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기고] 2009년, 코펜하겐의정서는 탄생하나?

2009.12.03 | 기후위기대응

지구의 미래가 불안한가? 코펜하겐을 주목하라!

여기 욕조가 하나 있다. 욕조의 크기는 딱 지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나타낸다. 인류는 12월 7일부터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제15차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15)를 통해 이 욕조에 얼마만큼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것인지와 각 나라별로 배출할 수 있는 양을 결정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결국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용량을 초과해 욕조는 넘치고 지구는 파국을 맞게 된다. 이 협상은 제로섬게임이다. 한 나라라도 남들보다 더 배출하려고 한다면 누군가는 더 줄여야만 한다.

1995년 베를린에서 기후 변화협약당사국 첫 회의가 열린 이후 인류는 15년째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회의를 열고 있다. 가장 큰 성과를 이룬 회의가 1997년 교토에서 열린 회의였다. 교토의정서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에 책임이 큰 선진 38개국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기준으로 평균 5.2퍼센트 줄이기로 했다. 기후 변화라는 위기에 모든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하지만 책임의 정도에 따라 선진국이 우선 실천하는 ‘공동의 차별화된 책임’을 적용한 것이다. 선진국들의 온실가스 의무 감축 이행 기간은 2008년에서 2012년까지 5년간이다. 그렇다면 2013년부터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교토의정서가 1997년 합의한 후 2005년 비준되기까지 8여년의 시간이 걸렸다는 점을 생각하면 준비할 시간이 촉박하다.

그래서 제13차 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서는 ‘발리 로드맵’을 통해 포스트 교토 체제 논의를 마무리하는 시한을 15차 회의로 못 박았다. 더불어 선진국은 물론 모든 나라가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공동의 노력을 벌이기로 합의했다.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이제 2라운드에 접어드는 것이다. 전 세계가 유독 올해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 관심을 쏟는 이유이다. 게다가 세계 곳곳에서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심각해지고 있다. 이제는 해법을 만들어야 한다.

COP15의 쟁점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일 것인가에 대한 ‘세계 공유 비전(Shared Vision)’과 2020년까지의 중기 목표이다. 공유 비전은 IPCC가 4차 보고서에서 제안한 대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400~450ppm으로 안정화하고, 산업화 이전에 비해 2도 이하로 온도 상승을 제어한다는데 대부분 합의를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2050년까지 50퍼센트를 감축해야 한다. 공유 비전은 앞으로 40년 후의 일이라 비교적 합의에 도달하기 쉬운 반면 2020년까지 선진국들이 얼마를 줄일 것인가와 개발도상국이 어느 수준에서 참여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는 갈 길이 멀다. 이 주제는 선진국들이 기후 변화로 피해를 입고 있는 개발도상국들을 위해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어느 정도 할 것인 가와도 맞물려있다. 선진국의 지원 여부에 따라 개발도상국의 감축 목표 설정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코펜하겐회의에는 협약 당사국인 192개국이 참석 하지만 회의장에서 영향력은 동등하지 않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위와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협상 태도가 관건이다. 미국은 중국 핑계를 댄다. 온실가스 과다 배출국인 중국이 배제되어 있는 어떠한 글로벌 감축 목표도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중국은 선진국이 역사적 책임을 강조하는 한편 미국이 실질적인 감축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럽연합(EU)은 영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미국의 참여를 압박하고 중국을 달래면서 기후 변화 협상을 주도해왔다. 그러나 EU가 지난해부터 금융 위기와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은 데다 최근 두바이발 악재로 유럽금융 시장에 암운이 드리우고 있어 이번 회의에서 EU 주도의 리더십이 발휘될지 의문이다.

코펜하겐으로 가는 길은 참 멀고도 험난하다. 지난 11월 3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사전 준비 회의에서 에티오피아, 알제리 등 아프리카 50여 개국 대표들은 선진국들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너무 낮다며 일제히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아프리카 대륙은 가뭄과 사막화로 지구 온난화로 인한 피해가 가장 극심한 지역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 국가들은 선진국들이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1990년 대비 최소 40퍼센트 줄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어서 11월 중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COP15 의장국인 덴마크 라스무센 총리는 첨예한 입장 차이와 시간 부족을 이유로 COP15에서 정치적 합의를 하고, 세부 논의는 내년에 지속하자는 김빠지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언론은 일제히 COP15 회의가 성과 없이 끝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암울했던 COP15에 대한 전망은 오바마 대통령과 원자바오 총리의 참석으로 반전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2005년 기준으로 향후 10년간 온실가스를 17퍼센트 감축하고 2050년까지는 83퍼센트 줄이는 계획을 내놓기로 했다. 이에 중국도 2020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단위 기준당 온실가스 배출을 2005년 대비 40~45퍼센트 감축하기로 결정했다. 더불어 일본과 러시아가 1990년 대비 25퍼센트 감축안을 내놓았다. EU는 지난해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20퍼센트를 제시했고, 개발도상국의 동참이 있을 경우 30퍼센트까지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EU는 연간 1000억 유로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후진국 지원금 가운데 공공 분야 기금 220억~500억 유로의 3분의 1 정도를 부담할 뜻도 밝히고 있다.

