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를 마주한 21대 총선, 왜 중요한가

2020.04.02 | 기후위기대응

2020년 1월 1일, 호주의 주요 일간지 1면에 실린 사진이 전 세계로 전해졌다. 수 개월간 지속한 호주 산불로 인해 빅토리아주 말라쿠타 지역의 한 가족이 탈출하는 장면이었다. 붉은색으로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마스크를 쓴 11살 어린이가 작은 보트의 조종간을 잡고 있었다.

이 사진을 실은 한 신문의 헤드라인은 “Apocalypse Now(지금 일어난 종말)”였다. 호주 산불의 광경은 가히 지구 종말을 그린 영화 속 한 장면과 흡사했다. 태양마저 가린 붉은색 하늘 아래 선착장에서 탈출을 기다리는 주민들, 철조망에 걸려 불타 죽은 코알라, 산불에 이은 홍수와 거대한 모래폭풍, 호주 산불은 남한 면적에 해당하는 지역을 불태웠고, 29명 주민과 10억 마리 야생동물의 목숨을 앗아갔다.

호주 산불만이 아니다. 전 세계로 확산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판데믹(세계 대유행)에 이르렀고, 전 세계 확진자 수가 100만 명에 육박하는 지경이다(4월2일 기준) 중국, 한국, 일본, 그리고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유럽과 미국 등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고, 거리는 텅 비어 가고 있다.

재난문자와 마스크는 일상이 되었고, 전 세계 사회경제가 뒤흔들리고 있다. 말 그대로 비상재난 상황이다. 한편 연초 미국의 핵과학자 단체는 ‘운명의 날 시계’를 자정 100초 전으로 조정했다. 이것은 1947년 발표 이후 자정에 가장 가깝게 접근한 것으로, 그 원인은 핵무기 위험과 함께 기후변화였다. 이렇게 2020년은 전 지구적인 재난의 위기감과 함께 출발했다.

재난과 위기 앞에 무책임한 정치

인류사회에서 위기는 크든 작든 항상 있었다. 위기와 재난의 발생 자체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것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다. 특히 정책을 책임지는 정치인들의 판단과 결정이 중요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를 보자. 중국 전역에서 급속하게 확산하면서, 중국의 지식인들은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판했다. 초기 대응 실패의 원인이 시민사회와 언론의 자유를 억압한 데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호주 산불과 관련해서는, 스콧 모리슨 총리가 산불이 한창이던 작년 말 가족들과 함께 하와이로 휴가를 떠나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이런 재난은 현재 급속도로 진행 중인 기후변화를 고려할 때 그 심각성이 더 크다. 호주 산불은 기후변화로 인한 극심한 가뭄과 폭염이 원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발병은 기후변화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기후변화로 인한 온도 상승이 감염병의 발병과 전파에 유리한 조건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에서도 보건을 위협하는 중대한 요인의 하나로 기후변화를 꼽았다.

그렇다면 인류가 맞닥뜨린 기후변화 위기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어떤가.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그를 비롯한 많은 미국 공화당 정치인은 기후변화가 인간의 화석연료 사용 때문이라는 과학적 사실을 부정한다. 자연적 변동의 일부에 불과한데, 일부 음모론자들이 과장했다고 주장한다. 2019년 10월 트럼프 행정부는 유엔 파리기후협정 탈퇴의 공식절차를 시작한 바 있다.

둘째, 기후변화를 외면하는 것이다. 모리슨 총리는 호주 산불과 기후변화의 연관성을 줄곧 부정하다가 지지율이 급락하고 여론이 나빠진 뒤에야 그 관련성을 일부 인정했다. 호주는 세계 1위의 석탄 수출국으로서 기후악당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모리슨 총리는 기후변화의 주범인 석탄산업의 적극적인 옹호자다. 더군다나 야당인 노동당의 당수조차도 산불이 퍼져가던 2019년 말 석탄 수출 산업의 확고한 지지를 표명하려고 광산을 방문한 바 있다. 호주는 여야 모두 기후변화의 주범인 석탄산업의 강력한 옹호자인 셈이다. 세계적인 문학상 맨부커상 수상자인 작가 리처드 플래너건이 “호주는 지금 기후자살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셋째, 기후위기에 좀 더 적극적인 대응을 하는 경우다. 2019년 말, 호주 옆에 있는 뉴질랜드는 2050년까지 탄소배출을 제로로 하겠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영국도 2050년 온실가스 순제로 배출을 목표로 기존의 기후변화법을 개정했고, 노르웨이, 스웨덴, 프랑스도 관련 법안을 마련했다. 독일은 2038년까지 석탄화력을 끝내기 위해 52조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물론 이런 평가는 다른 나라들과의 상대적인 평가일 뿐이다. 역사적 배출책임까지 고려할 때, 각 나라의 시민사회는 현재의 정책도 부족하다고 비판하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 기후정치의 현실

그렇다면 한국의 정치는 어떠한가? 지난 3월, 21대 총선을 앞두고 시민사회는 한국의 주요 정당에게 기후관련 정책질의를 한 바 있다. 시민사회의 주요 요구는 국회 기후비상결의안 선포, 기후위기대응법 제정, 특별위원회 설치, 탈탄소사회전환을 위한 기반 마련 등이었다.

