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구하는 숫자 ‘350’

2009.12.24 | 기후위기대응

–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350PPM으로 낮추자는 캠페인 공감 확산 –

12월 14일 클리마포럼에서 연설하는 몰디브의 모하메드 나시드 대통령

12월 14일 몰디브의 모하메드 나시드 대통령은 코펜하겐에 도착하자마자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장으로 가지 않고 비정부기구(NGO)들이 마련한 클리마포럼을 찾았다. “지금 지구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세 단어밖에 없습니다. 바로 스리(3), 파이브(5), 제로(0)입니다. 기후변화 재앙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우리는 350을 결정해야 합니다.” 연설이 끝나자 포럼장을 가득 채운 1000명의 군중은 다 함께 “쓰리(3), 파이브(5), 제로(0)”를 연호하기 시작했고, 언론은 나시드 대통령을 인터뷰하기 위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거대한 운동 세계 곳곳서 진행
‘350’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CO2) 농도를 350ppm으로 낮추자는 세계적인 기후변화 캠페인이다. CO2 농도는 200여 년 전만 해도 275ppm에 불과했지만 산업화와 화석연료 연소로 인해 현재 378ppm까지 높아졌다. 매년 평균 2ppm 증가하는 CO2 농도는 지구 온도 상승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후변화당사국 총회에서는 2050년까지 CO2 농도를 450ppm에서 안정화시킨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지만 ‘350’은 이러한 선택은 너무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인류의 목표를 450ppm으로 설정하면 그때는 이미 아프리카와 남태평양 도서국에서 가뭄과 해수면 상승으로 수백만 명이 죽고 난 뒤라는 것이다.

‘350’의 주장은 제임스 핸슨 전 미국 항공우주국(NASA) 기후과학자,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 라젠드라 파차우리 정부간기후변화협의체(IPCC) 의장 등의 지지를 받으면서 힘이 실리고 있다. 파차우리 의장은 “IPCC 의장으로서 견해 표명은 할 수 없지만 인류의 한 구성원으로서는 대기 중 CO2 농도를 350ppm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350 운동’은 작가인 빌 매키븐에 의해 2007년에 시작됐다. 세계 어디에서든 누구든지 350ppm이 인류의 목표가 되기를 원한다면 ‘350’을 지지하는 사진을 찍어 홈페이지(www.350.org)에 올리면 된다. 이 거대한 온라인 운동은 국가, 인종, 나이, 장소를 불문하고 기후변화를 걱정하는 세계인들을 한데 모으고 있다. 녹아내리는 거대한 빙하에서 스키를 타면서 ‘350 피켓’을 들고 있는가 하면 스쿠버다이버들이 산호초를 배경으로 수중에서 메시지를 전하거나, 350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번지점프를 하기도 한다. 아프리카 가나의 어린아이들도, 스리랑카의 스님들도, 오카방고델타의 코끼리도 함께한다. 이집트 피라미드, 프랑스 에펠탑, 호주의 오페라하우스와 같이 세계인이 누구나 알 만한 장소에서는 어김없이 캠페인이 진행된다.

지난 10월 24일은 ‘350 운동’이 세계 181개국 5200여 곳에서 동시에 진행된 날이다. 이날을 겨냥해 몰디브의 나시드 대통령은 스쿠버다이빙복을 입고 수중 국무회의를 연 것이다.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전 세계 캠페인에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례가 없었다.

코펜하겐에서도 ‘350’의 열정적인 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세계 기후 행동의 날’인 12일 ‘350’은 당사국 총회가 열리는 벨라센터 앞에서 ‘촛불시위’를 진행했으며, 13일에는 로마 가톨릭 교회를 포함한 세계 교회들이 오후 3시 50분부터 종을 350번 울려 코펜하겐회의의 성공을 촉구하기도 했다.

현재 92개 국가 ‘350 목표’ 서명

10월 24일 멕시코시티, 보츠와나, 시드니, 이집트, 케이프타운(위에서부터)에서 350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녹색연합
‘350’은 유엔 기후변화협약 제15차 당사국총회(COP15) 회의장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했다. 투발루가 군소도시국가연합(AOSIS)과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국가군(V11) 48개 국가의 지지를 받아 지구 온도 상승 목표를 1.5도, 대기 중 CO2 농도를 350ppm으로 각각 안정화해야 한다는 공식의견서를 제출한 것이다. 이들 나라는 지금까지 COP 회의에서 너무나 힘이 없는 존재였다. 기껏해야 회의 마지막날 공식 석상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생존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호소하는 일이 다였다. 그러나 이번 회의부터는 한데 모여 350ppm을 주장하고 있다.

350은 현재 92개 국가가 세계 온실가스 안정화 목표로 350ppm을 설정하는 데 서명했다고 밝혔다. AOSIS와 최빈국그룹(LDCs)에 속하는 80개국, 아르헨티나를 포함한 라틴아메리카 8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더불어 나시드 대통령이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11개국 대표를 몰디브로 초청해 기후변화 대책회의를 연 이후 그 회의에서 가나·케냐·베트남이 동참하기로 했으며, 코펜하겐회의에서 볼리비아가 참여를 결정하면서 모두 92개 국가가 됐다.

이들 국가가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나선 배경에는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현실과 생존의 문제로 가시화됐기 때문이다. 이들 나라 국민들에게 가장 큰 이슈가 ‘기후변화’이고, 정치인들도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힘의 논리가 철저하게 지배하는 국제협상 무대에서 92개 국가의 서명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앞으로 진행되는 협상에서 이들의 단결은 점점 더 큰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코펜하겐회의에서 새로운 의정서가 탄생될 것이라는 기대는 선진국과 개도국의 첨예한 대립으로 인해 한 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유엔은 15일부터 NGO들의 회의장 참석을 완전히 봉쇄했고, 협상이 공전을 거듭하면서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있어 유엔의 역할과 조정능력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350’과 같이 아래로부터의 전 지구적 캠페인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것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매키븐은 “‘350’은 기후변화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직접 행동을 추구한다. ‘350운동’은 인구 40만명의 몰디브와 같은 작은 나라의 대통령도 지구적인 리더로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그의 열정을 높이 사며, 그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곳 코펜하겐에서 350ppm을 관철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세계 시민들과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국가의 지도자들이 소통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 ‘지구의 파국’을 막기 위한 ‘새롭고도 전 지구적이며 담대한’ 흐름을 만들고 있다.

2009 12/29   위클리경향 8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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