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의 지구시간

2010.04.07 | 기후위기대응

눈부시게 화려한 불빛으로 수놓아진 도심 한복판을 뒤로하고 잰 걸음으로 집에 들었다.
2010년 3월 20일 저녁 8시 30분. 신발장 위에 있는 전원스위치를 내려 집안의 모든 에너지를 차단하자 짙은 어둠이 밀려오며 순간적인 정적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와 동시에 터져 나오는 두 딸아이의 괴성(?). 이미 예고된 상황이라 크게 놀라진 않았지만 순간적인 어두움이 적잖은 긴장을 불러왔나보다.

식탁 위의 촛불을 켜자 순간의 긴장은 사라지고, 또 다른 색의 상황이 펼쳐지면서 감성이 풍부한 아이들은 촛불의 고즈넉한 울림에 적응해 가는 듯 했다. ‘이제 무엇을 하며 이 시간을 보낼까?’하고 마음이 분주해질 것이다. 물론 아이들과 이 시간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 이미 이야기 나눴었다. 중3인 큰 딸은 핸드폰 사용도 안 되느냐며 시큰둥해지더니 “그럼 난 잠이나 자야겠다.”며 뾰로통해졌고 작은딸은 “그럼 우리 산책하러 나가자”며 제안을 해왔다.  지켜보던 남편이 소리 없이 미소를 짓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만의 시간을 즐길 줄 아는 남편은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촛불 켜고도 할일이 얼마나 많은데”라며 오히려 즐기는 분위기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둘째 아이의 의견에 따라 산책하기로 결정하려는 순간, 내내 시큰둥하던 큰 애가 반전을 꾀하는 발언을 했다. ‘어차피 이 캠페인은 우리가 누리는 혜택에서 벗어나 지구와 지구시간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건데, 밖에 나가면 다시 수많은 자동차 불빛과 건물들의 조명을 마주하게 된다.’면서 의미가 없다는 거였다. 결국 어느 쪽도 결정하지 못한 채 각자 그 상황에 대처하기로 했다.



계속되는 어두움 속에서 자연스럽게 촛불 앞으로 가족들의 얼굴이 모여들었다. 잠시 서로의 눈빛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모두 눈을 감은 채, 몇 년 전 함께 강원도 오지마을로 여행을 떠났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날 밤 총총한 별빛을 맑게 흘려보내던 강물소리와 부드러운 바람결에 소근 거리는 풀잎의 이야기들을 꺼내며 행복해했다. 갑자기 바뀐 상황 때문에 자못 심각해졌던 아이들의 투정은 이내 밤하늘을 하늘거리던 반딧불이처럼 나름의 색깔로 촛불 위를 맴돌았다.

“자 이제 우리들처럼 지구촌 곳곳에서 자신들의 시간에 맞춰 이 순간을 아름답게 보듬어 안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자신만의 시간을 갖도록 하자꾸나.” 아이들에게 작은 초 하나씩 분양해주며 손을 잡아주고 자기 방으로 들여보냈다. 이내 아이들은 책상 위에 촛불을 올려놓고 책을 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엄마! 이걸 꼭 일 년에 한번 씩만 해야 하는 거야?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게 어때?” 이내 적응된 듯 작은 딸이 되레 솔깃한 제안을 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캠페인이 어떤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을까? 단순히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일회성 행사로 끝난다면 그 효과는 미비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동참을 계기로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에 대해 자각하고 현 문명에 대한 반성과 함께 대안적 실천이 이루어진다면 분명 변화는 있을 것이다. 현재 지구위에서 계속되는 기후재난들이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때문이고, 그 모든 것이 아직도 끝없이 벌어지는 개발과 현 문명의 생활방식에 의한 온실가스 때문이라면, 결국 지구촌 모든 나라의 정책적 결단, 아니 그보다 정책입안자들의 친환경적 사고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단 한 시간의 홍보성 행사라 하더라도 이를 통해 지구 위기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이를 위한 대안들이 점진적으로 나타나고 실행될 거라 생각한다.

우리가족은 다시 각자의 촛불을 들고 한 자리에 모였고 앞으로 우리가 생활 속에서 실천해 가야할 녹색 삶의 모습들을 나누었다. 우리가 늘 듣고 알고 있는 너무나도 익숙한 내용들이다. 문제는 실천이다. 이제 아이들이 나름대로 공약한 실천내용들을 행동으로 옮기게 되면 주부인 내가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더 많아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구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휴식을 주고, 결과적으로 지구가 무참히 파괴된 상처들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려면 생활에서 정책으로, 개인에서 집단으로, 전 세계, 전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더불어 이 모두가 실천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정해진 시간이 다 되어간다. 약속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전원을 올리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의 느낌과 고요함이 좋다며 불 켜기를 원치 않는 아이들의 요구 때문이다. 녀석들이 자리를 정리하고 누워 더 깊은 고요로 빠져들 때까지 우리 집은 지구의 쉼과 함께 했다.

글 : 정미경 (녹색연합 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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