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소 그린홈 리더 양성과정 현장실습 후기

2010.10.26 | 기후위기대응

갑자기 날씨가 쌀쌀하다. 후기란 모름지기 여행가방의 온기가 식기 전 아직 기억이 따뜻할 때 써야하건만, 미루고 미루다 마음에 걸려 체하기 직전인 이제야 찍었던 사진을 들여다보며 그때의 분위기와 이야기를 환기하다니 게으르다.  

가을로 계절이 저물기 시작할 무렵 시작했던 저탄소 그린홈 리더 양성 교육과정을 잘 마친 후, 같이 수강했던 한 분의 호의에 힘입어 10월 9일,10일 1박 2일 동안 예정에 없던 현장실습을 다녀왔다. 평창에 생태건축을 구현하려다 몇 가지 오류로 성공하지 못하고 그때의 교훈을 잘 새겨 다시 성남에 집을 짓고 있다는 분의 실패한 현장에서 실제로 에너지를 진단해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정이었다.

하늘이 오랜만에 푸르고 높아 상쾌하게 출발해 평창 들림집이라는 곳에서 곤드레밥, 장국수, 대추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대추를 달콤하게 맛보며 맑은 길을 달려 성 필립보 생태마을에 도착했다.  

황토로 지은 토담집이 몇 채, 마당을 천천히 다니는 닭과 오리들, 해를 향해 고개를 쳐든 태양광 전지판, 날개가 굳은 듯 꿈쩍도 하지 않는 풍력 발전기 사이로 머리에 천문대를 얹은 건물이 보였다. 발 아래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절벽 위 파고라에서 신부님의 생태마을조성 실패와 성공기, 멀리 펼쳐놓은 계획들을 듣는다. 어떤 일이든지 십년을 바라보고 하신다는 말씀. 결과를 조급해 하지 않고 꾸준히 하는 실천.

태양광 발전은 축전지 때문에 실패해서 지금은 사용하지 못하지만, 한전과 계통연계하는 방식으로 바꿔서 다시 쓸 예정이고, 풍력발전은 설치비가 무지하게 비쌌음에도 센 바람 한 번에 대부분 날개가 부러져 쓰지 못하고 있는데, 토담집만 성공하셨는데 나날이 솜씨도 늘어가신단다. 피정 겸 농부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과 함께 농약을 전혀 하지 않고 6천평의 농사를 짓는데 건강하게 몸을 움직여 마음을 치료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약인 듯 싶다.

지금껏 여러 가지 시도를 했고 그동안 실패로 인해 수업료도 적지않게 치뤘지만 이 경험을 기반으로 여주에 두 번째 생태마을을 만들고 아프리카나 캐나다에서도 확대해서 일을 벌여 나갈 생각이라고 하시니, 에너지가 대단한 분이다.

평창 마을 길을 들락날락 헤매다 거의 길 끝에 자리한 돌쩌귀 연수원이자 초대해주신 쥔장의 별장이기도 하고, 건축실험장이기도 한 목적지에 도착했다. 너른 정원 한편으로 실개천이 조잘조잘 흐르고 풀이 무성하게 자란 마당 너머에 구수하게 백숙이 익어가고 원주 노나메기와 대전 위더스에서 일행이 속속 도착하면서 해가 어느덧 저물었다.

집 구경을 천천히 하고 천장이 높다란 거실에 모여 앉아 쥔장께서 집 지은 이야기와 실패했던 경험, 즐거웠던 이야기, 지금도 계속 중인 유지보수 이야기를 나눴다. 이 집은 새로운 자재를 거의 쓰지 않고 여러 현장에서 구한 쓰다 남은 것들, 버리는 것들을 귀하게 모아서 지었는데 모양이 아주 예쁘다. 세모와 네모 모양 두 채를 연결다리로 이어놓았고 왼쪽 삼각형 뽀족한 집은 3층으로  1층은 손님용, 2층, 3층은 주인용이다.

주인용 실내는 높은 천장이 시원하기도 했지만, 거실과 방 사이를 벽으로 막지 않고 일일이 나무를 조립하여 바람과 빛이 통하는 구조로 만들어 놓은 것이 특별하다. 방에 불을 켜니 거실로 은은하게 빛이 새어나오고, 빛이 흐르듯 앞 뒤 창문을 열면 공기라 흘러 맞통풍으로 시원하니 냉방 걱정이 없다. 워낙 개울 옆이라 땅이 가진 기운이 서늘하지만, 공간의 구조가 기능을 더하여 인상 깊었다.

