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의 해법 ‘퍼머컬처’

2020.09.09 | 기후위기대응

지속가능한 삶, 퍼머컬처 (Permerculture)

지구에서는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사고 자체가 사실은 터무니없는 말이다. 매년 더 성장하거나 더 많은 소비를 한다면 에너지정점은 당연히 오고야 말 것이다. 아직 채굴하지 않은 셰일유와 오일샌드와 석탄 매장량이 막대할지 모르지만 전세계 화석연료 매장량의 4분의 1만 태워도 기후재앙이 닥치게 된다. 이미 값싼 에너지의 시대는 지났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많은 굴지의 정유회사들이 줄도산했고 EU 등을 비롯해서 여러 국가가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고 탄소세를 부과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화석연료의 시대는 저물었다. 그런데도 성장에 매달리는 인간들을 볼 때면 인류가 자초한 재앙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성장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문화라면 어떤가? 기후위기 시대에는 인간 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재구성이 필요하다. 가짜 만족과 가짜 욕망에 길들여진 인류는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수탈하여 짧은 행복을 맛보았다. 그러나 이제 인간의 잘못된 욕망으로 지구에서 인류가 멸종될 위기에 처했고 그 욕망을 반성하고 인류는 새로운 문명을 상상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욕망을 새롭게 재구성해야 하는 일이 남았다.

퍼머컬처(Permaculture)는 지속가능한 문화라는 Permanent 와 agriculture의 합성어이다. 퍼머컬처는 지속가능한 농업, 혹은 영속적인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가 최초로 만든 문화(culture)가 바로 농업(agriculture)이기 때문이다. 퍼머컬처는 단순히 농업생산성에 국한된 개념은 아니다. 퍼머컬처는 생태원칙들에 기반을 둔 설계체계로서 영구적이고 지속가능한 문화를 실행하는 데 필요한 틀을 제공해 준다. 퍼머컬처는 의존적인 소비자에서 책임감 있는 생산자로 변모하자는 말이다. 1970년대 중반, 빌 몰리슨(Bill Morison)과 데이드 홀그램(David Holmgren)이 퍼머컬처라는 방법을 제시했던 시기에는 오일쇼크와 베트남전쟁이 인류문명의 존립과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와 성찰이 담겨있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가두는 탄소농법

과거 여러 사회의 파국의 유례에서도 보여지듯이 자연을 무차별한 파괴한 문명은 결국 파국을 맞이했다. 메소포타미아,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부터 마야문명, 이스터 문명에 이르기까지 그 예는 무수히 많다.

농업에서 생산력 증대를 위해 비료를 생산하거나 농기계를 작동시키는데 엄청난 화석연료를 사용해 왔다. 기계화 농업이 시작된 후 우리는 본디 땅이 가지고 있는 토양 유기물의 40%를 잃어버렸다. 산업혁명이 후 대기 중에 더해진 탄소의 3분의 1이 경운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세계가 퍼머컬처를 통해 농사짓는다면 토양탄소를 매년 0.5%씩 증가시킬 수 있다. 이는 전세계 탄소 배출의 1/3만큼을 상쇄할 수 있는 양이다. 또한 지금 자동차가 배출하는 탄소의 절반을 충분히 상쇄시킬 수 있다.

퍼머컬처는 기후위기의 해법으로 공기 중의 탄소를 포집하고 모아두는 저장고를 농장에 만들고자 한다. 그 저장고는 바로 흙이다. 최대의 육상 탄소 저장소인 흙에 다시 탄소를 저장하면 전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일부를 상쇄할 수 있다. 퍼머컬처 농법은 무경운을 통해 흙의 파헤침을 최소한으로 한다. 땅을 파헤치는 일은 땅을 가장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고 흙의 탄소를 유출하기 때문이다. 흙의 탄소배출을 막고 탄소를 저장하기 위해 피복작물을 기르고 작물 잔여물을 남겨 흙을 언제나 덮어 두면 흙이 가열되거나 말라버리는 일이 없게 되기 때문에 물을 저장하는 능력인 보수력이 높아진다. 때문에 무경운을 하면 관행농보다 물을 절반정도만 사용한다.

