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성장기본법과 개발정책

2010.01.22 | 기후위기대응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명분으로 제정된 녹색성장기본법이 시행을 앞두고 있다. 녹색성장기본법이 추진되어 온 과정을 보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각종 개발사업과 어쩌면 그렇게 빼닮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명박 정부가 온 힘을 다해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이 그렇고, 최근 아랍에미리트(UAE)와의 원전 수주 계약을 계기로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원자력산업 확산정책도 닮은꼴이다. 더 나아가 최근 논쟁의 핵심에 있는 행복도시(세종시) 백지화 계획도 마찬가지다. 녹색성장기본법이나 앞에서 언급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핵심 사업들 모두 심각한 개념의 왜곡 위에서 출발하고 있고 국민 여론이나 세계 흐름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한마디로 ‘조작된 프레임’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관철해 나가려는 속셈이다.

녹색성장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는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이 법에 담고 있는 숱한 개념 왜곡과 독소조항 때문에 야당과 시민단체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고 국회 상임위에서는 야당 의원들의 집단퇴장 사태까지 촉발하였다. 그러던 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된 것은 지난해 말 4대강 예산 싸움의 틈을 이용해 다른 60개 법안과 함께 국민의 눈을 피해 무더기로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녹색성장기본법은 원래 입법예고까지 된 기후변화대책특별법안을 대체하기 위해 제안됐다. 그러나 이 법은 기후변화대책을 위한 법이라기보다 기후변화 대응으로 위장한 이른바 ‘녹색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법안이 처음 제안됐을 때는 4대강 사업과 원자력산업 활성화 등 녹색성장과는 전혀 상관없는 독소조항을 내용에 포함시켰다가 시민단체와 야당의 반대에 부딪히자 그 내용을 수정하거나 삭제했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자연생태계를 파괴하는 4대강 사업과 같은 ‘토목사업’을 녹색성장 산업이라 주장하고 있고 대단히 ‘위험한 에너지’인 핵(원자력)을 친환경 에너지인양 홍보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녹색성장이 토목사업과 핵산업에 기반하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더 심각한 것은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합의한 ‘녹색성장’과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을 왜곡하고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을 포함해 기존의 법질서를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다는 데 있다. 지속가능발전의 하위 개념에 바탕을 둔 녹색성장기본법이 엉뚱하게 부칙을 통해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의 주요 기능을 삭제해 법 자체를 허수아비로 만들어 버렸다. 이는 ‘행복도시’의 기능을 완전히 마비시키는 세종시 수정안과 흡사하다. 기왕에 추진되고 있는 행복도시에 행정기구 이전과 더불어 교육과 첨단산업 기능의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었음에도 정부는 엉뚱한 부분 논리로 행복도시의 근본 취지와 기능을 무산시키려 하고 있다. 더구나 행복도시 건설 목표가 단순히 한 지역의 발전을 위한 기업도시 건설 차원이 아니라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수십년간의 국민 염원을 담은 결과였음에도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개념을 완전히 무시하고 엉뚱한 논리만 펴고 있다. 한마디로 궤변이다.

이처럼 녹색성장기본법과 각종 개발사업의 존재 근거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믿도록 만드는 ‘조작된 프레임’임이 분명해졌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조작된 프레임을 뛰어넘는 새로운 프레임을 통해 인간은 물론 모든 생명들이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녹색 세상’으로 가는 길이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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