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 “입 닥치고 이산화탄소나 줄여”

2009.12.19 | 기후위기대응

[코펜하겐은 지금 ⑪] 코펜하겐 정상회담 D-1

‘유엔 기후변화협약 제15차 당사국 총회(UNFCCC COP15, 이하 COP15)’가 12월 7일부터 18일까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립니다.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최대 과제인 기후 변화 문제를 논의하는 COP15는 사실상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회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녹색연합과 공동으로 ‘코펜하겐은 지금’이라는 현장 기획 기사를 출고할 예정입니다. 녹색연합은 4명의 활동가를 현지에 파견했습니다.

덴마크는 풍력발전을 할 수밖에 없다. 어제 인어 동상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다가 든 생각이었다. 어찌나 바람이 세차게 불고, 날은 추우며, 해는 빨리 지는지.

지난 9일, 덴마크에 도착한 이후 쭉 Ship15에서 머물고 있다. 회의 기간 동안 잠시 정박한 배인데, 숙박비가 저렴한 6인실에 머물고 있다. 갑판 사이를 오르내리다 보면 마치 선원이 된 기분이다.

은배지 없는 평민 출입통제된 회의장



배에서 자면 흔들릴 텐데라고 걱정했는데, 배가 엄청 커서 안에 들어오면 여기가 배라는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 종종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유한함을 빗대 우주선이나 배에 비유를 많이 하는데, 육지에서 식량과 물, 에너지를 공급 받지 못한다면 이 배에 머무는 사람들은 얼마나 생존할 수 있을까.

이번 COP15 회의에는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전 세계 각국 정상 100여 명이 참석하기에 UN은 16일부터 벨라센터에서 ‘평민’들의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정부대표단과 UN 직원, 국제기구에 미리 배포된 ‘은배지’가 없는 사람들은 회의장에 들어갈 수 없다. 이렇게 회의장 출입을 원천 봉쇄한 것은 역사상 처음인 것 같다.

책임을 회피하는 선진국 대표들에겐 야유도 좀 보내고, 지원을 호소하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격려의 박수도 보내고 해야 하는데, 여기까지 온 보람이 없다. 무엇보다 전 세계인들을 향해 ‘녹색성장’의 성과를 자랑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은 꼭 보고 기록해 두었어야 하는데 아쉽다. 준비해온 액션도 결국 물 건너 갔다.

18일 오전 10시부터 기후변화 정상회담이 시작된다(여기는 한국보다 8시간이 늦다). 덴마크 총리가 인사말하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원자바오 중국 총리, G77 의장인 수단의 루뭄바 다핑이 연설을 한다. 이명박 대통령도 환경건전성 그룹 대표 자격으로 연설을 한다.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이 연설을 두 번이나 한다며 호들갑을 떤다. 국제사회가 한국을 속속들이 들여보지 않는 한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이 핵에너지와 4대강 토목성장이라는 것을 알리가 없다.

오후 3시부터 이번 회의 결과에 대해 주요결정을 내리는 회의가 시작된다. 코펜하겐 지도에서 ‘벨라센터’ 건물만 딱 떼어내서 태평양 한가운데 띄워놓고, 해수면 상승의 위험을 체험하면서 어서 빨리 기후변화에 대한 ‘새로운 의정서’를 만들어내라고 협박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까?

하루밖에 남지 않은 일정, 전망은 회색빛



하루밖에 남지 않은 회의 전망은 어둡다. 3년 전 발리 회의에서 2009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교토의정서를 대신할 새로운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 짓기로 합의했는데, 도대체 그동안 무엇을 했나 싶다. 이번 회의에서는 새로운 의정서 탄생은커녕 ‘정치적인 합의문’ 하나 작성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합의문’은 앞으로 논의를 언제 어떻게 진행하겠다는 계획 수준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결국 핵심은 ‘미국’과 ‘중국’이다. 기후변화의 역사적 책임에 대해 100% 인정한 상태에서 지금 현 상황만 본다면 미국과 중국이 전 세계 배출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현행 교토의정서로서는 이 두 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거나 규제할 수가 없다. 결국 새로운 의정서가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한데, 미국은 ‘중국’ 없으면 못 한다고 협박하고, 중국은 ‘미국’과 ‘선진국’의 역사적 책임만 물고 늘어진다. 그 둘 사이에서 피멍이 드는 건 정말 가난하면서도 기후변화로 인해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국가들이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를 350ppm으로 안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350’이라는 그룹이 있다. 지금 현재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는 378ppm이고, UN 회의장에서는 450ppm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로 되고 있다. 그런데 현재 UN의 목표보다 높은 350ppm을 지지하는 나라가 92개 국가나 된다. 군소도시국가연합(AOSIS)과 최빈국그룹(LDCs)에 속하는 80개국, 아르헨티나를 포함한 라틴아메리카 8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국가에 속하는 가나, 케냐, 베트남이 동참하고 있고, 최근 볼리비아가 서명을 하면서 모두 92개 국가가 되었다.

기후변화당사국 협약 국가가 192개국이니 거의 절반에 가까운 국가들이 보다 높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인 350ppm을 지지하고 있는데도, 이것은 논의 테이블 위에 올려지지도 않는다. 회의가 당사국간 갈등으로 인해 공전에 공전을 거듭하자 아프리카 국가들은 목요일과 금요일 회의에 대한 보이콧 가능성을 내비추기도 했다. 회의 보이콧은 협상력이 낮은 개도국 국가들이 꺼낼 수 있는 최대의 카드이기도 하다. 실제 보이콧은 진행되지 않았지만 이들이 지금 얼마나 답답해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지난 10일, 이보 더부르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총장은 현재 교토의정서 연장과 새로운 협약에 대한 논의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말은 이번 회의에서 구속력 있는 합의가 사실상 불가능하며, 당분간 교토의정서 체제를 유지시켜 가면서 새로운 협약에 대한 논의를 2~3년 더 진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숙제를 미루는 것이다. 그만큼 인류는 기후변화에 대응할 시간을 잃어버리게 된다.

코펜하겐에서 교토의정서를 뛰어넘는 새롭고도 강력한 협약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지구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이곳 현장에서 NGO들의 목소리도 양분된다. 교토의정서의 원칙을 지키자는 목소리도 강력하다. 그러나 그건 교토의정서의 원칙인 ‘공동의 차별화된 책임’, 즉 선진국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당위 안에 갇히는 주장이다. 현재의 교토의정서 체제로는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을 달성할 수 없다.

1997년 교토의정서에 합의했던 미국은 자국 산업의 경제적 피해를 이유로 의정서를 헌신짝처럼 버린다. 그리고 지금 미국이 교토의정서에 합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은 2020년까지 2005년 대비 17%를 감축한다는 방침이다. 교토의정서 수준의 약속을 다른 나라들이 반길 리가 없다.

이러나저러나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전 인류의 노력을 하향평준화하고 발목을 잡는 것은 또 미국이다. 부시 대통령의 잃어버린 10년, 오바마 대통령은 어떻게 설거지를 할까? 오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이곳 코펜하겐에서 회담을 연다고 한다. 과연 그 회담을 통해 COP15 회의는 역사적인 반전을 이뤄낼 수 있을까?

이제 5시간 뒤면 COP15 기후변화 정상회담이 시작된다.

다음 [코펜하겐은 지금] 글에서는 좀더 희망적인 소식을 전하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다.

글 : 이유진 (녹색연합 기후에너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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