작물은 토양탄소를 직접 섭취할 수 없는데 퍼머컬쳐 농법을 통해 농사를 지으면 토양미생물의 생체량이 늘어난다. 박테리아, 진균류, 지렁이, 선충류 등의 군집이 늘어나게 되고 이들의 흙 속의 유기물을 분해하여 토양탄소를 작물에 공급해주는 일꾼들이다. 때문에 땅을 갈지 않고 퍼머컬처 농법을 하면 3년 이후에는 수확량이 관행농업보다 훨씬 많아지고 영양도 높은 작물을 얻을 수 있다. 관행농보다 3분의 1의 에너지를 사용하면서도 관행농보다 3배 이상의 생산력을 낸다. 때문에 퍼머컬처는 기후변화가 가져올 먹거리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

퍼머컬처에서는 다년생인 나무를 심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작물의 뿌리 부분이 발달하여 흙의 탄소저장을 돕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시대에는 적어도 한 사람이 한해에 10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는다면, 탄소배출을 상쇄할 수 있다. 우리는 더 많은 숲을 만들어야 한다.

2050년을 구하는 2020년의 퍼머컬처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가족농이 세계 식량의 80%를 생산한다. 다시 말해 인류의 대부분은 작은 농장에서 길러낸 음식을 먹는 것이다. 관행농법이나 대규모 단작에서 멀어지면 흙의 생명력을 키우면서도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다. 그러니 누구라도 작은 퍼머컬처 텃밭을 시작한다면 먹거리 자급은 물론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다. 퍼머컬처의 농사를 짓는 것이 당장 어렵다면 생태적인 소비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퍼머컬처를 통해 지구라는 닫힌 루프에서 폐기물들을 더 생산하지 않고 재생산하고 재활용하면서 지구 생명의 공생을 꾀한다. 퍼머컬처는 소위 전일적 사고를 통해 지구적이고 통합적인 설계를 중요시한다. 인류가 지금껏 성장과 소비의 신화에 빠져 지구생명과의 연결을 끊어 왔다면, 퍼머컬처리스트들은 지구의 수많은 고리를 연결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일을 시도하고 있다. 퍼머컬처는 인간이 만들어온 오류를 여러 시도와 실천을 통해 바로 잡는 방법이기도 하다.

퍼머컬처가 지구상 모든 탄소를 흙에 격리할 가능성이 있기에, 우리는 지금 당장 삶의 양식을 바꾸는 근본적인 전환을 택해야 한다. 문제는 땅과 사회의 회복 탄력성이 어느 정도일 것인가에 달려 있지만 퍼머컬처는 지구의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이다.

퍼머컬처는 상식이다.

2018년 봄에 시작된 멸종저항 XR(Extinction Rebellion) 그룹은 15명의 환경 운동가들이 모여 시작되었다. 왜 사람들은 과학자들의 수십 년간의 경고와 NGO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탄소 배출에 대해 바뀌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고민했다. 그들은 2011년, 사회 과학자 에라카 체노웨스(Erica Chenoweth)의 연구에 주목했는데 그의 연구에 따르면 권위주의적인 정부를 전복하려면 비폭력 시민불복종을 하고 인구의 3.5%가 참여한 운동은 항상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한 국가의 3.5%가 저항에 참여하는 경우 전체 인구의 50%가 자연스럽게 동의하거나 수동적으로라도 운동을 지원하게 되고 정부의 정책도 자연스럽게 바뀐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위 멸종저항운동을 3.5%의 전략이라고도 한다.

지난 6월 프랑스의 지방 선거 등을 통해서 드러나듯이 기후위기를 알리던 풀뿌리그룹(전환마을)들의 후보들이 대거 지방의회에 진출하게 되었는데 그 배경에도 3.5%의 전략이 있었다. 행동하고 실천하는 선두 그룹이 3.5%가 되면 자연스럽게 대중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지구를 바꾸고 여론을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거대한 기후위기 앞에 무력하고 외롭고 방법이 없다고 느껴질 때면 3.5%의 법칙을 떠올리기 바란다.

지구 인구의 3.5%에게 퍼머컬처가 상식이 된다면 인류는 미래를 상상하는 대로 설계할 수 있다. 퍼머컬처는 인류가 당면한 위기를 짧은 시간 안에 뚜렷하게 바꿔낼 중대한 도구가 될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개인과 작은 공동체, 소농들의 지속적인 노력과 다양한 상상이 너무도 중요하다. 50일 동안의 길고 긴 장마가 알려준 햇살의 소중함과 간절함이 기후위기를 뚜렷하게 인지시켰다. 코로나19로 잃은 일상성 또한 우리를 더 현명해지도록 만들었다. 인류가 저지른 시스템의 자기모순들의 파국 안에서 포기하기는 아직 이르다. 씨를 뿌리고 땅심을 살려 탄소를 가두고 산소는 뿜어내자. 2020년이 2050년을 구할 수 있다.

글 유희정 (소란) 퍼머컬처 디자이너

*이 글은 소식지 녹색희망 272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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