분위기는 나아졌지만 이번 회의에서 ‘코펜하겐의정서’가 탄생할지는 미지수이다.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개발도상국의 참여를 독려할 만큼 높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개발도상국들이 미국의 2005년 대비 17퍼센트 감축 제시를 받아들일 것인가가 관건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1990년 대비 40퍼센트 감축을 선진국이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벌써부터 오바마의 코펜하겐 회의 단 하루 참가에 대해 ‘사진 찍으러 가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을 환영하면서도 감축 기준이 ‘GDP 단위’가 아닌 ‘배출 총량’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모종의 합의가 이뤄졌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감축 방식에 대한 논의도 현재진행형이다. 산림 조림 사업, 탄소 포집 제어 기술(CCS), 기후 변화를 막는데 있어서 원자력의 역할 등에 대해 격렬한 논쟁이 진행될 것이다. 세계 NGO들과 원주민들은 ‘기후 정의’ 이슈를 전면에 부각할 계획이다.

한국 정부도 이번 회의에 2005년 대비 4퍼센트 감축안을 들고 회의에 참석한다. 이명박 대통령도 참여 여부를 타진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설정해서 회의에 참석한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문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으로서, 내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국으로서, 현재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세계 9위)과 누적배출량(세계 22위)을 고려해 볼 때, 2005년 대비 4퍼센트 감축은 너무나 초라하다. 한국은 경제에서는 선진국을 표방하면서 기후 변화 대응에 있어서는 개발도상국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정부와 시민단체의 COP에 대한 논쟁이 “선진국이다 아니다”에서 한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단체들의 입장은 명확하다. 이번 회의를 통해 우리는 기후 재앙을 막을 수 있는 수준의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선진국들은 적극적인 감축 목표를 제시해 개발도상국의 참여를 북돋아야 한다. 그리고 이미 기후 변화로 인해 생존의 위기에 처해있는 국가와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기 위해 선진국이 구체적인 지원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한국 정부의 위치는 지금까지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책임과 역량에 따라 선진국에 준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코펜하겐으로 가는 값싼 비행기와 숙소를 예약했다. 월급을 보태고 녹색연합의 예산을 들여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코펜하겐 회의 참석을 준비하며 이 거대한 다자 간 국제 환경 협상에서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코펜하겐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량도 부담스럽다. 그렇기에 이번 회의에서 ‘코펜하겐의정서’가 채택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물론 이번에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내년에 논의를 계속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을 한다. 하지만 지구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합의를 미루면 미룰수록 엄청난 시간과 자원이 낭비되고, 인류는 점점 더 위험에 처하게 된다. 환경 과학자 30여 명으로 구성된 ‘글로벌카본프로젝트(GCP)’는 “코펜하겐 회담은 지구 기온 상승폭을 2도로 안정되게 유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만일 합의 내용이 약하거나 합의사항이 지켜지지 않아 지금 추세대로 간다면 기온 상승폭은 2~3도가 아니라 5~6도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해 ‘지구의 벗’ 전의장인 리카르도 나바로 씨는 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 대해 “지금 우리가 탄 구명보트에 구멍이 났는데, 다 같이 앉아서 구멍을 누가 얼마나 막을 것인가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과 같다”라고 꼬집었다. COP15가 크고 멋진 난방이 잘된 회의장이 아니라 녹아내리는 빙하 아래 또는 해수면 상승으로 가라앉을 위기의 섬에서 열린다면 제대로 된 결론의 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도 해본다. 이번 회의에 참석하는 각국 대표들이 그런 마음가짐으로 회의에 임했으면 한다.

코펜하겐 회의 기간 동안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전 세계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한데 모여야 한다. 회의장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회의 기간 아프리카의 교회에서는 12월 12일 일제히 종을 울리기로 했다고 한다. 이산화탄소 농도를 350ppm으로 고정해야 한다는 350이라는 단체는 전 세계가 이날 ‘캔들 나이트’를 통해 뜻을 모아줄 것을 호소할 예정이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협상의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아니라 기후 변화를 막고 지구를 구하겠다는 진정어린 의지이다. 그리고 전 세계 시민들이 다양한 방법을 통해 기후 변화에 동참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보여줌으로써 협상에 나선 지도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이번 코펜하겐 회의에서 “도대체 우리가 뭘 한 거지?”라는 후회로 회의에서 발생한 온실가스양에 죄책감을 갖는 대신, ‘코펜하겐의정서’를 손에 쥘 수 있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지구를 구할 준비가 되어있다.

이유진 녹색연합 기후에너지국장

[프레시안 12월 2일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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