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아, 사랑한다. 회의장을 떠나진 말아줘

2010.12.05 | 기후위기대응

– 멕시코 칸쿤에서 기후변화당사국 총회 현장을 말하다 ①
지난 11월 29일부터 12월 10일까지 멕시코 칸쿤에서 제 16차 기후변화당사국 총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제 15차 기후변화 당사국총회의 실패는 교토의정서를 대신할 강력한 온실가스 감축 합의안을 기대했었던 많은 이들을 실망시켰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는 기후변화 방지를 위해서 또다시 한 걸음 내 딛으려 합니다. 녹색연합은 12월 3일부터 멕시코 칸쿤에 활동가 2인을 파견하여 현지 소식을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더불어 기후변화 협상장의 쟁점과 이슈, 국제 NGO들의 활동, 전 세계 민중들의 연대와 희망을 연재기사로 작성하여 보도합니다.

칸쿤으로 가는 여정, 기후변화를 해결할 여정이 될까  
멕시코 칸쿤은 그야말로 국제적인 휴양도시다. 칸쿤은 캐리비안해의 아름다운 바다와 눈부신 햇살, 그리고 경이로운 해안선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멕시코 현지에서 개최되는 16차 기후변화 당사국총회의 현장을 전하기 위해서, 12월 3일 오전 11시에 서울에서 일본 나리타 공항으로, 그리고 다시 미국 휴스턴 공항을 거쳐서 멕시코 칸쿤으로 들어왔다. 무려 22시간이 걸린 대장정이었다. 중미의 덥고 습한 공기를 예상했지만 의외로 저녁 바람은 서늘하고 시원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멕시코 풍의 흥겨운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그 반대편에 16차 기후변화당사국 총회를 알리는 ‘COP 16/ CMP 6 MEXICO 2010’라고 써있는 소박한 걸개가 보였다.


▲ 멕시코 전통가요를 부르는 가수들 흥겨운 노래로 회의 참가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 기후변화당사국총회를 알리는 플랭카드 멕시코 정부에서 내 건 홍보용 플랭카드

공항을 빠져나와 숙소까지 40분, 상념에 빠지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길 내내 양 쪽으로 조명이 눈부신 초대형 리조트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호텔들이 줄지어 끊임없이 이어져있었다. 호텔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온실가스를 줄이려면, 저 불을 다 꺼야 될텐데..’ ‘저 불들을 언제까지 지금처럼 켤수 있을까’라는 상념에 빠졌다. 1층부터 15층까지 건물 안쪽과 외관의 불이 모두 켜져있는 호텔들. ‘사람들이 저 불들을 끄는 것을 포기할 수 있을까? 아니면 결국 자연의 힘에 의해서 강제로 포기하게 될까?’ 그런 고민에 잠긴 사이 나를 제외한 모든 팀이 하나둘 씩 내려 모두 그런 휘황찬란한 호텔로 웃으면서 들어갔다.

회의 초반, 캐나다 모든 이들의 주적이 되다
숙소에서 정비를 하고 다음날 사이드 이벤트 장소가 열리는 칸쿤메세(Cancun Messe)에서 회의장 소식을 들었다. 회의가 시작된 첫날부터 캐나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캐나다는 2010년 10월, 하원에서 통과된 Bill C-311(Climate Change Accountability Act)법안을 부결시켰다. 부결된 법안에는 2020년까지 1990년 기준으로 2.5% 상승이라는 기존의 온실가스 중장기 계획을 대폭 수정해 동기간 25% 감축이라는 혁신적인 목표치가 담겨있었다. 또한 기후과학에 대한 예산을 대폭 수정하고, 북극의 과학 탐사선을 석유 탐사선으로 대여해준 것이 드러나기도 하면서 비난을 받고 있다. 캐나다는 언제나 기후변화 협상을 방해하는 주요한 악당 역할을 자처하고 있지만 올해는 시작과 동시에 NGO 들의 몰매를 맞는 분위기다. 그러나 여전히 캐나다 정부는 엉덩이가 많이 무거워 보인다. 일본이 회의 초반에 ‘현재의 교토의정서 체제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캐나다이기 때문이다.


▲ 캐나다, NGO들이 뽑은 협상장 최악의 나라 전세계 500여개 협력단체인 기후행동네트워크(CAN)은 캐나다의 불실성한 태도를 문제삼았다

일본, 교토의정서 연장을 거부하다? 제발, 그러진 말자
1997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3차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서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 동안 38개 국가가 1990년대비 평균 5.2%의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는 역사적인 ‘교토의정서’가 만들어졌다. 감축량만을 놓고 봤을 때는 너무 적은 수치이지만 각 나라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 실효성 있고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합의했다는 점에서 매우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이번 회의에서도 역시 교토의정서가 만료된 이후의 ‘교토 이후체제(post-kyoto)’에 대해서 어떻게 논의될지가 쟁점이다. 교토의정서 이후의 감축 방안에 대해서는 작년 15차 코펜하겐 회의가 실패함에 따라 어떠한 안도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의 교토의정서는 선진국과 개도국의 감축 의무를 개별적으로 분리시켜놓고 있다. 교토의정서에 의하면 선진국으로 분류된 38개 국가들은 의무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며, 개도국은 의무적으로 하지 않지만 자발적인 감축 노력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개도국의 경우, 교토의정서 체제를 유지하고 연장하는 것을 주장하고 있고, 선진국은 교토의정서를 폐기하거나 만료시키고 개도국이 감축 의무를 질 수 있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 것을 주장하고 있다. 선진국과 개도국 간에 줄다리기같은 이 지리한 싸움은 몇 년동안 계속 되고 있다.

