많은 고통이 뒤따랐는지, 평화라는 단어는 그 본질이 깨끗해서 평화가 아니라, 그 기저의 무수히 많은 고통과 상처를 위로해주기 위해 아름다워지고 ‘깨끗한 척’해야 하는 단어라는 걸 느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사람의 강연 몇 번 듣는다고 평화에 대해 ‘난 좀 알아’라고 말할 순 없는 노릇이다. 직접 눈으로 보고 평화라는 단어가 주는 무서움을 몸으로 익혀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본다.
요즘 뉴스를 보면 과연 이 나라에 통일은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잔혹한 이중의 철책선과 산허리를 이어가는 GP들, 고요한 숲속아래 묻힌 셀 수 없는 지뢰와 불발탄을 기분 좋게 제거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전쟁이 끝나고 60년이 지나버려서 이제는 그 시대의 아픔을 안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 둘씩 이 세상에서 떠나간다. 지금 세대는 그 아픔을 역사의 이름으로 화석화 시키고 있다. 고통 은 소수의 고통으로 전환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녹색연합에서도 이에 대한 생태적 고민을 10년 이상의 장기 프로젝트로 설정하고 움직이고 있다고 하는데, 그 고민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어졌으면 좋겠다. 나 또한 그 연장선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이예진


▲ 지뢰괴물을 보호하는 곳이다. 자연과는 함께, 인간과는 멀리해야 하는 곳이다 ⓒ녹색연합

특별히 다르지 않는 그런 곳
참 궁금했다. 도대체 DMZ와 민통선은 어떤 곳일까? 내 눈 앞에 DMZ와 초소를 통과하며 지나온 민간인 통제구역은 사진으로만 보던 것과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정전상태라는 것을 나타내는 감시 초소들과 이중의 철조망들. 보면 볼수록 실감이 난다. 60년간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남아 있는 평야. 난 행운아다. 저 앞에서 나의 눈을 뜰 수 있다. 개발이라는 전제를 떠나 제발 남아있기만 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평화에 대한 논의가 오고 갈 것이다. 그 전제와 이 상징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지키고 싶다. 그런 생각만이 든다.
민간인통제구역 마을에 있다. 특별한 것도 특출한 것도 없다. 여느 농촌의 현실과 마찬가지이다. 고령화는 심각하고, 장가못간 총각님들도 많다. 이곳 역시 사람 사는 곳이다. 그들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사람 사는 곳이다. 그곳에 지뢰가 있고, 규제가 있고 질곡이 있다.
그것이 슬프다. 전쟁이 없었거나, 전쟁 후 통일이 되었더라면 남아있지 않았을 땅이다. 이곳은 바르게 알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외할머니가 살고계신 철원. 엄마고향인 인제, 조부모의 산소가 모셔진 파주 문산. 세 곳의 공통점은 DMZ가 있는 지역이다. 나도 인식하지 못한 것 들이 가족사에 흔적으로 나를 고민하게 한다. / 이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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