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평화를 원한다면 기후위기에 맞서야한다 – 기후위기와 군사주의

2020.04.29 | 기후위기대응

4월 22일부터 4월 29일까지 한국에서 2020 세계군축행동의 날(GDAMS) 캠페인이 진행된다. 세계군축행동의 날 캠페인은 매년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세계 군사비 지출 보고서 발표에 맞춰 군사비를 줄이고 평화를 선택할 것을 각국 정부에 촉구하는 국제캠페인이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심각한 경제위기와 인간 안보에 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비를 줄여 공공의료 확대, 사회안전망 구축,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한 비용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하는 연속 기고를 진행한다. (*아래 글은 오마이뉴스 연속 기고에 실린 기사입니다.)

“바이러스의 분노는 전쟁의 어리석음을 보여줍니다. 오늘 저는 세계 곳곳에서 즉각적인 글로벌 휴전을 요구합니다. 이제 무력 충돌을 중단하고, 우리 삶의 진정한 싸움에 집중할 때입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

지난 3월24일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은 코로나라는 공동의 위협과 맞서 싸우기 위해 모든 지역에서 전쟁을 멈추자는 제안을 하였다. 가톨릭의 교종 프란치스코도 뜻을 같이하며 즉각적인 전쟁 중지와 함께 “갈등은 전쟁을 통해선 해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합당한 제안이다. 전쟁은 의료시설을 파괴하고 의료진의 목숨을 위협한다. 감염병 예방과 대처는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다. 전쟁수행에 많은 자원을 낭비하는 사회는 보건을 위한 인프라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막대한 군비를 사용하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 희생자들이 발생하는 상황은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의 보건 시스템이 얼마나 부실한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냈다. 군사 안보가 국민 안전을 희생시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코로나 만이 아니라 그에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 큰 위협이 다가오고 있다. 바로 기후변화다.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변화는 인류의 생존과 지구문명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과학자들은 지구온도상승 1.5도를 넘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중요한 것은 코로나와 마찬가지로 기후변화 앞에서도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추기 위한 선택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국제적인 갈등과 분쟁, 그리고 전쟁과 군사활동이 기후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어떤 점에서 그럴까.

2003년 아프리카 수단 다르푸르에서 대규모 학살과 분쟁이 일어났다. 6년 동안 약 30만명이 사망하고 250만명의 난민을 낳은 ‘인종청소’가 자행되었다. 이 분쟁은 아랍계와 아프리카계 사이의 인종갈등의 형태를 띠었는데, 그 촉발은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에 있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인도양의 수온 상승이 강수량의 급속한 감소를 가져왔고, 목축과 농사에 필요한 땅이 사막으로 변하면서 토지와 수자원을 둘러싼 갈등이 다르푸르의 비극을 불러온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의 국제전략연구소(CSIS)는 다푸르 사태를 최초의 ‘기후전쟁’으로 꼽은 바 있다. 하지만 다푸르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기후변화는 기상이변, 폭염과 가뭄, 물부족과 식량난, 해수면 상승을 불러온다. 살 곳을 잃은 이들은 난민이 되어 고향을 떠나게 되고, 자원의 배분을 둘러싼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게 된다. 미국 스탠퍼드대 캐서린 매치 연구원팀은 20세기의 무력충둘 중 최대 20%가 기후변화와 그에 따른 극한기후에 의해 일어났고, 21세기 들어 그 영향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는 연구를 발표한바 있다. 기후변화가 국제적인 분쟁과 갈등을 낳고 있는 것이다.

미국 등의 국가는 이미 기후변화를 중요한 안보 위협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2014년 <기후변화 적응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기후변화가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닌 눈앞에 닥친 국가안보 위협”으로 규정하였고. 2019년 호주국립기후복원센터에서 나온 보고서는 현재 과학계의 전망이 지나치게 안이하다면서 “전시 수준의 비상 자원 동원체계를 수립”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안보의 관점에서 기후변화를 바라보는 것은 군사력 강화의 길을 선택할 우려가 있다.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국경 지역 경계를 강화하여 기후변화로 인한 난민의 이주를 막을 방법을 찾고 있다. 하지만 이런 군사적 방법은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국제적인 갈등을 없애기 위해서는 그 근본원인을 제거하는 것, 곧 기후변화 자체에 대응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군사적 방법이 위험한 것은, 군대 자체가 바로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미국 브라운대 왓슨 연구소에서 2019년 발표한 <전쟁 프로젝트의 비용>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7년까지 미군은 단일 조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를 소비하고,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한 해 배출한 온실가스가 5,900만톤으로 스웨덴이나 덴마크를 앞지르고 있다. 한편 ‘국제적 책임을 다하는 영국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영국 국방부의 경우에는 2016-17년 동안 320만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했고, 이는 아이슬란드의 탄소배출량보다 높다. 결국 군사활동은 기후변화의 원인이자 주범인 셈이다. 따라서 기후변화로 인한 분쟁을 막기 위해 군사적인 수단을 강화한다는 것은, 막대한 화석연료의 사용을 통해 결국 기후변화의 악화를 가져올 뿐이다.