답변결과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국회 원내 9개 정당 중 답변을 보내온 정당은 5개 정당에 불과했다. 특히 국회 내 다수를 차지하는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답변에서는 실질적인 기후위기 대응책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기후위기대응에 가장 진전된 정책을 제시한 정당은 정의당, 녹색당과 같은 소수정당이었다.

현재 한국 정부의 기후정책 수준도 국제기준에 한참이나 뒤떨어져 있다. 2019년 말 국제 민간단체에서 평가한 전 세계 주요 국가의 기후변화대응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58위였다. 한국보다 순위가 낮은 국가는 대만,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세 나라에 불과했다. 2000년 대비 2017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비교하면, 영국이 35퍼센트, 미국이 11퍼센트, 일본이 6퍼센트 감소한 데 비해, 한국은 무려 47퍼센트나 증가했다.

이제 4월이면 2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진행된다. 한국의 정당 중에서는, 미국의 트럼프와 같이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은 찾기 힘들다. 하지만 국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정당들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외면한 채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 특히 눈여겨볼 것은 ‘탈원전 정책의 폐기’를 내세운 미래통합당(구 자유한국당)의 제1호 총선공약이다.

그들은 탈원전정책이 폐기되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로 ‘탈탄소’, 곧 기후변화의 대응을 언급한다. 사실 미래통합당의 주장이 기후변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 나왔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공격하기 위한 구실로 기후변화를 이용한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하지만 정부 여당 내에서도 노후 석탄발전소 폐쇄 대신 핵발전소를 추가로 짓자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기도 한다.

과연 핵발전이 기후변화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코 그렇지 못하다. 일각에서는 핵에너지가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핵발전을 위해서는 거대한 발전소를 건설하고 운영해야 하며, 핵연료를 마련하기 위해 우라늄을 채굴하고 운반하여 농축해야 한다. 핵폐기물을 처리해야 하고, 최종적으로 수명이 다한 핵반응로를 폐쇄해야 한다. 그 모든 과정에서 소모될 막대한 화석 연료를 고려하면 핵에너지는 결코 청정에너지가 아니다.”1)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 핵발전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의 성찰”(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3), 97쪽.

또한 기후위기는 매우 시급히 대응해야 하는 문제임에 비해 핵발전소의 건설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향후 15년 동안 매주 하나씩 신규 원자로를 지어도 그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 감소량은 9퍼센트뿐이다.1) 수십만 년간 방사능을 방출할 고준위 핵폐기물까지 고려한다면, 핵발전은 엄청난 위험과 부담을 미래 세대에 떠넘기는 것이다.

온실가스나 방사능은 모두 인류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종의 쓰레기다. 결국 핵발전은 하나의 위기를 막기 위해 다른 위기를 초래하는 것이고, 방사능과 핵사고라는 위험을 특정 지역과 미래세대에 강요한다는 점에서, 기후정의의 관점에서도 크게 잘못된 방법이다.

다른 길, 그린뉴딜의 시사점

그렇다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올바른 해법은 무엇인가? 이미 몇몇 나라에서는 다른 길을 찾아가고 있다. 이른바 ‘그린뉴딜(Green New Deal, 또는 그린 딜)’이 그것이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지구 온도상승을 1.5도 아래로 제한하려면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5퍼센트 줄이고, 2050년까지는 순배출제로가 되어야 한다.

석탄이나 석유 같은 화석연료로 굴러가는 현재의 사회 경제 시스템이 빠른 시간 안에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2017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선라이즈 운동(Sunrise Movement)은 민주당에게 그린뉴딜 정책을 채택하도록 촉구했다. 그린뉴딜은 온실가스 배출제로, 사회불평등해소,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대규모의 정부 예산과 인력을 투여해서 경제와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자는 전략이다.

과거 루스벨트 정부가 대공황에서 벗어나려고 실시했던 ‘뉴딜’정책을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버전으 로 만든 것이다. 미국 민주당이 2019년 2월 국회에 제출한 ‘그린뉴딜 결의안’에는 재생에너지 100퍼센트 전환, 친환경 교통수단 확충, 항공 대신 초고속 열차망 확대, 에너지 효율 건물 개선,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건강한 식량 시스템, 생태계 복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2) 미국 대통령 후보를 선정하기 위한 민주당 내 경선이 진행 중인데, 2월 아이오와주의 첫 경선에서 박빙의 1, 2위를 차지한 부티지지와 샌더스 후보 모두 그린뉴딜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웠다.