바닥은 광택을 낸 돌로 마감하였는데, 낮에 태양열로 온수를 데워 바닥을 구들장 덮히듯이 천천히 데워놓으면 저녁에는 열기가 뜨거울 정도고 밤에 바깥온도가 떨어져도 밤새 따뜻하다고 한다. 주인이 일터나 집에서 출발하여 밤에 도착하는 생활 패턴에 맞춰 열용량이 높은 자재를 적절하게 사용한 것인데, 비슷한 생활패턴을 가진 집에서 응용해보고 싶은 아이디어였다.

구석구석 재밌는 곳 중 벽난로 배기 덕트를 길게 거실을 관통하여 맞은편 벽에 꽂아 놓았는데, 배기 덕트로 발산되는 열을 난방에 이용한 것이라고 한다. 쓰다 보니 덕트연결 부위에서 진이 떨어지는데 다른 현장에는 스테인리스 철을 사용해 용접하여 해결하려고 궁리중이란다.

오른쪽 네모난 채는 1층은 구들을 놓고, 온수파이프난방으로 보완하였는데 온수보일러를 놓지 않고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서 물을 데워 순환시키는 방식으로 쉬 덮히기 어려운 구들온도가 서서히 올라가는 동안 온수가 빨리 방바닥을 데우는 방식이다.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어서 눈여겨보았다. 이 집에는 이렇게 주인이 늘 고치고 다듬고 실험해본 일 들이 가득한데 집을 고치고 다시 고치고 새로 만드는 열정이 참 대단하다. 구들만 해도 벌써 세 번째 다시 놓은 것이고, 바닥마감은 원목마루였다가 걷어내고 돌을 깔았으며, 창호며, 태양열 온수기며 늘 실험중인데 앞으로는 외벽공사를 다시 해야겠다고 하신다.

집에 대한 이야기가 끝이 없을 듯 이어지면서 현장실습의 절정인 에너지 진단을 하기로 했는데, 블로어도어 테스트와 적외선촬영을 통해 기밀성능과 열전도성능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 집의 외벽은 철골구조에 샌드위치판넬 양면, 열반사단열재, 석고보드, 나무패널로 구성되어 있는데, 단열재가 구성으로만 보면 단단한 편이지만 전기콘센트나 바닥과 벽 구조가 만나는 곳에서 평소에도 느껴질 정도로 외풍이 부는 편이라고 했다. 측정장비를 싣고 먼 길을 달려와서 피곤을 무릅쓰고 이론과 실습을 보여주신 분은 (주)위더스의 이진오 대표였는데, 다른 곳에서 보았던 에너지 진단보다 시스템이나 장비들이 좀 더 체계적이고 실무경험이 많고 이론도 풍부하여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그 중 에너지효율 등급 인증할 때 사후 평가, 본인증이 허약한 것에 대해 문제제기하셨고 공감이 가는 얘기였다. 반도체 공장과 같은 항온항습공간도 기밀을 철저히 한다면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끼치는 나쁜 영향도 줄일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도 인상 깊다.

강력한 팬이 달린 빨간 가림막(Blower Door ^_^)으로 외부 출입문을 밀폐하고 공기를 빨아내기 시작하자 어디에선가 찬바람이 씽씽 부는게 느껴졌고, 손 선풍기를 들고 여기저기 측정해보니 과연 예상했던 대로 콘센트, 벽, 바닥 만나는 곳, 전기 스위치, 배관이 관통된 곳이 기밀성능이 나빴는데,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했을 때는 그 외에도 쥔장 예상과 다르게 벽, 천장 만나는 곳, 창틀 있는 곳에서도 열이 많이 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신기한 측정 장비와 측정과정을 한참 공부하고 자리를 정리한 후 뒷 토론을 시작했는데, 시공경험도 풍부하고 이론이 깊은 분도 있고, 태양에너지를 연구하신 분이나 그린홈에 관한 제도, 정책, 사례, 이론에 관해 블로거를 운영하는 파워블로거, 나무선생님 등 다양한 분들이 참석하셔서 진지한 토론이 밤이 깊도록 이어졌다.

쪼꼼 어려운 내용도 있었지만 공부보다 소풍! 아름답고 맑은 날 귀한 시간 내어 오신 분들 모두 마음에 가득 물소리, 바람소리, 하늘 빛 담아갔을 것 같다. 인간과 삶, 환경에 관해 깊고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거나 해 오신 분들을 이 가을에 많이 만났다. 어쩌면 멀고 긴 길을 걸어가는 중일텐데 같이 가는 사람이 많으니 뜻이 모여 큰 강물이 될 듯 싶다.


글 : 김미정 (녹색연합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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