한편 군사분야의 문제는 세계 각국의 군사부문이 얼마나 탄소를 배출하는지가, 안보상의 이유로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1997년 발효되었던 교토의정서 체제에서는 군사활동의 배출량은 자동면제 대상이었다. 2015년 파리협정에서는 군사분야가 자동면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군사부문 배출량을 감축할 의무도 명시되지 않았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한국의 온실가스 국가배출량 통계에 군사분야의 배출량을 확인하기는 불가능하다. 군사분야 배출량이 정확히 포함되어 있는지도 불확실하다. 또한 공공부문 온실가스 목표관리제도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군사분야를 제외하고 있다. 배출량 통계조차 없다면, 배출을 줄이려는 노력도 없다는 의미다. 결국 군사부문은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대응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하지만 기후변화 대응은 사회 모든 분야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발전, 산업, 수송 등 각 분야가 가능한 빨리 가능한 많은 양의 감축이 이뤄져야 한다. 군사부문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더군다나 한국은 탄소배출 세계 7위, 군비지출 세계 10위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군사부문의 또 다른 문제점은, 바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사회적 자원을 빼앗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많은 공공재원이 투여되어야 한다. 화석연료를 대신하는 재생에너지 확충을 비롯해서, 산업전환 과정에서 노동자와 지역민을 지원하는 것, 산불, 태풍, 폭염과 같은 기후재난으로부터 보호책을 마련하는 것 등 사회시스템의 전환에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군사비에 비해 기후대응 예산은 턱없이 적다. 2016년 전 세계의 기후재정은 전 세계 군사비의 12/1에 불과하다. 미국의 정책학연구소(Institute for Policy Studies)의 <전투 vs 기후>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미국의 기후예산이 210억달러인데 비해 국방예산은 무려 5880억달러에 달했다. 20배가 넘는 차이다. 한국은 어떨까? 2019년 기준 한국의 국방예산은 46.7조원이었으나, 환경부의 기후변화대응 예산은 792억원에 그쳤다. 국토부의 128억원, 농림축산식품부의 242억원을 다 합쳐도 1,162억원에 불과하다. 국방예산의 1/400에 불과하다. 기후위기의 시급성에 비춰볼 때, 무책임, 무대응에 가까울 정도의 예산편성이다.

사실 현재의 기후위기를 초래한 화석연료 중독의 경제체제는 애초부터 군사력에 크게 기대고 있다. 산업화 이후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석탄,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 없이는 유지가 불가능한 시스템이다. 20세기 이후 많은 전쟁이 석유라는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벌어진 것이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이 대표적인 예다. 중동이 화약고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화석연료를 손에 넣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그 전쟁수행을 위해 더 많은 석유를 소비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또 전쟁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다시 기후변화를 가속화하게 된다.기후위기를 유발한 현재의 경제시스템, 지구자원의 착취에 기반한 문명은 군대의 도움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결국 군사주의에 대항하는 평화운동과 지구온난화에 맞선 기후운동은 함께 만나야 한다. 군사주의는 기후변화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원인이다.

유엔 사무총장의 요청은 코로나 상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기후위기라는 공동의 위협과 싸우기 위해, 지금 전 세계는 군비를 줄이고,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춰야 한다. 기후변화로부터 안전한 세상과 전쟁 없이 평화로운 세상은 함께 가야 한다. 평화를 지키는 것이 곧 기후위기를 막는 길이며, 기후위기 대응이 평화를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글: 황인철 (기후에너지팀장)

※참고자료
[자료] IPB United States and European military’s impact on climate change
[자료] Brown University / Pentagon Fuel Use, Climate change, and the Costs of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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