유럽연랍EU는 ‘그린딜’이라는 이름으로 유사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019년 12월, 유럽연합 회원국 정상들(폴란드 제외)은 온실가스 배출량 제로를 목표로 하는 그린딜Green Deal 계획에 합의했다. 이 계획에는 에너지의 탈탄소화, 친환경 수송 확대, 건물의 에너지 사용 저감, 국경 탄소세 도입 등의 내용을 담고 있고, 농축산 분야에서 환경친화적이고 순환경제에 기반한 정책을 추진할 예정이다.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산업구조로 전환하면서,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정의로운 전환’ 과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EU는 그린딜을 추진하기 위해서 총 1조 유로 이상의 막대한 자금을 투여할 계획을 세웠다. 특히 유럽의 그린딜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지원에서 석탄연료와 함께 핵발전도 배제하기로 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핵발전을 기후변화에 대한 해법으로 보고 있지 않음을 명확히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올해 총선을 앞두고 몇몇 정당들이 그린뉴딜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그린뉴딜 정책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한국에서는 사회적 논의의 시작단계에 있다. 또한 그린뉴딜이 여전히 ‘경제성장’ 담론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기후위기 극복을 사회경제정책의 최우선에 놓고, 전체 사회 시스템을 빠른 시간 내에 변화시키면서, 사회 불평등 해소를 목표로 한다는 점, 노동자와 시민이 체감하고 동의할 수 있는 변화의 기제를 포함하면서 단기간에 막대한 재정을 투여해서 전환을 이뤄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그린뉴딜을 기후위기 해법의 하나로 주목할 만하다.

올해는 한국에 새로운 21대 국회가 시작되는 해다. 많은 시민은 당리당략과 기득권 유지를 위한 정쟁이 아니라, 정치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기후위기라는 비상상황 앞에서 그린뉴딜을 비롯해서 어떤 정책이 최선의 해법일지 토론하는 국회의 모습을 원한다.

기후위기 시대, 정치변화의 중요성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재난으로부터 회피만이 아니라, 망가져 버린 사회에서 더 나은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기도 하다. 기후위기는 화석연료에 중독된 채 경제성장과 소비확대를 유일한 목표로 유지되는 사회경제체제의 위기다. 무한성장의 신화는 환상에 불과하고 불평등을 가중할 뿐이다. 따라서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사회의 목표를 경제성장이 아닌 보다 정의롭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자연보호와 경제적 수익의 균형, 또는 환경 보존과 발전의 균형을 맞추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적당히 타협하게 되면 단지 불가피한 재앙이 조금 늦추어질 뿐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발전의 개념을 새로 정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지속 가능한 성장에 대한 논의는 흔히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자기 합리화를 하려는 수단이 되고 맙니다. 이는 생태에 대한 담론의 가치를 금융과 기술 관료주의의 논리에 흡수시키고, 기업의 사회와 환경에 대한 책임은 흔히 일련의 마케팅과 이미지 관리의 활동으로 축소됩니다. “

교황 프란치스코 ‘찬미받으소서’, 194항

“환경위기와 사회위기라는 별도의 두 위기가 아니라, 사회적인 동시에 환경적인 하나의 복합적인 위기에 당면한 것입니다.”

교황 프란치스코 ‘찬미받으소서’, 139항

또한 기후위기는 정치위기다. 역사상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 미국의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권리는 오직 미국 시민권자에게만 있다. 또한 가장 많은 기후변화의 피해를 보게 될 어린이와 청소년 같은 미래세대는 정작 투표권이 없다. 거대 정당의 정파적 이익 앞에서 당장 표가 되지 않는 정책은 관심 밖이다. 화석연료 산업과 결탁한 정치체제가 바로 지금의 기후위기를 낳았다.

그래서 정치가 변해야 한다. 정치는 한 사회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GDP 곡선의 상승보다 국민의 생존과 안전이 중요하다는 점을 정치를 통해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가야 한다. 더군다나 최근의 코로나19사태는 현재와 같은 사회경제시스템이 이대로 유지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위기는 기후위기의 예고일지도 모른다. 기후위기의 판데믹이 닥친다면, 마스크 부족정도가 아니라 식량부족과 물부족이라는 훨씬 더 심각한 재난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치변화로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정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시민의 행동이다. 정치는 정치인들만의 것이 아니라 주권자이자 유권자인 시민들의 것이다. 아래로부터 시민들의 압력이 있을 때만 정치인, 정당, 국회는 변한다. 국민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여 줘야 한다. 정당과 지역의 후보에게 목소리를 전해야 한다. 유권자들이 어떤 정치를 원하는지 전해야 한다. 이번 총선의 결과는, 코로나위기를 너머 기후위기의 갈림길에 서 있는 한국사회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1) 김현우, ‘기후침묵과 원진침묵 모두를 깨야’, 에정칼럼(www.ecpi.or.kr)(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2019).

2) 이유진, ‘그린뉴딜 시사점과 한국사회 적용'(국토연구원, 2019) 참조.

글: 황인철 기후에너지팀장
※이 글은 <가톨릭평론> 3-4월호 기고글을 토대로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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