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 기후회의, 범죄현장은 어떻게 처리되고 있을까.

2010.02.09 | 기후위기대응



코펜하겐에서 들려왔던 비보로 인해 ‘전 세계가 홀러코스트에 빠졌다’고 혹평했던 G77(개도국 모임)의 대표 루뭄바 디아핑의 울림이 아직 생생하다. 그린피스 사무총장 쿠미 나이두 역시 ‘코펜하겐 회의를 마친 각국의 지도자들이 범죄현장을 떠나고 있다’며 회의결과를 맹비난했다. 각 국은 코펜하겐을 떠났고, 범죄현장은 참혹했으며, 결과는 암담했다. 회의가 끝나고 약속했던 2010년 1월이 지난 지금, 쿠미 나이두의 말을 빌어본다면 범죄현장은 어떻게 처리되고 있을까.

작년 12월 열린 15차 기후변화당사국 총회는 기대와는 달리 큰 성과없이 회의 막판에 ‘코펜하겐 협정문(Copenhagen Accord)’을 도출해내면서 막을 내렸다. 코펜하겐 협정문은 지구 온도 2도 상승 이하로 억제 할 것, 선진국은 1월 31일까지 추가 감축목표치를 UN 사무국에 통보할 것, 기후변화 취약국을 위한 재정지원금으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00억 달러, 2020년까지 매년 1000억 달러를 마련할 것, 개도국은 2년 마다 자발적인 감축 계획(감축 목표가 아님)을 자국의 주권에 맞게 통보할 것 등이 결정되었다. 또한 미국을 포함한 BASIC(브라질, 남아공, 인도, 중국)국가에 의해서 제출된 코펜하겐 협정문을 나머지 기후변화 당사국들이 지지하는지의 여부 또한 통보해주기로 했다. 따라서 지난 1월은 기후변화 국제 정치의 판도속에서 매우 중요한 기간이었다.

선진국, 과거에 발표한 감축목표 그대로
결론부터 말하면, 1달이 지난 후 상황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각국은 이 협정문마저도 지지하지 않거나 조건부 수락을 하고 있어 여전히 각국의 의견차가 높다는 것이 재확인되었다. 선진국의 감축 발표 내용을 살펴보면 과거에 발표한 감축목표를 그대로 통보한 수준이고, 중국을 비롯한 주요 배출국들이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할 것을 전제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체 193개 당사국 중 87개국만이 자국의 감축계획 또는 합의문 지지의사를 UN 사무국에 제출했다. 그 중 선진국은 43개 국가 중에서 36개 국가만이 감축 목표치를 수량적으로 제시했고, 개도국은 150개 국가 중 23개 국가만이 자발적 감축 행동을 제출했다. 기후변화 대응 법이 상원에 계류 중인 미국은 과거에 발표했던 수준과 동일한 2005년 대비 2020년 17% 감축목표치를 제출했고, EU 역시 과거와 동일한 수준인 2020년까지 20% 감축을 제출했다. 부속서 1 당사국이면서 1월 31일까지 감축목표를 제출하지 않은 국가는 스위스를 비롯해 7개국이나 된다. 합의문 지지선언 국가가 87개에 그쳐 절반도 못 미치는 지지율이다.

코펜하겐 협정문, 폐기될 것인가?
예상대로, 지난 1달여간의 시간을 허락하여 추가로 감축 목표를 제출하기로 한 결정은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절반도 채우지 못한 지지율의 협정문을 가지고 역사적인 감축 목표치를 결정하기에는 협정문이 가지는 위상이 너무나 초라하다. 그러나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코펜하겐 협정문 자체가 폐기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코펜하겐 협정문은 그나마 갈 곳 잃은 국제사회가 ‘2도 상승 억제’라는 희미하지만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더듬더듬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마지막 등불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에게는 2도 상승 억제 목표를 가지고 각 국가가 어떻게 온실가스 감축량을 할당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남아있다. 한 가지 더 희망스러운 사실은 투발루가 기후변화 취약 국가군(V11)과 군서도시국가연합(AOSIS)의 지지를 얻어 제출한 ‘1.5도 상승 억제안’이 2015년에 중간 점검을 받기로 한 결정 등의 성과가 있기 때문에, 코펜하겐 협정문은 위태롭긴 하지만 세상을 앞으로 끌고 나가긴 할 것이다.  

머리위로 떨어지는 시한폭탄, 계속되는 ‘남탓하기’와 ‘눈치보기’ 로는 생존할 수 없다
남 탓만 하거나 눈치만보는 각국의 지도자나 협상 대표들을 우리는 언제까지 믿을 수 있을까. 기후변화에 책임을 가지는 나라들이 오히려 국익이라는 방어막으로 자신을 합리화하고, 협상 결과가 엉망이 될수록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로 자축하고 있다. 중국이 그랬고, 미국이 그랬고, 한국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 모두는 지구위에 살고 있는 운명공동체라는 점이다. ‘나만 잘 살면 된다’ 라는 정신은 운명공동체를 파멸로 이끌 뿐이다.



UN회의장을 벗어난 거리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UN의 논의체계 자체를 거부하거나, 다자간 협상이 아닌 G20과 같은 주요 국가 회의 체계에서 기후변화 의제를 설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어렵고 굵직굵직한 결정을 앞둔 상황에서 당분간은 복잡한 상황들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여전히 염두해 두어야 할것은 전 세계 시민운동 진영이다.

코펜하겐 총회 기간, 협상가들에게 책임있는 행동을 요구했던 수많은 환경운동가들은 그해 크리스마스를 감옥에서 보냈다. 이들은 각국의 협상가들을 압박함과 동시에 전 세계 시민들과 함께 기후 변화에 관련한 공동행동을 이끌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보고,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 연설에서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진정한 기후영웅들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정치인이나 대통령이 아니다. 진정한 기후영웅들은 지금 거리에 있거나 감옥에 있는 사람들이다. 또 이 회의를 바라보며 걱정하며 행동하는 전 세계에 양심있는 시민들이다.’  

자,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앞으로 ‘지구 호’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침몰 할 것인가. 침몰이 예상되는 갈 곳 잃은 ‘지구 호’는 어떻게 하면, 무사히 항구에 정착하여 새로운 녹색세상의 길에 안착할 것인가.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입니다.

글 : 손형진 (녹색연합 기후에너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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