미쳐 몰랐다. 이렇게 강하게 대놓고 주장할줄
그러나 미쳐 몰랐다. 교토의정서의 주최국인 일본에서 회의 시작부터 이렇게 대놓고 강하게 주장하고 나올줄은. 회의 둘째날, 교토의정서가 만들어진 일본에서 사실상 현재의 교토의정서 체제를 거부한다는 주장이 나와 회의장이 한바탕 들썩였다. 이 주장은 올해 10월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또 다른 국제적인 환경 회의인 ‘UN 생물다양성협약’이 채택된지 미처 2달이 되기도 전에 나온 주장이라 충격은 더 크다. 충격과 비난을 이끌어낸 일본 정부의 협상 대표자의 문제의 발언은 ‘일본은 더 이상 교토의정서 체제 아래 어떠한 감축 목표도 기입하지는 않을 것’ 이다. 이는 사실상 교토의정서의 제 2차 공약 기간 연장 자체의 거부를 의미한다. 교토의정서는 1차 공약기간을 2007년~2012년으로, 2차 공약기간을 2013년 이후로 설정해놓고 있다. 기존에 교토의정서 유지 안에 대해서 반대의 목소리를 낸 일본이었지만, 회의과 동시에 강도높게 얘기한 것으로 인해 다른 당사국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상황이다. 캐나다와 러시아를 비롯한 일부 선진국들은 일본의 안에 동조하면서 같이 욕을 먹고 있다.

일본이 교토의정서 체제를 거부한 속내는 다음과 같다. 현재의 교토의정서 체제는 기후변화에 대해서 모든 나라가 책임을 가지지만 그 역사성과 대응 노력은 상이해야 한다는 ‘공동의 차별화된 노력’을 합의하고 있다. 이를 전문가들은 소위 ‘투트랙 시스템’으로 구분한다. 하나는 선진국들의 구속력있는 감축 노력인 ‘교토의정서 트랙(KP)’, 또 다른 하나는 전지구적인 장기행동 논의인 ‘장기 기후변화협약 트랙(LCA)’이다. 따라서 선진국은 자신들만 감축 의무를 지는 것에 반대하고 하나의 트랙으로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개도국은 기존의 교토의정서 체제를 유지하면서 선진국이 더 많은 책임을 지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선진국으로 분류되어있기 때문에, 현재의 교토의정서 체제를 거부하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다. 일본이 현재 강하게 주장하고 있고, 캐나다와 러시아가 동조하면서 교토의정서 체제 자체를 흔들어놓고 있어 협의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교토의정서 연장 이외의 대안을 논의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결국 일본이 양보하는 모양새를 보이며 교토의정서 연장안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조심스레 점쳐본다.

선진국인 일본이 개도국 책임을 전제로 의미있는 감축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와중에 국제 청년 모임인 유스(Youth -international)에서 ‘일본아, 사랑한다, 힘들었지? 안아줄께, 그러니 회의장은 떠나지 말아줘’ 라는 의미의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 일본아, 힘들었지?사랑한다. 그리니 교토의정서(KP)를 버리진 말아줘

산유국들과 노르웨이, 탄소포집저장기술(CCS)에 올인하나?
또한 탄소포집저장기술(CCS:Carbon Capture and Storage)을 교토의정서 내의 청정개발체제(CDM: 선진국이 개도국의 감축사업에 투자하여 감축한 실적을 자국의 실적으로 인정받는 제도)에 추가하는 문제가 초반 쟁점으로 떠올랐다. 탄소포집저장기술(CCS)은 배출된 탄소를 포집하여 땅 속이나 개발이 끝난 텅빈 유전 안에 저장해놓음으로써 대기 중으로 배출을 줄이는 신기술이다. 그러나 폭발사고와 유출사고를 대비하기에는 아직까지 현재 기술로 어렵다는 의견과 함께 배출원 자체를 줄이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기후변화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아니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서 탄소포집저장기술(CCS)는 현재 교토의정서 체제 안에서는 청정개발체제(CDM)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회의 초반 사우디 아라비아, 노르웨이, 쿠웨이트. UAE, 이집트, 이라크, 콰타르, 요르단 등의 유전국들을 중심으로 탄소포집저장기술(CCS)의 인정에 대해서 강력히 주장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보통 기술적으로 포집한 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 유력한 장소가 바로 이미 개발해버린 텅빈 유전이기 때문에 산유국들은 노르웨이와 함께 연대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2013년 교토의정서 제2 차 공약기간에 탄소포집저장기술(CCS)을 공식적으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기술로는 여전히 불가능하다는 여론과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반대 입장들로 인하여 논쟁은 진행 중이다. 회의는 여전히 계속되고 쟁점들은 점점 많아질 것이다.

남은 회의기간, 남은 쟁점들을 둘러싸고 향후결과가 주목된다.

글 : 손형진 (녹색연합 기후에너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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